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사람이라는 거울 앞에서 더 뜨거워지는 이유는?

by최환규

살다 보면 누군가에게 서운하거나 화가 치밀어 오르는 순간을 수없이 마주한다. 온라인 게임 동료의 무심한 한마디, 오랜 친구의 배려 없는 태도 혹은 가족의 지나친 간섭까지 혼자 방 안에 가만히 앉아 있을 때 그런 기억이 떠오르면 마음속에서 잠시 불꽃이 일었다가도 이내 잦아들곤 한다. ‘그래, 그 사람도 그럴 만한 사정이 있었겠지’, ‘내가 너무 예민하게 굴었나 보다’ 하고 스스로 다독이며 묵묵히 삼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마음의 혼잣말은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힘을 잃고 흩어진다.


하지만 그 불씨를 마음에만 묻어두지 않고 누군가에게 꺼내놓는 순간 이야기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간다. 신기하게도 사람의 감정은 혼자 품고 있을 때보다 누군가에게 말로 전달할 때 몇 배나 커지고 짙어진다. 특히 상대가 내 마음을 알아줄 것 같은 내 편이라고 느껴질 때 자신도 모르게 겪었던 일을 더 자극적으로 묘사하고 감정을 부풀린다.


“그 사람이 나한테 이런 식으로 말했다니까”라는 말속에는 단순한 사실 전달을 넘어 내 억울함을 알아달라는 갈망이 담겨 있다. 이야기를 풀어내면서 원래 서운했던 감정은 점점 더 또렷한 분노로 바뀌고, 별일 아니었던 스침은 용서하기 힘든 상처로 둔갑한다. 감정은 입 밖으로 나오는 순간 스스로 생명력을 얻어 자라나기 시작한다.


맹목적인 맞장구가 만드는 감정의 늪


친한 사람에게 불만을 털어놓을 때 기대하는 반응은 사실 명확하다. 상대가 내 편이 되어 함께 분노해 주는 것이다. 만약 상대가 “정말 너무했다! 어떻게 사람이 그럴 수가 있어?”라며 두 팔을 걷어붙이고 내 말에 전적으로 동조하면 그 순간만큼은 가슴이 뻥 뚫리는 듯한 시원함을 느낀다. 내 억울함이 정당성을 얻었고, 내가 틀리지 않았다는 든든한 지지를 확인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시원함 뒤에는 위험한 함정이 숨어 있다. 상대가 무조건적으로 내 감정을 수용하고 맞장구를 쳐주면 처음에는 작았던 불만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진다. 내 편의 입을 통해 확인된 분노는 이제 객관적인 진실처럼 굳어버린다.


“역시 내가 이상한 게 아니었어. 그 사람이 진짜 나쁜 사람이었네!”


이렇게 되면 상대를 향한 불만은 단순한 서운함을 넘어 미움과 적대감으로 번져나간다. 둘이서 주고받는 맞장구는 마치 불붙은 장작에 부채질하는 것과 같다. 서로의 동의를 거치며 감정의 농도는 점점 더 짙어지고, 결국 스스로 만든 감정의 늪에 깊이 빠져버리고 만다.


그렇다면 반대의 경우는 어떨까. 답답한 마음에 신나게 불만을 쏟아냈는데 듣고 있던 상대가 차분하고 냉정한 표정으로 이렇게 말하는 순간이다.


“그런데 가만히 들어보니까, 너한테도 좀 문제가 있었던 것 같은데? 그 사람 입장에서는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잖아.”


틀린 말이 아닐 수도 있다. 이성적으로 따져보면 지극히 합리적이고 객관적인 지적일 수 있다. 하지만 그 순간 말을 꺼낸 사람의 마음에는 차가운 찬물이 끼얹어진다. 논리가 옳으냐 그르냐를 떠나 내 편이라고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당했다는 생각으로 인한 분노, 내 상처를 무시당했다는 생각에서 서운함이 불쑥 솟아오른다.


사람은 감정이 격해졌을 때 이성적이고 도덕적인 정답을 원하지 않는다. 단지 내 아픔을 먼저 알아주길 바랄 뿐이다. 그런데 상대가 곧바로 시시비비를 가리려 들면 대화의 문은 굳게 닫혀버린다. ‘너마저 나를 이해 못 해주는구나’라는 실망감은 그 사람과의 사이에 높은 벽을 만든다. 결국, 원래 상대에게 품었던 불만은 해결되지 않은 채 곁에 있던 소중한 사람과의 관계마저 멀어지는 결과를 낳게 된다.


관계는 감정을 키우는 울림통이다


이처럼 사람의 감정은 혼자만의 방에 갇혀 있을 때와 다른 사람이라는 거울을 마주할 때 완전히 다른 농도를 띤다. 다른 사람과의 상호작용이라는 울림통을 통해 감정을 키워나가기 때문이다.


부정적인 감정만 그런 것은 아니다. 누군가에게 고마웠던 일, 작지만 뿌듯했던 경험도 좋은 사람과 나누며 함께 기뻐하면 그 행복의 깊이는 배가 된다. 반대로 불만과 서운함은 나누는 방식에 따라 끝없이 증폭되어 관계를 태워버리는 불길이 되기도 한다.

인간관계에서 감정의 교류란 단순히 말을 주고받는 행위가 아니다. 그것은 서로의 마음속에 있는 불씨를 나누는 일이다. 무조건 부채질을 해서 불길을 키우는 것도 위험하고, 활활 타오르는 불에 찬물을 확 끼얹어 연기만 자욱하게 만드는 것도 현명하지 못하다.

진정한 관계의 지혜는 바로 이 감정의 온도를 조절하는 데 있다. 상대가 억울함을 털어놓을 때는 먼저 그 마음의 온도를 충분히 느껴주고 고개를 끄덕여주어야 한다. 감정이 충분히 받아들여져 불길이 스스로 잦아들었을 때 비로소 부드럽게 이성의 손을 내밀어야 한다. “그래, 많이 속상했겠네. 그래도 마음이 좀 가라앉으면 다른 쪽으로도 한번 생각해 보자”라는 한마디처럼 말이다.


누군가에게 불만을 털어놓을 때도 스스로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 지금 털어놓는 이야기가 정말 사실 그대로인지, 아니면 동조를 얻기 위해 나도 모르게 부풀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를 자신에게 물어야 한다. 누군가에게 말을 전달하는 순간, 그 감정은 나만의 것이 아니라 두 사람의 공간에 퍼지는 실제적인 힘을 갖게 되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입장이 되었을 때도 지혜가 필요하다. 무조건 편을 들어주는 것은 상대의 미움을 키우는 기름이 될 수 있고, 그렇다고 냉정하게 잘못을 가려주는 것은 상대의 마음에 상처를 줄 수 있다. 필요한 것은 이성적인 판결이나 무조건적인 동조가 아니라 상대가 느낀 억울함과 슬픔 그 자체에 대한 ‘따뜻한 들어줌’이다. “네가 마음이 많이 상했겠구나” 하고 상대의 느낌에 먼저 공감해 주되 그 사람의 판단까지 함께 부풀리지 않는 절제가 필요하다.


누구나 매일 '다른 사람이라는 거울 속'에서 내 감정을 확인하고 살아간다. 다른 사람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미움과 불만의 농도를 짙게 만들기보다 이해와 온기의 농도를 더 깊게 만들어가는 관계를 선택하는 것이 수많은 관계의 파도 속에서 내 마음을 지키고, 상대와의 관계도 건강하게 지키는 길이다.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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