하루를 여는 첫마디에 어떤 의도가 담겨 있는가?
새벽이었다. 알람이 울리기 직전 방 안은 이미 희미하게 밝아지고 있었다. 완전히 깨어나기 전의 애매한 시간에 몸보다 먼저 반응하는 것이 있었다. 이유 없이 조급해지는 마음이었다.
눈뜸과 동시에 손을 뻗었다. 침대 머리맡에 두었던 스마트폰을 더듬어 집어들었다. 화면이 켜지면서 하얀빛과 조우했다. 그 순간, 내가 아직 생각을 시작하지 않았다는 사실만 선명해졌다. 이윽고 밤사이 쌓인 알림이 눈에 들어왔다.
그걸 몇 개 넘겨보는 동안 머릿속에는 몇 개의 문장이 만들어져 있었다. 오늘 해야 할 일, 놓치면 안 되는 일정, 답해야 할 것. 문장들은 빠르게 이어졌고, 자연스럽게 나의 첫 생각이 되었다. 돌아보면 첫 문장이 나에게서 시작된 적은 많지 않았다.
코치가 되기 전 나는 오랫동안 숫자를 다루며 살았다. 스무 해 가까이 회계라는 틀 안에서 일했다. 숫자는 명확했다. 틀리면 틀린 것이고, 맞으면 맞는 것이다. 딱히 이유를 설명할 필요도 없었다. 장부는 결국 맞아야 했고 결과는 한 줄로 정리되었다.
그 세계에서는 빠르고 정확한 사람이 일을 잘하는 사람이었다. 결산이 빨리 끝나고, 수치가 깔끔하게 맞아떨어질 때 느끼는 안도감이 있었다. 하루를 마무리하고 사무실 문을 나설 때, 적어도 일에 대해서만큼은 남겨둔 것이 없다는 기분도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 감각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장부는 맞았는데 하루는 정리되지 않은 느낌이 남았다. 무엇이 빠져 있는지 정확히 말할 수는 없었지만 비어 있다는 느낌만은 분명했다.
어느 아침이었다. 평소와 다르지 않게 눈을 떴고, 하던 대로 하루를 시작하려고 했다.
'오늘 회의 자료 마감이지.'
입 밖으로 꺼내려다가 멈췄다. 뭔가 순간적으로 턱 하고 걸린 느낌이었다. 낯설었다.
내가 말하려던 건 분명한데, 동시에 내가 아닌 것 같았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정해진 대사를 따라 말하는 기분이었다. 그때 생각했다. 내가 하루를 시작할 때 가장 먼저 떠올리는 문장이, 정말 내 것인지.
권고사직.
퇴사 후 아침은 조금 달라졌다. 크게 바뀐 것은 없다. 기상 시간은 다르지만 여전히 알람은 울리고, 확인해야 할 것도 있다. 다만 그 사이에 잠깐 멈추는 시간이 생겼다. 짧은 틈이다. 길게 생각하려고 하는 것도 아니고, 특별한 결심을 하는 것도 아니다. 그냥 바로 반응하지 않는 정도다.
짧은 시간 동안 아무것도 정리하지 않는다. 어색했다. 무슨 생각을 해야 할지 모르는 상태라는 말이 어울렸다. 시간을 낭비하는 느낌도 있었다. 괜히 흐름을 끊는 것 같기도 했다.
그래도 반복하다 보니 다른 종류의 문장이 보였다. 또렷하지는 않다. 금방 사라지기도 한다. 대신 방향이 조금 다르다. 해야 하는 일보다 지금 상태에 가까운 말들이다.
오늘은 어떤 사람으로 살고 싶은지, 어떤 기분으로 시작하고 있는지. 이런 질문은 실용적이지 않다. 바로 도움이 되는 것도 아니었다. 그래서 그동안 더 자주 밀려났다.
생각해 보면 나는 꽤 오래 반응하는 쪽에 익숙했다. 들어오는 것에 맞춰서 판단하고, 처리하고, 정리하는 방식이었다. 일하는 데에는 효과적이었다. 문제는 그 방식이 일 밖에서도 그대로 이어졌다는 점이다.
하루를 어떻게 만들지 결정하기 전에 이미 많은 것에 답하고 있었다. 그 상태가 오래되니까, 스스로 삶을 선택하고 있다는 감각이 점점 흐려졌다.
속도에 대해서도 비슷한 생각을 했다. 어제보다 더 빠르게 처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믿었다. 실제로도 그게 도움이 되는 경우가 많았다. 일이 쌓이지 않았고 결과도 빨리 나왔다. 디데이 단축은 일생의 과업이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는 빨리 가고 있다는 느낌만 남았다. 어디로 가고 있는지는 뒤로 밀렸다. 방향을 확인하는 일은 나중으로 미뤄졌다. 계속 미루다 보니 나중이라는 시점도 애매해졌다.
이미 한참을 온 뒤에야 이 길이 맞는지 생각하게 되는 순간이 있었다. 그때는 돌아가는 것이 간단하지 않았다. 이미 쌓인 것이 있었고, 포기해야 하는 것도 있었다. 그래서 더 늦게까지 확인하지 않게 되는 것 같기도 했다.
당장 속도를 줄이려는 것이 아니다. 다만, 하루를 시작할 때 질문 하나를 먼저 하려고 한다. 어렵지 않은 질문이다. 오늘 무엇을 해야 하는지보다 어떻게 시작할 것인지에 대한 질문이다.
하루가 끝날 때도 비슷하다. 잘했는지 못했는지를 따지기보다는 어떤 문장으로 하루를 보냈는지를 떠올려본다. 자주 반복된 말은 무엇이었는지, 그 말이 나에게서 나온 것인지, 아니면 익숙해서 뱉은 것인지. 답이 정리되는 경우는 많지 않다. 대신 질문이 남는다. 그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바로 반응하지 않고 한 번 정도는 멈출 수 있는 상태를 위해 노력 중이다. 예전에는 더 잘하려고 했던 것 같다. 지금은 조금 다르다. 덜 어색하게 시작하는 쪽을 택한다. 차이는 크지 않아 보이지만 하루 전체에는 영향을 준다.
내일 아침에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알람은 울리고, 확인해야 할 것도 그대로 있을 것이다. 아마 또 비슷하게 시작하려고 할지도 모른다. 그래도 한 번쯤은 멈출 수 있을 것 같다. 그 순간에 떠오르는 문장이 조금은 내 쪽에 가까웠으면 한다.
아마토르의 ≪침묵이 질문이 될 때≫는 매주 수요일, 일요일 연재합니다. 이어지는 2화부터는 멤버십 콘텐츠로 발행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