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슬롯에서 술은 인간관계의 윤활유이자 필수적인 매개체로 대접받아왔다. 처음 만난 어색한 자리에서 술 한잔을 곁들이면 금세 서먹함이 사라지고, 평소에는 쉽게 꺼내지 못하던 속마음도 술기운을 빌려 털어놓을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비즈니스 미팅에서부터 오랜 친구들과의 모임에 이르기까지 술이 빠지지 않는 배경에는 ‘술이 인간관계를 더욱 가깝고 돈독하게 만들어준다’라는 강력한 슬롯적 믿음이 자리 잡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믿음은 상당 부분 착각이거나 과장된 환상에 가깝다. 술이 일시적으로 긴장을 완화하고 분위기를 띄우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지만, 장기적이고 실질적인 관점에서 보면 술이 인간관계에 미치는 긍정적 영향보다는 부정적 영향이 훨씬 크다. 술을 매개로 맺어진 관계는 모래 위에 쌓은 성처럼 취기가 가시면 함께 사라지기 일쑤이며, 오히려 술로 인해 돌이킬 수 없는 오해와 갈등이 싹트는 경우가 허다하다.
많은 사람이 술자리에서 나눈 대화가 깊은 소통이라고 착각하지만, 그것은 뇌의 이성적인 기능이 마비된 상태에서 뱉어내는 파편화된 감정의 배설에 불과할 때가 많다. 따라서 술이 인간관계에 정말로 유익한지, 오히려 우리가 맺고 있는 소중한 연결들을 갉아먹고 있는 것은 아닌지 냉정하게 따져보아야 할 때다.
알코올이 우리 몸에 들어가면 가장 먼저 뇌의 전두엽 기능이 저하된다. 전두엽은 이성과 논리, 충동 조절을 담당하는 기관이다. 즉, 술을 마시면 평소라면 이성의 필터로 걸러냈을 거칠고 정제되지 않은 말들이 아무런 여과 없이 밖으로 튀어나오게 된다. 많은 사람이 이를 두고 솔직해진다고 포장하지만, 실상은 무례해지는 것에 불과하다.
술기운이 오르면 사소한 의견 차이도 커다란 자존심 싸움으로 번지기 쉽다. 맨 정신이었다면 웃고 넘겼을 지인의 농담에 갑자기 분노를 터뜨리거나, 과거의 서운했던 감정을 굳이 들추어내어 분위기를 갉아먹는 일이 빈번하게 발생한다.
술자리에서 호기롭게 뱉은 험담이나 비밀 누설, 상대의 약점을 건드리는 발언 등은 다음 날 아침 깊은 후회를 남긴다. 미안하다고 사과하더라도 한 번 상처받은 상대방의 마음과 깨어진 신뢰는 쉽게 회복되지 않는다.
또한, 알코올은 방어 기제를 무너뜨리고 공격성을 자극한다. 실제로 사소한 시비가 큰 몸싸움이나 법적 분쟁으로 이어지는 관계 파탄의 시발점에는 언제나 과도한 음주가 자리하고 있다. 술이 없었다면 부딪칠 일 없었을 건강한 관계가 단 한 번의 술자리 말실수와 감정 격해짐으로 인해 영영 남보다 못한 사이로 갈라서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은 술의 파괴적인 단면을 잘 보여준다.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 “형 동생 하자”라며 술자리에서 어깨동무를 하고 세상에 둘도 없는 사이처럼 굴던 사람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술자리에서 맺어지는 수많은 인맥의 치명적인 결함은 그 관계의 지속성과 깊이가 턱없이 얕다는 점이다.
알코올이 분비하는 도파민 덕분에 술자리에서는 누구나 친근하고 매력적인 사람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이것은 화학 물질이 만들어낸 일시적인 감정적 흥분 상태일 뿐 서로에 대한 진정한 이해나 존중을 바탕으로 한 유대감이 아니다. 다음 날 술이 깨고 나면 어제 무슨 대화를 나누었는지조차 기억나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며, 다시 만나면 어색한 기류만 흐르기 십상이다.
또한, 술을 중심으로 모이는 관계는 대개 ‘술을 마시기 위한 목적’으로만 유지된다. 정작 내 삶에 진짜 위기가 찾아오거나 진지한 고민 상담이 필요할 때 술자리에서 친해진 수많은 술친구들은 실질적인 도움이 되지 못한다. 그들은 나라는 사람 자체보다 함께 술을 마시며 즐길 수 있는 분위기를 소비하는 것에 더 관심이 있기 때문이다. 결국, 보여주기식 술자리 인맥을 관리하기 위해 들인 시간과 비용, 에너지는 고스란히 낭비로 돌아오고, 남는 것은 인간관계에 대한 더 큰 회의감과 공허함뿐이다.
술에 의존하는 인간관계가 늘어날수록 우리 삶에서 가장 먼저 보호받아야 할 진짜 소중한 관계들은 방치되고 소외된다. 퇴근 후 지인들과의 술자리가 잦아질수록 가정에서 가족과 함께 보낼 수 있는 시간은 물리적으로 줄어들 수밖에 없다.
밖에서는 호인 소리를 들으며 주변 사람들에게 술을 사고 분위기를 맞추는 사람이 정작 집에 돌아와서는 술에 취해 피곤하다는 핑계로 배우자와의 대화를 피하거나 자녀에게 짜증을 내는 모습은 흔히 볼 수 있는 비극이다. 잦은 음주로 인한 경제적 지출, 늦은 귀가, 숙취로 인해 주말을 무기력하게 보내는 행동 등은 가족에게 커다란 정서적 고통을 안기고 가정불화의 불씨가 된다.
진정한 인간관계의 건강함은 나를 무조건적으로 지지해 주는 가장 가까운 사람들과의 결속력에서 나온다. 하지만 술은 그 소중한 에너지를 외부의 얄팍한 관계들에 분산시키고 정작 내 울타리 안의 사람들에게는 상처를 주는 주범이 된다. 멀리 있는 사람들의 비위를 맞추느라 내 곁의 사람들을 외롭게 만드는 것, 이것이야말로 술이 인간관계에 미치는 가장 치명적인 부작용이다.
이제는 “술을 마셔야 진짜 친해진다”라는 과거의 낡은 패러다임에서 벗어나야 한다. 술이라는 가짜 윤활유 없이도 맨 정신으로 서로를 마주할 때 훨씬 더 단단하고 건강한 관계를 맺을 수 있다.
차 한 잔을 사이에 두고 나누는 맑은 대화는 서로의 눈빛과 어조에 온전히 집중하게 만든다. 내 감정을 과장하거나 왜곡하지 않고 담백하게 전달할 수 있으며, 상대의 이야기도 오해 없이 깊이 있게 경청할 수 있다. 술기운에 기대어 뱉는 무바카라임한 위로보다 맑은 정신으로 건네는 진심 어린 격려와 조언이 상대의 마음에 훨씬 더 깊은 울림을 준다.
함께 취미 활동을 즐기거나, 운동을 하거나, 좋은 바카라을 읽고 생각을 나누는 모임 등 술이 배제된 관계는 서로의 생산적인 성장과 긍정적인 에너지 발산에 기여한다. 이러한 관계는 다음 날 아침 머리가 아프거나 후회할 일이 없으며, 시간이 흐를수록 서로에 대한 신뢰와 존경이 쌓여 쉽게 흔들리지 않는 인생의 진정한 자산이 된다.
결국, 인간관계의 핵심은 ‘얼마나 많은 술잔을 부딪쳤는가’가 아니라 ‘얼마나 진정성 있게 서로의 삶을 공유했는가’에 있다. 술이라는 거품을 걷어낼 때 비로소 내 곁에 남은 진짜 사람들의 가치가 선명하게 드러나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