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장. ‘나’에서 시작하는 다음 장
한국으로 돌아온 뒤 나는 한동안 멍하게 지냈다.
시차 때문이라고 하기엔 조금 더 깊은 나날들이었다.
알람을 맞춰두지 않아도 아침이면 눈이 떠졌고, 침대 옆 휴대폰을 집어 들어 잠금 화면을 풀어 놓은 채 한참 동안 아무 앱도 누르지 못했다.
몸은 그대로 움직이는데 머릿속은 한 박자씩 늦게 따라오는 느낌.
세안대를 마주 보고 얼굴에 물을 끼얹으면서도 거울 속 내 표정이 조금 낯설게 느껴졌다.
회사에 출근해서도 컴퓨터를 켜고 메일함을 열어 둔 채 커서가 깜빡이는 화면만 오래 바라볼 때가 많았다.
읽지 않은 메일 숫자는 늘었지만 그 숫자가 예전만큼 급하게 나를 밀어붙이지는 못했다.
“뉴욕 좋았어요?”
동료들이 물으면, 나는 상투적인 말들로 대답했다.
“네, 좋았어요.”
“음식은 좀 짰어요.”
“걷기 좋은 도시더라고요.”
정작 입 밖으로 내고 싶은 말은 ‘좋았다’보다 먼저 떠오르는 ‘이제 끝났구나’라는 문장이었지만 그 말은 목구멍 어딘가에서 늘다 만 숨처럼 맴돌 뿐이었다.
집에 돌아와 가방을 풀고, 뉴욕에서 사 온 옷가지를 세탁기에 넣고, 냉장고 안에 든 유통기한 지난 것들을 버리다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마치 사랑니를 다 빼고 난 뒤 며칠 같네.”
멍한 통증이 아니라, 통증이 빠져나간 자리의 공허함.
10년 넘게 애써 버티고 있던 무언가가 순식간에 빠져나가 버린 듯한 감각.
병원을 나올 때 입 안에 거즈를 물고 있던 순간처럼,
뉴욕을 떠나올 때 공항 게이트를 지날 때도 나는 마음 한쪽으로 뭔가를 꽉 물고 있었다.
지금은 그 거즈가 사라진 뒤의 시간이었다.
피맛도, 마취도,
극단적인 통증도 사라진 뒤의 애매한 허전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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