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쩌다 구린 예술가가 되었을까.
나는 어쩌다 구린 예술가가 되었을까.
매드클라운의 「구린 예술가」라는 곡을 들었다. 노래를 듣다 보니 지금의 내 상황과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구린 예술가가 아닐까.
어디에서든 영감을 얻고, 무언가를 만들어 내야 한다는 마음. 그 마음속에는 내가 가진 열등감도 있었다. 노래를 들으며 글을 쓰는 동안 내가 느꼈던 감정들을 떠올렸다.
짧은 소설을 읽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노래 속 이야기가 지금의 내 상황과 조금은 닮아 있다고 생각했다. 나도 구린 예술가가 아닐까.
어디에서든 영감을 얻고, 무언가를 만들어 내야 한다는 마음. 그 마음속에는 내가 가진 열등감도 있었다. 노래를 들으며 나 역시 글을 쓰면서 느꼈던 감정들을 떠올렸다.
열등감이 올라올 때면 마치 언제 나올지 모르는 재채기를 참는 것 같다. 나올 것 같으면서도 나오지 않는 재채기처럼, 마음속에 쌓인 감정을 모른 척 시치미를 뗀다.
미련이 남은 전공은 여전히 내 발목을 잡는다. 그런 내가 어느새 작가가 되었고, 예술가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 내가 이렇게 될 줄은 몰랐다. 그래서인지 나는 조금 더 구린 예술가처럼 느껴진다.
대학을 졸업한 뒤에는 다시는 글을 쓰지 않겠다고 마음속으로 선언했다. 그런데 결국 글을 쓰게 되었다. 내게 예술의 시작은 건강이 좋지 않았던 시기와 맞닿아 있다. 그런 이유로 나는 스스로를 구린 예술가라고 생각하는지도 모르겠다.
SNS를 보면 동기나 친구들은 결혼을 하기도 하고, 각자의 전공과 직바카라으로 불리기도 한다. 전공과는 다른 곳에서 일하는 친구들도 있다. 각자의 자리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면서 내 안의 열등감은 점점 커졌다.
오랜만에 연락이 닿으면 으레 하는 말이 있다.
“밥 한 끼 하자.”
그렇게 인사를 나누고 나면 자연스럽게 지금 무슨 일을 하는지 묻는다.
나는 너털웃음을 지으며 건강 이야기를 앞세운다. 그러다 보면 ‘글을 써서 얼마나 번다고’라는 뉘앙스가 느껴지는 대화를 마주할 때가 있다. 어느새 나는 낭만만 좇는 사람, 아직 현실을 모르는 온실 속 사람처럼 여겨진다.
그럴 때면 글을 쓰는 예술이라는 일이 구리게 느껴진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내가 구린 사람처럼 느껴진다. 그러다 결국 스스로를 구린 예술가라고 부르게 된다.
‘구리다’의 사전적 의미에는 하는 짓이 더럽고 지저분하다는 뜻, 행동이 떳떳하지 못하고 의심스럽다는 뜻이 있다.
나는 정말 그런 사람일까.
꼭 부정적인 의미로만 받아들이고 싶지는 않다. 아직 완성되지 않았고, 어딘가 부족하고, 조금은 서툰 상태. 지금의 나는 그런 모습까지 내 예술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있다.
사람들이 내 글에서 흥미를 느꼈으면 좋겠다. 내 이야기를 읽고 무언가를 발견하거나, 잠깐이라도 마음이 움직였으면 좋겠다.
하지만 누군가가 내 글을 어떻게 읽을지는 내가 마음대로 할 수 없다. 아무리 잘 쓰고 싶어도 모든 사람에게 좋은 글을 쓸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런데도 나는 글을 사랑한다.
내가 글을 사랑하는 만큼 글도 나를 사랑해 줄까. 어쩌면 나는 글을 짝사랑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참 역설적이게도, 사랑받고 싶은 마음과는 별개로 나는 계속 글을 사랑한다.
그래서 나는 창작을 이어 가는 구린 예술가가 아닐까.
노래 한 곡을 듣고 내가 어떤 작가인지, 어떤 생각을 품고 살아가는 사람인지 돌아보게 된 것은 꽤 오랜만이었다.
“네가 작가가 되었다고?”
나를 약 20년 동안 알아 온 선생님은 내가 작가가 되었다는 이야기에 무척 기뻐하셨다. 그러면서 나를 ‘에피소드 부자’라고 불러 주셨다.
그 말이 참 따뜻했다.
내가 글을 쓴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중 한 분이 건네준 말이었다. 무바카라임한 희망을 주는 말이 아니라, 나를 오래 지켜본 사람이 건네는 진심 어린 응원처럼 느껴졌다.
그때 나는 온라인카지노스토리 작가가 되었다는 사실이 무척 뿌듯했다. 그 이야기를 나누는 순간만큼은 스스로를 구린 예술가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나는 아름다웠다.
내가 생각하는 아름다움은 나답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러니 그 순간의 나는 정말 아름다운 예술가였다.
주변 사람들은 내가 전공을 얼마나 좋아했는지 알고 있다. 그래서 내가 예술가라고 이야기하면 떨떠름한 표정을 지을 것 같았다. 차라리 무직이라고 말하는 편이 편했다.
건강이 나빠졌다는 이유로 숨었다. 술래가 나를 찾지 못하도록 어디에 숨어야 할지 고민하는 아이처럼.
그러다 누군가에게 에둘러 말했다.
“저 글 써요.”
돌아오는 대답은 종종 이랬다.
“그건 취미 아니에요?”
온라인카지노스토리를 설명해 주어도 떨떠름한 표정을 마주할 때가 있었다.
중증장애가 있는 나는 병원에 다니는 일도 쉽지 않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회사에서는 이해해 줄 테니 취업하면 되지 않느냐고 말한다. 하지만 검사에서 이상이 발견되면 일주일 뒤에라도 빈 예약 시간을 찾아 빠르게 진료를 받아야 하는 상황이 생긴다.
내가 감당하는 현실을 다른 사람에게 전부 설명하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 나는 가끔 글과 싸운다. 오래 사귄 연인과 각방을 쓰듯 글을 멀리하는 날도 있다. 그래도 결국 글을 놓지는 못한다.
나는 예술가다.
그렇지만 스스로 칭찬할 만한 것이 아직 충분하지 않다고 느낀다. 그래서 나는 나를 구린 예술가라고 부른다.
글은 나를 사랑하고, 나도 글을 사랑한다. 완벽한 것에는 사람 냄새가 부족하다고 느낄 때도 있다. 어쩌면 완벽함보다 서툰 모습에서 더 많은 것을 발견할 수 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천천히 성장해 가고 싶다. 지금 당장 완벽한 예술가가 되지 못하더라도 괜찮다. 좋은 사람들과 함께 아름다운 예술을 아주 천천히 만들어 가고 싶다.
사람들은 나를 잘 모를 수도 있다. 그래도 언젠가는 누군가 내 이야기를 알아봐 줄 것이라고 믿는다.
열등감은 아직 익숙해지지 않은 감정이다. 그렇다고 “안녕”이라는 인사와 함께 쉽게 보내 줄 수도 없다. 어떤 날에는 나 자신이 안쓰럽고, 어떤 날에는 스스로를 대견하게 느낀다. 서로 반대되는 마음이 한꺼번에 찾아오기도 한다.
앞으로 내가 어떤 형태와 장르의 예술을 하게 될지는 아직 모른다. 인생은 대본이 정해지지 않은 드라마와 같으니까. 지금의 감정을 정확한 말로 설명하지 못할 때도 있다. 내가 글을 쓰게 될 줄 몰랐던 것처럼, 앞으로의 나도 아직 알 수 없다.
막막하고 자바카라하는 날도 있다. 애인 같은 글과 각방을 쓰는 날도 있다. 하지만 결국 우리는 서로 사랑한다는 사실을 확인하며 관계를 이어 간다.
그러므로 내가 구린 예술가일지라도, 나는 나답기에 만족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