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산속에서 맡은 경상남도 거창의 냄새

작년 이맘때쯤 쓴 에세이

by닥터킴

살면서 항상 하고 싶었던 것 중 하나가 아무런 계획 없이 바카라들만 잔뜩 짊어지고 산속에서 며칠 지내는 것이었다. 세상과 사람들로부터 멀리 떨어진 자연 속에 파묻혀 오로지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자는 마음으로.

흔히들 산속에 들어간다고 하면 일종의 마음의 수련이나 명상을 연상하는데, 수련, 명상 이런 단어들은 너무 장대하고 부담스럽기만 하다.


그것보다는 그냥 현실세계로부터 멀어져 읽고 싶은 바카라을 몽땅 읽고 하고 싶은 생각을 마음껏 하고 내 마음대로 쓰고 싶은 글을 쓰고, 고요한 자연을 만끽하는 시간.


우리는 이번 여행의 이름을 디지털 디톡스라고 짓고 서로 좋아하는 바카라들과 음식을 가득 싸매고 차에 올라탔다. 물론 우리의 반려견 아인이도 함께!


이곳은 뉴욕 맨하탄에서 차를 타고 2시간 20분 정도 북쪽으로 - 좀 더 자세하게 말하자면 북부 뉴저지와 뉴욕주의 경계선 즈음에 위치한 곳이다. 영어로는 흔히 upstate new york이라고 부른다.


얇지만 길고 긴 튼실한 자작나무들이 빽빽이 둘러 쌓여있는 꽤나 멋진 별장에 도착했다.


겨울과 봄의 경계선의 날씨였다. 낮에는 15도로 올라갔고, 밤에는 영하 1도.

건물은 동남향이라, 오전부터 이른 오후까지 데크에 앉아있으면 태양빛이 모든 걸 감싸앉는다.

그곳에 있는 4일 동안, 매일 태양빛이 비추는 시간에는 데크에 앉아 갓 내린 커피를 마시며 바카라을 읽고 글을 썼다.

다양한 바카라을 가지고 갔지만 역시 자연 속에 있어서 그런지 소설바카라에 손이 갔다. 소설바카라들 중에서도 역시 무라카미 하루키 소설이 가장 재밌게 읽혔다.


그의 작품 <해변의 카프카>를 읽다 고개를 들면 산들바람에 부드럽게 움직이는 나뭇가지들이 보인다. 아직 겨울의 끝자락이라 잎은 없는 앙상한 나무들이지만 무라카미 하루키의 바카라을 읽고 있어서 그런지 왠지 저 자작나무들이 나에게 말을 걸어도 하나도 이상할 것 같지 않아 보인다.


시원한 산공기의 냄새를 맡고 들어마신다. 습기란 전혀 없는 상쾌한 공기. Crisp air.

어디서 이런 비슷한 냄새를 맡은 적이 있었는데... 천천히 눈이 감겼다.





초등학교 5학년 2학기 끝무렵 - 코가 시려오는 차가운 공기의 계절즘 - 경상남도 거창군으로 이사 갔다. 줄곧 도시생활만 하고 친할머니네, 외할아버지네 집도 서울이라 명절 때도 서울에 있던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시골에 오게 되었다.


분명 같은 한국어인데 외국어로 들려오는 낯선 경상남도 사투리. 맥도날드도 없는 초라한 작은 시골.

오랜 시간 정든 동네 친구들과 학교 친구들과 몇백 킬로 떨어져 너무나 낯선 이 시골 거창군에 정착했다.

나의 의도와는 전혀 상관없이.


너무나 분했고 억울했다. 내가 아직 어리다는 게. 왜 나는 나의 인생을 내가 아닌 타인(부모)의 의도로 살아가야 하는 것인가?

아마 그때 처음으로 다짐했다. 성인이 되자마자 독립하여 타인의 의도가 아닌 내 마음대로 살아가겠다고. 시간아 부디 빨리 흐르길.



전학 첫날, 학교에 있는 아이들은 서울말을 쓰는 나는 무척 신기하게 바라봤다. 간혹 가다 좀 삐뚠 아이들은

이곳에 왔으면 사투리를 써야지 왜 서울말을 쓰냐고 비아냥 거리기도 했다.

이해할 수 없었다. 내가 서울말을 써도 그들이 나의 말을 이해하는데 문제가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굳이 왜 사투리를 써야 하는 가? 이상한 반항심도 있었다. 서울말 쓴다고 뭐라 하니 더 서울말을 쓰고 싶게 만드는 청개구리 심보라고 할까. 어쨌든 거창에 있는 내내 나는 꿋꿋이 서울말을 썼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고 있는 사실과 다르게 아이들은 정말 강한 작은 생명체들이다. 교정치료를 하면서도 항상 느끼는 점이지만, 아이들은 새로운 것에 대한 적응력이 뛰어나고 고통을 더 잘 인내한다. 교정치료를 시작할 때 어른들은 열에 아홉 불평불만을 하지만 아이들은 그렇지 않다. 어른은 조금이라도 불편한걸 잘 참지 못하고 참지 않아야 할 이유를 몇십 가지를 들며 자기 합리화를 한다. 반면 아이들은 생각보다 잘 참고 포기하지 않는 다 특히 그게 재미와 호기심가 맞물린다면 말이다.


줄곧 도시생활을 했지만 경상남도 거창이란 자그마한 시골마을에 생각보다 나는 빨리 적응해 나갔다. 낯선 사투리가 어느새 친숙해졌고 갑자기 담임선생님이 수업시간 도중에 우리를 데리고 학교 뒷산에 가는 게 놀랍지 않고 당연한 일로 받아들여졌다. 학교 뒷산 숲 속에서 새로운 친구들과 탐험하며 산토끼를 만나는 게 하루 일과였다.


워낙 작은 시골이라 자전거를 타면 마을의 모든 곳을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었다. 예전에는 학교가 끝나며 아파트 단지입구에서 수학학원과 영어학원 버스를 탔어야 했다면, 여기 거창에선 모두가 약속한 듯 방과 후 자전거를 타고 개울가에 만나 옹기종기 모여 올챙이랑 개구리를 잡고 놀았다.


허기가 질 때면 동네 떡볶이 맛집을 갔는데, 꽤나 높은 언덕에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나의 21단 삼천리 자전거의 기아를 1단으로 맞췄어야 했으니까.

그곳은 우리의 성지이자 아지트였다. 그도 그럴게 같은 반 친구의 어머니께서 하던 떡볶이집이었다. 떡볶이를 먹다가 배가 부르면 분식집 부엌옆에 자그마한 문이 있는데, 그 문을 열고 들어가면 단칸방이 나왔다. 그곳에서 따뜻한 보일러를 틀고 친구들과 누워서 만화바카라을 읽었다. 그 자그마한 단칸방은 친구, 친구의 동생, 그리고 친구의 어머니 셋의 보금자리였다.


당시 나는 거창에서 가장 높고 신축인 현대-대우 아파트 단지 21층에 살았다. 45평 되는 평수에 방은 네 개였다. 거창의 모든 곳이 속속히 보이는 뷰에 깨끗하고 편리한 신축 아파트였지만, 아빠와 오빠가 싸우는 서늘한 순간이 일어나면 친구의 따뜻하고 떡볶이의 달큼한 냄새가 진동하는 작은 단칸방이 더 아늑하고 편안했다.



거창에 살면서 매일 자전거를 탔다. 학교를 갈 때도 매일 자전거를 탔는데, 집-학교 구간은 아직 다 개발되지 않은 구간이라 2차선 아스팔트 길 양옆으로 잡초가 무성한 밭이 허다했다. 군데군데 옥수수밭도 있었다.


영화 <비트>에서 오토바이가 정우성에게 자유이자 청춘이듯, 당시 초등학교 5-6학년인 나에게 자전거는 유일한 자유이자 일탈이었다. 분명 추운 겨울에 거창으로 이사했고, 장갑이나 목도리를 싫어해서 항상 맨손에 자전거를 탔었는데, 딱히 추웠다는 기억이 전혀 없다. 어릴 때는 춥다는 개념이 존재하지 않는 거일지도 모른다. 자전거를 타며 이리저리 내 마음대로 돌아다니고 친구들과 함께하는 재미와 놀이의 즐거움이라는 감정이 너무 크다 보니 자연스럽게 춥다는 생각자체를 못했던 것 같다.


그때 그 공기, 냄새.

힘차게 자전거 페달을 밟으며 맡았던 잡초, 나무들, 비료가 적절하게 섞인 차가운 공기.

도시에 바쁘게 살다가 이렇게 자연 속으로 들어오면 불현듯 그때가 생각난다.

기억하려 애써도 거창 친구들의 얼굴과 이름은 기억이 나질 않는 다.

까마득한 옛날이기도 하고 거창에서는 6개월 남짓 살다가 미국으로 가는 바람에 그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상하게 그때 그 냄새만큼은 내 뇌에서 폐기되지 않은 채 여전히 남아있다.





눈을 뜨고 현실을 만끽한다. 내 발밑에는 검은색 털뭉치 반려견 아인이가 누워있다.

새삼 이게 꿈인가 싶다.

어릴 때 강아지가 갖고 싶다고 노래를 불러 되었지만 부모님은 절대로 허락해주지 않으셨다.

근데 그렇게 갖고 싶었던 강아지가 지금 내 앞에 있다니! 신기하면서도 감사하다.


산들바람이 나의 머리카락을 가볍게 간지럽힌다.

별장에 있는 보스 스피커에선 슈베르트의 <피아노 소나타 17번 D장조>이 나온다. <해변의 카프카>를 읽으며 바카라에 나오는 모든 클래식 곡들을 적어놨다가 바카라을 다 읽고 나서 차례로 듣고 있었기 때문이다.


엄마는 클래식 피아노를 전공자이며 현역 때 피아노 선생님으로 일하셨지만, 나는 피아노를 전혀 칠 줄 모른다.

클래식 음악을 애정하는 엄마아빠 덕분에 어릴 때부터 집에선 언제나 클래식 음악이 틀어져 있었고 여전히 부모님은 아침에 눈을 뜨시자마자 제일 먼저 클래식 음악을 트신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나는 클래식 음악에 대해 아는 게 딱히 없다. 그래서 클래식 음악은 유년시절 나와 함께했기에 매우 익숙한 존재이지만 동시에 전혀 알지 못하는 신비하고 모호한 존재다. 나의 의도와는 다르게 매일 마주치게 되는 옆집 이웃처럼 얼굴은 익숙하되 그 사람에 대해 아는 게 전혀 없는 존재랄까.


근데 지금만큼은 이상하게 슈베르트의 음악이 어렵게 느껴지지 않는 다.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맑다.

저 멀리 서는 거위 떼들이 웅성거리는 소리가 난다.

빽빽한 자작나무들 때문인지 왠지 이곳은 우리밖에 존재하지 않는 세상의 끝자락에 있는 것 같다.


시간은 분명 흐르고 있는데 시간이 멈춘 것 같다.

아니 시간이 흐르지 않았으면 한다.


다시 키가 멀대같이 큰 앙상한 자작나무들을 본다. 고개를 올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을 본다.

깊게 숨을 들여 약간의 건조하지만 상쾌한 공기의 냄새를 맡는다.

새들의 분주한 소리를 듣는 다.

내 발에 기대어 잠든 아인이를 바라본다.

별장안에서 콧노래를 부르며 점심으로 먹을 샌드위치를 만드는 완주를 본다.


언젠가 지금 내가 느끼고 겪는 이 경험이 기억 속에서 당연히 사라질걸 알면서도 어떻게든 기억에 남길 바라는 간절한 마음으로 눈과 귀와 코로 지금을 담는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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