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을 모를땐 다람쥐처럼

by닥터킴

'다람쥐처럼 달리자'

요새 주술처럼 스스로에게 상기시키는 말이다.


이번에 도전하는 창업은 내 전문성인 치의학과 맞물려있다. 치과의사가 병원을 운영할 때 필요로 한 RCM이나 PMS 같은 B2B제품은 아니다. 환자를 위한 제품이다.


본인의 전문분야면 창업하기 수월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 역설적이게도 오히려 더 넘어야 할 산이 많다. 가장 처음으로 넘어야 하는 산은 나 자신의 틀에 박힌 생각을 깨는 거다.


전문직에선 특히 치의학이라는 매우 세밀하고 좁은 학문에 꽤나 긴 시간 동안 공부하고 수련하고 일을 하면 나도 모르게 틀에 박힌 생각에 사로잡히게 된다. 치과의사가 아닌 누군가가 "이건 왜 그렇게 하는 거예요?"라고 묻는다면 나도 모르게 "원래 이렇게 하는 거예요"라는 아주 쉽고 게으른 대답을 하게 된다.


뇌도 몸처럼 게을러진다. 항상 하던 대로만 하고 싶어 하고, 생각하고 싶어 한다. 보편적인 치과진료에서 일어나는 a, b, c 등등에 대해 별 불편함고 딱히 불만도 없다. 오히려 루틴대로 하길 바라고 진료 과정 속에서 조금의 불편함이 생겨도 '원래 이랬으니까'하고 넘어가게 된다.


치과의사라는 위치에서 벗어나 객관적 관찰자모드로 치과진료의 수단, 로지스틱스 logistics, 데이터를 객관적으로 보기 시작하면 생각보다 문제점들과 이해되지 않는 것들이 눈에 보이기 시작한다.


세상에 다양한 사람이 존재하듯, 다양한 종류의 창업가가 존재한다. 그리고 각기 다른 창업 동기를 갖고 있다.

1. 사명가 missionary: 문제를 해결하고 싶은 사명감

2. 승부사 mercenary: 큰 성공의 기회와 시장에 승부

3. 장인 craftsman: 뛰어난 제품 만들기

4. 건설가 empire builder: 거대한 조직과 영향력을 갖기 위해

5. 독립가 independence seeker: 자율성과 자기 결정권 욕구


누구나 타고난 기질이 있듯, 창업 동기 또한 기질이라 생각한다. 뭐 기질 또한 환경과 여러 가지 요인으로 어느 정도는 바뀔 순 있겠으나, 지금의 나는 승부사나 건설가 타입의 동기는 딱히 없는 듯하다. 장인과 독립가 동기는 어느 정도 내 안에 존재한다. 그러나 가장 나의 액셀을 밟게 하는 엔진은 단연코 문제를 해결하고 싶은 사명감 욕구이다.


세상을 살아가고 경험하며 마주한 내가 풀고 싶어 하는 문제들의 공통분모를 찾는다면 그건 individual soverenignty, 즉 개인이 주체가 되는 것. 슬롯에 존재하는 시스템이 개인을 존속하는 게 아니라 개인을 위해 시스템이 작동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건 의료기관에서도 보이는 현상이다. 병원이라는 시스템의 효율성을 위해 환자가 수동적인 존재가 되어선 안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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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찰자모드로 진료를 하며 내가 몸담고 있는 가장 근접한 세계를 탐색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풀고 싶은 문제가 생겼다. 환자의 케어와 의료진들의 의사소통문제에 더 나은 방법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현재 이 문제를 풀기 위해 부단히 노력 중이다.


아무리 내 분야여도 쉽지 않다. 새로운 방식을 창조하고 현실적으로 사용가능하게끔 만드는 건 쉽지 않다. 그나마 다행인 건 나 혼자만이 갖고 있는 문제의식이 아니라는 거다. 또래 동기들부터 40년 넘게 치과의사로 일하신 치과협회 회장 할아버지 의사도 다 같은 대답을 했다. 필요한 제품이라고.


그렇다면 "왜 이 문제는 이제까지 해결되지 않았을까?"라는 질문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내 짧은 인생의 경험으로 내린 해답은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불편함이나 문제를 인식하지 못하거나 혹은 그렇다 하더라도 실제로 두 팔을 걷고 뛰어들어 해결하려 하지 않는 다.


이유는 당연하다. 먹고사는 것도 힘드니 그럴 여유가 없다. 만에 하나 여유가 있더라도 그런 짜증 나고 답답한 문제점들을 고치기 위해 실제로 뚜껑을 뜯어보면 몇백 개의 전선들이 꼬이고 꼬여 아수라장이 된 두꺼비집처럼 이건 뭐 말도 안 되게 복잡하고 머리 아프고 답이 안 나온다.


근데 이것보다 더 단순한 이유는 문제 해결이 금전적인 보상으로 연결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가 허다하다.

백화점 지하주차장 진입로가 좁아서 차 두대가 겨우 지나간다.

불편함을 겪는 건 운전하는 고객이다. 백화점이 겪는 불편함은 없다.

고객이 본인의 돈을 내어 백화점 지하추자장 진입로를 넓히는 공사를 추진하지 일은 절대 없다.

만에 하나 고객들이 너무 짜증 나서 더 이상 백화점을 가지 않는 다면 그땐 백화점은 충분히 주차장을 레노베이션할 인센티브가 주어진다.

그러나 현실에선 발길을 끊은 고객들은 손에 꼽을 정도로 적다. 특히 그 백화점만의 차별된 해택과 브랜드와 먹거리, 놀거리가 있다면 말이다.

각 잡고 서비스를 위해 온몸을 내던지는 회사라면 (예: 아마존) 실제 운영진들이 지하주차장에서 운전을 하며 불편함을 느끼고 컴플레인이 안 들어와도 공사를 했을 테지만 그런 기업은 흔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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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트업은 세상에 없는 걸 만들어 존재하는 문제를 풀어나가는 사업이지만 결국 사업은 사업이다. 근본적으로 사업이란 지출보다 수익이 높아야 지속가능한 시스템이다.

즉 내가 해결하고 싶은 문제가 여태껏 해결되지 않은 가장 큰 이유는 누가 이 문제의 진정한 이해관계자이며 누가 그 돈을 지불하여 사업구조가 구축이 되느냐가 미궁이었기 때문이다.


다시 돌아가 치과라는 마켓은 현재 미국 헬스케어에서 정말 작은 섹터다. 대략 4%.

4%는 정말 작은 숫자인 것 같지만. 워낙의 미국 헬스케어 마켓 자체가 거대하기에, 그 4%는 $189 Billion이다.

4%라는 정말 작은 것 같으면서도 $189 Billion이라는 상상을 초월한 어마무시한 마켓에서 우리의 제품을 지불할 이해관계자를 찾는 게 요새 탐색하고 있는 가장 큰 숙제이다.


솔직하게 답을 모르겠다. 근데 주어진 작은 문제부터 한 단계씩 돌파하다 보면 되지 않을까 싶다.

미국에선 다람쥐가 비둘기만큼 흔한 동물이다. 다람쥐는 도착지에 도달할 때 한 번에 쉬지 않고 달리지 않는 다. 몇 피트를 종종걸음 치다가 멈춘다. 멈춘 상태로 오른쪽 왼쪽 분주하게 고개를 흔든다. 다시 몇 피트 종종걸음을 치다가 멈춰 서서 이리저리 동태를 파악한다. 다시 종종걸음을 치고, 멈추고, 재정비하고 다시 움직인다. 짧은 종종걸음과 멈춤을 몇번씩 반복해서 시간도 더 오래 걸리고 동선도 비효율적이지만 끝내 다람쥐는 자기가 가고자 했던 도착지에 도달한다.


사업도 비슷한것같다. 내가 가려는 방향성은 잃지 않되 너무 크게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말고 하나하나 차근차근 다람쥐처럼 도착지를 종종걸음을 치고 멈추며 길을 확보하고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것. 풀려는 문제와 숙제를 더 잘게 쪼개어 하나씩 돌파하는 것.


파일럿 테스트를 앞두며 복잡해진 뇌를 정리하기 위해 글을 쓴건데, 쓰다보니 어째 다람쥐가 주인공이 된 느낌 (그래도 다람쥐는 귀여우니까 주인공이 되어도 봐줄수있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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