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장. 내가 채워 넣는 것들
그해 겨울은 예년보다 눈이 적게 왔다.
기온은 영하까지 내려가긴 했지만 눈 대신 마른 바람만 자꾸 불었다.
출근길 지하철 창밖으로 보이는 회색 하늘과 사무실 형광등 불빛은 언제나처럼 칙칙했지만
나는 그 속에서 내 삶의 작은 리듬들을 하나씩 만들어 가고 있었다.
퇴근 후 회사 근처 카페에 들르는 날이 늘어났다.
창가에서 세 번째 자리,
콘센트가 바로 옆에 있는 작은 테이블.
나는 따뜻한 라떼 한 잔을 시키고 노트북을 열어 하루에 한 문장이라도 쓰는 걸 목표로 삼았다.
어떤 날은 사랑니 이야기가 또 튀어나왔다가 중간쯤에서 문장이 스스로 힘을 잃었다.
‘왼쪽 위 사랑니를 뺄 때—’
라는 문장을 쓰고 나면 그다음에는 언제나 “10년 전”과 “그 사람”이 따라올 것 같아서 나는 커서를 뒤로 옮겨 그 부분만 조심스럽게 지웠다.
다른 날에는 전혀 관계없는 인물과 도시들이 문장 안으로 슬며시 들어왔다.
뉴욕이 아닌 다른 도시들,
영화에서만 보던 유럽의 골목,
피렌체 어느 골목 모퉁이에 있는 카페,
로마의 오래된 광장.
“나는 여전히 로맨스 소설을 쓰고 있겠지.”
한 번은 그렇게 생각했다가, 곧바로 웃음이 나왔다.
치과와 사랑니가 빠져나간 자리에는 조금씩 다른 도시 이름들이 들어왔다.
이탈리아, 미국, 그리고 아직 가 보지 않은 더 많은 나라들.
언젠가 그 도시들을 누군가와 함께 걷고 싶다는 마음이 아주 작게, 문장 사이사이에 숨어 있었다.
집에 돌아와 바카라장 앞에 서는 시간도 늘어났다.
완독한 바카라들에는 작은 포스트잇을 붙여 두고 내 마음에 걸렸던 문장을 적어 넣었다.
“지나간 시간을 지우는 게 아니라 그 위에 새로운 시간을 쌓아 올리는 일.”
어느 소설 한 구절이 나를 보고 있는 것 같아서 나는 그 아래에 아주 작은 글씨로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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