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지 못하는 사람의 연습을 시작하며

by은하


살면서 가장 어려운 말은 생각보다 거창하지 않다. 사랑한다는 말도, 고맙다는 말도 아니다.

오히려 아주 짧은 한마디.


"죄송하지만 어렵습니다."


그 말은 이상하리만큼 쉽게 입 밖으로 나오지 않는다. 거절해야 하는 순간이면 머릿속이 먼저 바빠진다. 혹시 기분이 상하지 않을까. 나를 이기적인 사람으로 보지는 않을까. 관계가 어색해지지는 않을까. 결국 하고 싶은 말보다 상대가 듣고 싶어 할 말을 먼저 꺼내게 된다.


"괜찮아요."

"제가 할게요."

"네."


그렇게 말하고 돌아서면 마음 한구석이 무거워진다. 돌이켜보면 거절을 못하는 사람이었다기보다, 관계를 잃는 것이 두려운 사람이었다. 좋은 사람으로 남고 싶었고, 누군가를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다. 배려라고 믿었던 선택들이 쌓일수록 이상하게도 가장 많이 놓치고 있던 사람은 나 자신이었다. 내 마음은 늘 마지막이었다.






시대는 많이 달라졌다. 무엇이든 빠르게 연결되고, 누구와도 쉽게 닿을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내 마음을 있는 그대로 말하는 일만큼은 여전히 쉽지 않다.


관계를 망칠까 봐,

실망을 줄까 봐,

괜히 불편해질까 봐.


우리는 여전히 많은 말을 마음속에 남겨 둔 채 살아간다.

그 말들은 사라지지 않고, 결국 내 마음에 남았다.






나 역시 여전히 전화 한 통을 걸기 전 잠시 망설인다. 거절해야 할 일이 생기면 머릿속으로 문장을 여러 번 고쳐 쓰기도 한다. 보내려던 답장을 한참 바라보다가 창을 닫는 날도 있다. 다만 예전과 다른 점이 있다.


- 바로 대답하지 않는 연습을 한다.

- 이유를 길게 설명하지 않는 연습을 한다.

- 괜찮지 않은데 괜찮다고 말하지 않는 연습을 한다.


ChatGPT Image 2026년 7월 8일 오후 10_24_14.png은하 <말하지 못하는 사람의 연습>



아주 작은 변화지만, 그 작은 연습은 생각보다 많은 것을 바꾸기 시작했다. 이 글은 거절을 잘하는 사람이 되는 방법을 이야기하려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과 거리를 두자는 이야기는 더더욱 아니다. 관계를 소중히 여기면서도, 내 마음 역시 소중히 여기는 연습. 그 서툴고 느린 과정을 기록해 보고 싶었다.



보내지 못한 답장이 있고, 웃으며 넘긴 부탁이 있고, "괜찮아요."라는 말 뒤에 진심을 숨겨본 적이 있다면 아마 우리도 비슷한 연습을 하고 있는 사람일지 모른다. 완벽하게 달라진 사람의 이야기는 아니다. 여전히 망설이고, 여전히 조심스럽다.



그럼에도 조금씩 내 마음을 말해 보는 사람의 이야기.

좋은 사람이 되기보다 편안한 사람이 되어가는 과정.


오늘도 나는, 말하지 못했던 마음을 조금씩 말해보는 연습을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