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에 근무하던 20살 치과직원이 죽었다.

by닥터킴

월요일 아침.

언제나 그렇듯 한 손엔 커피를 들고 오피스에 들어갔다. 교정과는 2층이라, 원래 2층 안내데스크에 있는 clock-in 펀치머신을 이용하는데 하필 그날 그 기계가 망가지는 바람에 1층 일반치과 진료실에 있는 펀치머신을 써야 했다.


1층에 들어가자마자 나를 마주한건 눈이 퉁퉁 부은 오피스 매니저와 일반치과 수간호사의 멈추지 않는 눈물이었다.


"왜 그래 무슨 일이야?"


가까스로 가둔 수도꼭지가 수압에 못 이겨 콸콸 터지듯 오피스 매니저는 울음을 터트리며 나에게 두 단어를 외쳤다.

"아다마리스가 죽었어!"


아다마리스?

순간 눈살을 찌푸리며 기억을 하려고 애써보았지만 전혀 기억에 없는 이름이었다.


아무 말하지 못한 채 고개를 갸우뚱한 날 의식한 매니저는 계속해서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여기 1층 일반치과 안내데스크에서 일하던 직원이었어"


아 일반치과라 내가 몰랐구나... 기억이 나지 않은 이유가 납득이 되었다.

울고 있는 매니저와 수간호사의 어깨를 잠시 토닥여 주고 진료시간이 5분이나 늦는 바람에 서둘러 2층 교정과 진료실로 들어갔다.



월요일 오후.

아다마리스의 죽음은 모든 병원 직원들이 알게 되었고, 교정과도 예외는 아니었다. 당연히 분위기는 다운이었고 다들 여전히 믿기지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교정과 리드 간호사인 호세가 나에게 다가와 한숨을 크게 내쉬며 말했다.

"참 슬픈 날이네요..."


아무리 기억해보려 해도 아다마리스라는 이름이 낯이 익지 않아 물었다.

"아다마리스가 누구였지?"


"1층 안내데스크에서 일하는 직원인데, 왜 저번에 교정치료 시작했다가 바로 그다음 날 교정기 떼고 싶다고 했던 직원 있잖아요"



불과 1분 전까지만 해도 전혀 알 수 없었던 텅 빈 스케치북 같았던 의문의 인물이 갑자기 선명하게 그려졌다.

남미출신인 태닝한 피부에 통통하고 동그란 눈에 약간 붉고 밝은 긴 생머리를 했던 그 직원.


치아사이가 벌어져서 교정치료를 시작했지만 24시간도 안된 그다음 날 아침에 교정기 때문에 밥 먹는 것도 힘들고 불편하다며 교정기를 떼 달라고 어리광 피우던 겨우 20살이었던 그 직원.


고통 없이 가지런한 치아는 얻을 수 없다며 일주일만 더 참아보아라, 넌 할 수 있다며 어떻게든 설득시켜보려 했지만 결국 한 달 뒤에 교정장치를 떼고 나에게 짧았지만 잠시라도 교정치료해 줘서 고맙다고 환하게 웃었던 그 직원.


그 직원이 죽었다. 그것도 어젯밤에.



순간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이상한 감정이 들었다. 막연한 슬픔은 아니었다. 그런 슬픔을 느끼기엔 난 그녀에 대해 아는 것도 없었고 친분이 있던 것도 아니었다. 개인적으론 모르지만, 병원에서 오며 가며 "좋은 아침"정도의 가벼운 인사만 하던 사이.


오히려 너무 친분이 없어서였을까? 이상한 허무한 감정이 들었다.

분명 토요일, 그녀가 죽기 하루 전이었던 그 토요일, 병원에서 마주쳤었던 것 같은데.

당연히 월요일에 출근하면 있을 거라 여겼던 그 직원이 이 세상에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이상했다.


이상하다는 단어는 명확하지가 않아 쓰고 싶지 않지만 이상하다는 말 말고는 도무지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



교정진료실 중앙에 있는 컴퓨터 바카라상에 비스듬히 기대어 수간호사 호세의 말을 듣던 그 순간 나도 모르게 나와 함께 일하는 교정팀의 일원 하나하나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 장난기 가득하지만 힘든 일에 마다하지 않고 항상 yes를 외치는 호세.

- 항상 환하게 굿모닝을 외치며 긍정기운 퍼트리는 스테파니.

- 조용하지만 재치 있고 교정과 티비 채널을 담당하는 영화광 케빈.

- 180cm가 넘는 엄청난 덩치와 팔뚝에 과묵한 테토남이지만 외강내유인 조슈아.

- 간혹 잔머리 굴리지만 미워할 수 없는 장난꾸러기이자 우리 팀 막내 세라.

- 지능이 높고 포토제닉 기억력의 소유자이지만 엉뚱한 곳에 선 칠칠맞은 제네시스.

- 열정과 파이팅이 넘쳐서 주체할 수 없는 에너제로 종종 동시에 환자를 두 명이나 보는 샤데.

- 춤 추지 않는 인생은 살고 싶지 않다는 낭만주의에 발가락 신발 애호가 후완.

- 나의 실수를 지적해 줄 정도로 꼼꼼하고 두뇌회전이 빠르며 내가 믿고 맡기는 멀로니.

- 새 환자를 마주할 때도, 환자 교정진료를 할 때도, 월드컵 브라질 경기를 볼 때도, 시시콜콜한 농담 따먹기를 할 때도 언제나 심각한 표정을 짓는 브렌다.


한 명 한 명과 함께해 온 지난 시간들, 딱히 특별하거나 대단한 건 아니지만 썰렁한 개그에 같이 웃고, 진상 환자 때문에 같이 짜증을 내고, 이번 월드컵을 보며 열광하고 환호하고, 이런저런 시답지 않은 대화를 했던 작고 소소한 순간들이 뇌를 스쳐 지나갔다.


이들 중 하나가 혹은 나 자신이 내일 당장 세상에서 사라질 수도 있다는 상상을 잠시 해보니 먹먹했지만 그것보단 인생이 이렇게 허무할 수가 있다는 것에 허탈했다.




아다마리스의 죽음은 내 삶의 항로를 바꿀 만큼의 충격적인 죽음은 당연히 아니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 친구들, 가족들의 죽음이었다면 이야기가 달랐을 테다. 근데 오히려 얼굴을 알고 일하며 자주 보았지만 잘 알지 못했던 사람의 죽음이어서 그런지 보다 객관적인 시선을 갖게 된다.


특히 이런 예상하지도 못한 갑작스러운 죽음은 우리의 인생이 허무하게 만들 수 있지만 그렇다고 당장 일을 때려치우고, 그냥 내키는 대로 즉흥적으로 막사는 욜로 (YOLO)멘탈은 현명하지 않다.

그렇다면 우린 이 허무함과 죽음을 상대로 어떻게 살아야 하나?





화요일 아침.

병원 인사팀이 아다마리스의 죽음을 애도하는 메시지를 보냈다. 병원 경영진이 보내는 애도의 메시지는 없었다.


매달 3번째 화요일엔 모든 병원 지점에 있는 교정과 의사들, 교정 팀원들, 오피스 매니저들, 경영진 팀, 인사팀, IT팀과 회의를 한다. 그리고 오늘이 바로 그 3번째 주 화요일이었다.


어쩌다 보니 교정과를 총괄하는 디렉터인 나는 매달 이 회의를 리드한다. 보통은 교정진료 및 환자관리에 대해 얘기하는 데, 오늘만큼은 왠지 아다마리스의 죽음을 애도하고 우린 어떤 마음가짐으로 일을 하고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해 얘기를 꼭 해야겠다는 강렬한 드라이브가 있었다.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다. 근데 그래야만 할 것 같았다.



미팅시작 한 시간 전. 갑자기 내 직속 보스인 COO(최고 운영바카라임자)에게 메시지가 왔다. 미팅 때 의사들에게 전달했으면 하는 요구사항들이었다. 순간 고민이 되었다 어떻게 미팅을 진행할지. COO가 원하는 방향으로 할지. 아니면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할지. 하지만 고민할수록 나의 생각에 대한 확신은 더 커져갔다. 누가 날 어떻게 생각하든 난 꼭 이 얘기를 해야겠다고.




화요일 점심.

40명 정도가 회의에 들어왔고, COO도 들어왔다.


조심스럽지만 강건하게 아다마리스의 죽을을 꺼냈다. 그녀의 죽음에 애도를 표현했고, 그녀에 대해 알지 못했지만, 그녀의 죽음으로 생각해 본 어떻게 우린 살아야 하나? 에 대한 질문과 나름 내가 내린 해답 두 가지에 대해 얘기했다.


1. 현재 내가 있는 위치에, 주어진 곳에서, 매 순간 나의 최선을 다하기 (Do your very best in a given situation)

2. 타인에게 관대하기 (Be Kind to others)


내가 있는 그 순간에 최선을 다해 일을 하는 건 결국 사명감을 갖고 일하는 것과 같다. 바쁜 병원에선 많은 환자를 볼 때 모든 환자에게 최선을 다하는 건 쉽진 않지만 그래도 할 수는 있다. 그 순간엔 최선을 다하여 사명감을 갖고 일을 하면 돌이켜보았을 때 후회할 삶을 혹은 허무한 삶을 살진 않을 것 같다.


오히려 매 순간 최선을 다해 사는 것이야 말로 죽음이라는 두려움과 허무함에 굴복하지 않고 죽음과 맞서 싸우는 꽤 멋진 애티튜드이지 않을까?



얼핏 보면 kind, nice 둘 다 비슷한 뜻의 단어 같지만 결이 다르다.

Nice는 예의를 갖추고, 친절한 뜻에 가깝다면 kind는 관대하고, 이타적인 뜻을 갖고 있다. 즉 nice는 좀 더 표면상의 매너를 갖고 예의 있게 행동하는 거라면 kind는 조금은 귀찮은 상황이나 불편한 상황이더라도 타인을 위해 배려하고 도와주는 행동이다.


같이 일한다고 해서 친구가 되거나 점심을 같이 먹거나 퇴근하고 굳이 연락을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함께 일을 하는 그 순간만큼은 서로에게 kind 하고, 관대하고 배려하고 이타적일 필요는 있다.


동료의사와 함께 환자들을 볼 때, 나의 체력이 된다면 환자 한 명을 더 보고, 먼저 퇴근하는 날이어도 칼퇴가 아니라 진료 마무리를 같이 하는 배려심이다.


잔머리 굴리고 얌체 같은 행동을 하는 건 정말 쉽다. 어려운 건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왜? 내가 그렇게 하면 함께 일하는 동료의사가 더 고생하는 걸 알기 때문이다.

나의 편의와 동료의 편의를 같은 선상에 두었을 때 상대를 배려하는 걸 택하는 건 쉬운 게 아니다.


함께 일을 한다는 건 결국 공동의 목표를 달성하는 것이고, 이왕 함께 일하는 거 기분 좋고 즐거운 마음으로 하는 게 최고가 아닐까? 어차피 허무하게 죽을 수도 있는 인생, 지금 살아있는 이 순간에 동료들과 함께 웃으며 좋은 마음으로 일해서 나쁠 건 없지 않나?

결국 이런 분위기와 마인드셋이 지속적으로 쌓이면 우리가 일하는 공간의 컬처가 만들어진다.



이 얘기를 끝으로 미팅에 참석한 모두에게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how do you want to be remembered when you die?"


내가 차린 회사가 아닌 다른 사람이 차리고 이끄는 회사지만 마치 나의 회사인 것처럼 상상을 하며 진정성을 담아 나의 철학과 생각을 솔직하게 나누었다. 지금 내 회사는 아직 작고 갈길이 멀지만, 미리 예행한다는 마음으로.


누군가에겐 너무 심각하고, 심도 있는 얘기라 불편했을 수도 있겠지만, 미팅에 들어온 40명 중에 한 명이라도 앞으로 일을 할 때 주어진 임무에 최선을 다하고 함께 일하는 동료에게 kind 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미팅을 끝냈다.



화요일 밤.

영화 오디세이에서 오디세우스는 아테네에게 반복적으로 묻는 다.

왜 신은 인간이 알 수 없는 방식으로 얘기를 하느냐.

그러자 아테네는 한 치의 망설임 없이 대답한다.

그 누가 천둥을, 불을, 아이의 웃음을, 풍성한 수확을 이해하지 못하는 가.


과학의 문명이 도달하기 전 인류는 자연재해를 신의 소통방식으로 받아들여야 납득이 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인류 역사상 가장 과학의 문명이 앞서 나간 현재 시점에도 죽음 앞에선 오리무중이다.


한순간에 죽음을 마주할 수 있는 허무한 우리의 인생을 우린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 가.

죽음을 피할 수 없는 생명체로써 인생 원래 그런 거야라는 대답은 게으르고 무바카라임한 대답이다.

그러나 정답 또한 없다.

개개인마다 대답은 다를 테고 같은 개인으로서 인생의 어떠한 굴곡점을 지나느냐에 따라 대답이 달라질 테다.

현재 인생을 살고 있는 내가 내린 대답은 주어진 환경 속 임무에 최선을 다하고 타인에게 관대하며 사는 것이다.



잠시라도 아다마리스의 치아를 교정할 수 있었고 그녀와 자그마한 친분을 쌓을 수 있어서 참 다행이란 생각이 문득 든다. 그리고 잠깐이었지만 그녀의 치아를 교정치료할 때 최선을 다해 브라켓을 완벽하게 부착하고 치료를 했기에 후회가 없다는 것 또한 참 다행이다.


사후세계는 과학이 아닌 믿음의 영역이라 실제 존재여부는 우리가 평생 살면서 모르겠지만 오늘만큼은 아직 꿈을 펼치기도 전인 20살이란 어린 나이에 세상을 떠난 그녀에게 꽤 멋지고 근사한 사후세계가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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