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리학에서 말하는 관성의 법칙은 명쾌하다. 외부에서 힘이 가해지지 않는 한, 정지해 있는 물체는 계속 정지해 있으려 하고 운동하는 물체는 계속 그 방향으로 움직이려 한다. 그런데 이 물리학의 원리는 차가운 기계나 거대한 천체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매일 숨 쉬듯 맺고 살아가는 인간관계의 세계에서도 관성은 놀라울 정도로 정교하게 작동한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는 결코 멈춰 서 있는 침묵의 상태로 유지되지 않는다. 긍정이든 부정이든, 일정한 방향성과 속도를 가지고 어디론가 계속 굴러간다. 한 번 형성된 마음의 결은 외부의 강한 충격이나 의지적인 변화가 개입하기 전까지 이전의 상태를 계속 유지하려는 성질을 지닌다. 이것이 바로 인간관계에 존재하는 관성의 법칙이다.
처음 누군가를 만났을 때를 떠올려보자. 서먹하고 어색한 정지 상태의 관계를 움직이게 하려면 상당한 에너지가 필요하다. 먼저 인사를 건네고, 공통의 관심사를 찾고, 내 마음을 조금씩 열어 보이는 ‘첫 번째 힘’이 가해져야 비로소 관계는 굴러가기 시작한다.
일단 긍정의 방향으로 굴러가기 시작한 관계는 시간이 흐를수록 자발적인 동력을 얻는다. 작은 친절이 상대의 감사로 돌아오고, 그 감사가 다시 더 큰 신뢰로 쌓이는 과정에서 관계는 강력한 운동 관성을 획득한다. 이때는 약간의 오해나 부주의한 실수가 발생하더라도 관계가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 이미 긍정의 방향으로 거대하게 굴러가고 있는 관성의 힘이 어지간한 작은 방해물 정도는 가볍게 덮고 지나가기 때문이다.
‘그 사람이라면 그럴 리가 없어’ 혹은 ‘무슨 사정이 있겠지’라는 신뢰의 해석은 관계가 가진 긍정의 관성이 만들어내는 자연스러운 보호막이다. 긍정의 관성이 지배하는 관계 속에서 사람들은 안전함을 느끼며, 서로의 성장을 이끄는 든든한 조력자가 된다.
그러나 관성의 법칙은 차갑고 공평하다. 이 법칙이 부정한 방향으로 작용하기 시작할 때 관계는 예기치 못한 비극을 맞이한다.
수년간 쌓아온 견고한 신뢰도 단 한 번의 결정적인 거짓말이나 신의를 저버리는 행동이라는 ‘외부의 힘’을 받으면 그 궤도가 급격히 꺾인다. 신뢰를 잃는 순간 관계를 받치고 있던 바닥이 기울어지며 부정의 관성이 작동하기 시작한다.
부정의 관성이 무서운 이유는 한번 가속도가 붙으면 걷잡을 수 없이 빠르고 치명적으로 굴러 떨어진다는 점이다. 어제까지는 따뜻하게 느껴졌던 상대의 말 한마디가 오늘은 의심과 비꼬음으로 들리기 시작한다. 상대의 작은 행동 하나에도 나쁜 의도를 단정 짓게 되고, 그 의심은 다시 상대에게 반사되어 서운함과 분노를 유발한다. 의심이 확신이 되고, 확신이 대립이 되는 이 꼬리를 무는 악순환은 부정의 관성이 가져다주는 무서운 가속도다.
한번 뒤틀린 관계는 가만히 놔둔다고 해서 저절로 회복되지 않는다. 오히려 내버려 둘수록 미움과 경멸의 방향으로 더욱 빠른 속도로 달려갈 뿐이다. 경사면을 굴러내러 가는 수레처럼 부정의 관성은 특별한 브레이크를 잡지 않는 한 관계의 완벽한 파국을 향해 직진한다.
움직이는 관성만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관계에는 ‘정지 관성’ 역시 존재한다. 오랜 시간 함께 지낸 연인이나 가족 혹은 온라인 게임 동료 사이에서 자주 발견되는 모습이다.
서로에게 너무 익숙해진 나머지 더 이상 새로운 노력이나 감정의 투자를 하지 않는 상태, 즉 관계가 정지해 버린 상태다. 이 정지 관성에 빠지면 상대에 대한 감사함은 당연함으로 바뀌고, 다정한 대화나 칭찬은 쑥스럽거나 불필요한 것으로 치부된다.
문제는 이 정지 관성이 겉보기에는 평온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관계의 생명력을 서서히 갉아먹는다는 점이다. 외부의 새로운 자극이나 계기가 주어져도 ‘우리가 원래 그렇지 뭐’라며 변화를 거부한다. 정지 관성에 갇힌 관계는 결국 자발적인 에너지를 잃고 고여있는 물처럼 아득한 냉담함 속으로 침전한다.
물리 세계에서 물체의 관성을 바꾸려면 반드시 강력한 외력이 필요하듯 인간관계에서도 나쁜 관성을 멈추거나 정지된 관계를 다시 뛰게 하려면 특별한 ‘마음의 힘’이 개입해야 한다.
첫째, 악순환의 브레이크를 잡는 용기가 필요하다. 부정의 관성이 가속도를 내며 관계를 파국으로 끌고 갈 때 누군가는 그 흐름을 끊어내는 자동차 브레이크 역할을 해야 한다. ‘내가 먼저 사과하면 지는 것’이라는 자존심을 내려놓고, 감정의 폭주를 멈추는 한 마디를 건네는 것이다. 이것은 관계의 부정적 관성에 정면으로 저항하는 고차원적인 외력이다.
둘째, 정지된 관계에 가하는 작고 지속적인 자극이다. 정지 관성에 매몰된 관계를 깨우기 위해서는 대단한 이벤트보다 일상의 작은 변화가 효과적이다. 진심 어린 감사 표시 한마디, 의외의 장소에서 건네는 따뜻한 음료 한 잔처럼 작지만 분명한 긍정의 힘을 꾸준히 가해 주어야 한다. 이 작은 힘들이 모여 비로소 멈춰 있던 관계의 바퀴가 다시 다정한 방향으로 구르기 시작한다.
셋째, 자기 점검이라는 거울이다. 지금 내가 맺고 있는 수많은 관계가 과연 어느 방향의 관성을 타고 달리고 있는지 주기적으로 돌아보아야 한다. 관성에 완전히 몸을 맡긴 채 방치하고 있는 관계는 없는지, 억울함과 미움의 가속도에 휘말려 제어력을 잃고 있는 관계는 없는지 살피는 지혜가 필요하다.
우리는 종종 관계가 나빠지거나 멀어지는 이유를 단순히 시간이 흘렀기 때문이라거나 인연이 다했기 때문이라는 운명론으로 돌리곤 한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우리가 방치했거나 무심코 방치한 관성의 법칙이 강렬하게 작동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관성은 무서운 힘이지만, 역으로 활용하면 가장 강력한 삶의 자산이 된다. 의식적인 노력으로 긍정의 관성을 한번 제대로 형성해 두면 그 관계는 웬만한 시련과 풍파 속에서도 쉽게 깨지지 않고 오랫동안 서로를 보듬는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준다.
결국, 핵심은 관성에 끌려가는 삶이 아니라 관성을 주도하는 삶을 사는 것이다. 지금 소중하게 생각하는 그 사람과의 관계는 어느 방향으로, 어떤 속도로 굴러가고 있는가? 혹시 부정의 경사면을 향해 가속도를 내고 있다면 지금이 바로 온 힘을 다해 브레이크를 눌러야 할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