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을 뵈러 본가에 내려갔다. 아빠랑 TV를 보고 있는데 아빠 친구분의 전화가 왔다.
어르신들은 큰소리로 통화하셔서 통화 내용을 안 들으려야 안 들을 수가 없다.
처음에는 서로의 안부를 묻더니, 이내 전화기 너머로 친구분의 쨍쨍한 목소리가 거실을 채웠다.
“근데 자네 딸은 지금 뭐 하냐? 퇴직하고 아직도 계속 노나?”
옆에 내가 있는 줄은 꿈에도 모르고 던진 질문이었다.
아빠는 순간 당황하셔서 얼굴이 발개지시며 대답하신다.
“응... 이것저것 알아보고 있어.”
‘잉? 내가 뭘 알아봐?’
전화 통화를 끝내고 아빠와 나 사이에 어색한 침묵이 한동안 흘렀다.
나는 침묵 속에서 마치 취업하지 못한 백수 딸이 된 느낌을 받았다. 아빠는 생산적인 무언가를 하지 않는
지금 나의 상태를 앞으로 새로운 일을 알아보거나 취직을 해야 하는 상태로 받아들이시는 것 같다.
내가 오십 대가 훌쩍 지난 나이임에도 말이다.
생각해 보면 세상은 정해진 규칙이 있는 양 굴러간다. 학교를 졸업하면 취직해야 하고, 온라인 게임을 다니면 승진해야 하고, 퇴직을 하면 또 다른 일을 찾아야 한다. 우리는 늘 다음 단계로 이동해야 하는 삶에 익숙해져 있다. 그래서인지 “이제 좀 쉬려고 한다”는 말보다 “새로운 일을 준비하고 있다”는 말이 더 자연스럽게 들린다.
엄마 역시 이런 질문을 많이 받는다고 한다.
“계속 다닐 수 있는 온라인 게임을 왜 그만두냐?”
그러면 엄마는 심플한 한마디로 분위기를 정리한다고 했다.
“살 만하니까 낸 거지.”
오랜 온라인 게임생활을 하면서 알뜰하게 살아 본인 몸 하나 건사할 정도는 되니 퇴직한 것이다.
퇴직할 만하니까 한 거 아니겠냐고 말하면 남의 인생사에 참견하던 이들이 조용해진다고 했다.
그렇다.
가족 안에서도 나의 퇴직을 바라보는 시선은 이렇게 다양하다.
딸이 은퇴를 선언했음에도 아빠는 세상이 돌아가는 방식에 따라 그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하시는 것 같다.
반면 엄마는 오십 대부터 쉬고 싶었던 자신의 모습을 투영해서 나의 은퇴를 적극적으로 지지하신다.
그런데 흥미로운 건 그런 다양한 시선이 내 안에서도 혼재되어 불쑥불쑥 튀어나온다는 거다.
편의상 나는 이 녀석들을 '다중이'라고 부른다.
어떤 때는 아빠의 모습을 한 다중이가 나타난다.
'백세 시대라는데 이제 겨우 오십이야. 앞으로 살 날이 얼마나 많이 남았는데. 퇴직하고 다른 일 해야지. 퇴직했다고 이렇게 넋 놓고 있으면 되겠어?'
또 어떤 때는 엄마의 모습을 한 다중이가 나타난다.
'인생 금방 간다. 칠십 넘으면 돈 들어가는 건 병원 왔다 갔다 하는 것밖에 없어. 그전에 해 보고 싶은 거 다 해 봐라. 너 옆에 챙겨야 할 자식이 있냐? 그것도 아니니 네가 하고 싶은 거 다 해 보고 살아라.'
재밌는 건 두 다중이 모두 틀린 말을 하는 건 아니라는 점이다. 아빠 다중이는 나를 움직이게 만든다. 계획을 세우게 하고, 새로운 것에 도전하게 하고, 하루를 허투루 보내지 않게 만든다. 반면 엄마 다중이는 나를 쉬게 만든다. 지금 누릴 수 있는 것을 누리게 하고, 너무 먼 미래를 걱정하느라 현재를 놓치지 않게 만든다.
얼마 전까지는 아빠 다중이가 나를 지배하고 있었다.
올해 하반기에 무얼 할지 계획을 세우고, 드라마 작가에 지원한다고 지원서에 첨부해야 할 에세이를 쓰기 위해 OTT에 가입해서 봐야 할 드라마를 보고, 에세이를 작성해서 제출하고, 온라인카지노스토리에 새롭게 올릴 글도 기획해 봤다.
그런데 지금은 엄마 다중이가 깊게 자리 잡고 있다.
에라 모르겠다. 당분간이라도 쉬자. 크로스핏하고 요가하면서 몸 건강 챙기고, 식물 키우면서 마음 건강 챙기고, 아무것도 생각하지 말자.
아마 앞으로도 다양한 다중이들이 번갈아 가며 나를 스쳐 갈 것이다.
아마 내일쯤이면 또 아빠 다중이가 슬그머니 나타나 뭔가 해보라고 등을 떠밀 것이다. 그러다가 힘들어지면 엄마 다중이가 나타나 “에이, 좀 쉬어”라고 말하겠지.
어쩌면 퇴직 후의 삶이란 내 안의 수많은 다중이들과 함께 흔들리며 나만의 속도를 찾아가는 과정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