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매일 누군가를 만나며 살아간다. 아침에 눈을 떠 출근한 온라인 게임에서, 주말마다 나가는 동호회나 취미 모임에서 혹은 오랫동안 알고 지낸 친구들과의 식사 자리에서도 마찬가지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곳이라면 어디든 서로 다른 삶의 방식이 교차한다.
하지만 그 만남의 순간마다 우리는 문득 낯선 벽을 마주하곤 한다. 어떤 사람은 일을 처리할 때 빠른 속도를 최우선으로 생각하지만, 어떤 사람은 시간이 걸리더라도 완벽하게 확인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긴다. 누군가는 주말에 집에서 조용히 휴식을 취해야 에너지가 충전된다고 말하지만, 또 다른 누군가는 야외로 나가서 많은 사람과 어울려야 비로소 살 것 같다고 말한다. 점심 메뉴를 정하는 아주 작은 순간조차 얼큰한 국물을 원하는 사람과 깔끔한 샐러드를 원하는 사람으로 갈린다.
이처럼 살아온 환경도, 성격도, 경험도 다른 사람들이 만나 생각을 나누고 시간을 함께할 때 차이가 발생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런데 이 '다름'을 접했을 때 사람들이 보이는 반응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어떤 사람들은 상대와 나의 차이를 발견하는 순간 마음에 커다란 돌덩이를 얹은 듯한 스트레스를 느낀다. ‘왜 저 사람은 저렇게 생각할까?’, ‘어떻게 저런 선택을 할 수 있지?’라며 차이를 일종의 잘못이나 해결해야 할 문제 혹은 나에 대한 거절로 받아들인다.
반면, 어떤 사람들은 다른 사람과의 차이를 당연하고 편안하게 받아들인다. ‘아, 저 사람은 나와 다르게 생각하는구나!’, ‘저런 취향을 가질 수도 있겠네’라며 마치 길가에 핀 다른 색깔의 꽃을 바라보듯 담담하게 넘긴다.
흥미로운 점은 상대와의 다름을 심각하고 무겁게 받아들일수록 그 관계는 쉽게 갈등으로 치달린다는 사실이다. 조그만 의견 차이가 오해를 낳고, 그 오해는 감정의 골을 깊게 만들며, 결국 서로에게 상처를 남긴 채 관계를 끊어버리거나 문제를 더 꼬이게 만든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다른 사람과의 다름을 스트레스가 아닌 자연스러운 삶의 일부분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
우리가 상대와의 차이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 가장 큰 이유는 무의식 중에 ‘내 방식’을 기준으로 한 상태에서 다른 사람을 바라보기 때문이다. 내 생각, 내 가치관, 내가 선호하는 음식과 장소가 가장 익숙하고 정답처럼 느껴지기 때문에 내 기준에서 벗어난 상대의 말이나 행동을 ‘틀린 것’ 혹은 ‘이상한 것’으로 자기도 모르게 규정해 버린다.
하지만 조금만 시야를 넓혀보면 세상에 나와 완벽히 똑같은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 한 부모 밑에서 태어나 같은 집에서 자란 형제나 자매도 성격과 식성이 천차만별이다. 하물며 수십 년간 서로 다른 환경에서 살아온 다른 사람과 내가 어떻게 모든 면에서 같을 수 있겠는가?
상대와 나의 차이를 마주했을 때 스트레스를 받는 것은 비가 오거나 바람이 부는 자연 현상을 두고 “왜 오늘 비가 오지? 비가 오면 안 되는데!”라며 화를 내는 것과 같다. 비는 그저 기상 조건에 따라 내리는 자연스러운 현상일 뿐이다. 마찬가지로 상대가 나와 다른 생각을 하는 것 역시 그 사람이 살아온 삶의 궤적이 만들어낸 지극히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결과일 뿐이다.
따라서 관계의 편안함은 ‘사람은 원래 서로 다르다’라는 아주 단순한 사실을 진심으로 인정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차이를 마주했을 때 ‘왜 다르지?’라고 물으며 원인을 따지거나 고치려 들기보다 ‘당연히 다를 수 있지’라며 한 걸음 물러서서 바라보는 마음의 여유가 필요하다.
상대와의 다름을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몇 가지 공통적인 오해가 자리 잡고 있다. 첫째, 차이를 위험이나 거절로 인식하는 오해이다. 예를 들어, 내가 좋아하는 맛집에 동료를 데려갔는데 동료가 “제 입맛에는 조금 짜네요”라고 말했다고 해보자. 다름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사람은 ‘아, 이 친구는 싱겁게 먹는 편이구나’ 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긴다. 하지만 다름에 민감한 사람은 ‘내가 추천한 곳이 마음에 안 든다는 건 나를 무시하는 건가?’처럼 상대의 취향을 자신에 대한 평가나 공격으로 확대해 해석한다. 이렇게 의미를 과도하게 부여하면 아주 작은 차이조차 심각한 감정싸움으로 번지게 된다.
둘째, ‘하나의 정답’에 대한 집착이다. 특히 온라인 게임 생활이나 조별 과제 같은 슬롯 활동에서 이러한 모습이 자주 나타난다. 하나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아이디어를 모을 때 내 방식만이 옳다고 믿으면 상대의 아이디어는 나쁜 것이나 틀린 것이 된다.
하지만 세상의 수많은 일은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선택과 취향의 문제인 경우가 훨씬 많다. 짜장면과 짬뽕 중 무엇이 더 나은 음식인지 다툴 수 없듯이 일을 추진할 때 신중함을 기하는 것과 속도를 내는 것 역시 상황에 따라 각각의 장단점이 있을 뿐이다. 정답을 하나로 정해놓고 상대를 거기에 맞추려 할수록 대화는 협상이 아니라 설득과 비난의 전쟁터로 변한다.
셋째, 상대를 내 뜻대로 바꿀 수 있다는 착각이다. 누군가의 가치관이나 오랜 습관, 식성은 몇 마디의 조언이나 비판으로 쉽게 바뀌지 않는다. 그런데도 상대와의 차이를 심각하게 여기는 사람들은 상대를 자기 마음에 들도록 바꿔놓으려고 끊임없이 노력한다. 하지만 다른 사람을 통제하려는 시도는 반드시 반발을 부른다. 바꾸려는 나와 저항하는 상대 사이에 팽팽한 긴장감이 형성되고, 결국 서로 피곤해진 채 관계가 틀어지고 마는 것이다.
상대와의 다름을 인정하고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관계를 끌어가기 위해서는 어떠한 마음가짐이 필요할까?
첫째, 평가를 멈추고 상대에 대한 호기심을 갖는다. 누군가 나와 다른 행동이나 말을 할 때 판단의 잣대를 대는 평가의 스위치를 내리고 호기심을 가져본다. ‘어? 나와 다르게 생각하네? 저 사람은 어떤 경험을 했기에 저렇게 생각하게 되었을까?’ 하고 물어보는 것이다. 평가하는 마음은 상대를 거부하게 만들지만, 호기심 어린 마음은 상대를 이해하는 문을 열어준다.
둘째, 서로의 경계선을 존중한다. 내 영역이 소중하듯 상대의 영역도 그 자체로 존중받아야 한다. 내 기준을 상대의 영역으로 강제로 침범해 억지로 바꾸려 하지 않고, 상대가 내 영역을 침범하려 할 때도 “나는 이런 사람이야”라고 담담하게 내 기준을 알려주는 태도가 필요하다. 서로의 영역을 인정할 때 비로소 안전하고 편안한 거리가 유지되기 때문이다.
셋째, 그리고(And)의 대화법을 연습한다. 보통 나와 다른 의견을 들었을 때 “하지만”, “그게 아니라”라는 말로 부정하기 쉽다. 대신 “그렇군요, 그리고 제 생각은 이렇습니다”라는 방식을 써보는 것이다. 상대의 생각이 존재함을 먼저 인정해 주고, 거기에 내 생각도 함께 올려놓는 태도다. 이렇게 대화하면 두 사람의 생각 모두 같은 테이블 위에 놓이며 대립이 아닌 협력으로 방향이 바뀐다.
다른 사람과의 다름을 스트레스가 아닌 당연함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하면 삶과 인간관계에는 놀라운 변화가 찾아온다. 첫째, 내 마음의 에너지 낭비가 획기적으로 줄어든다. 남을 내 뜻대로 바꾸려 하고, 다른 사람의 한마디에 의미를 부여하며 분노하는 것은 엄청난 에너지를 소모하는 일이다. 차이를 당연하게 여기면서 “그럴 수도 있지”라는 한마디로 상황을 가볍게 넘길 수 있게 된다. 쓸데없는 감정 소비가 사라지니 마음의 평정과 여유가 찾아오고, 그 에너지를 정말 중요한 일에 집중할 수 있게 된다.
둘째, 문제 해결 능력이 비약적으로 높아진다. 온라인 게임이나 슬롯 활동에서 발생하는 수많은 문제는 한 사람의 시각만으로 해결하기 어렵다. 모두가 나와 똑같이 생각한다면 치명적인 함정을 놓치기 쉽다. 나와 다른 시각을 가진 사람이 곁에 있을 때 비로소 다각도의 해결바카라이 나온다. 차이는 걸림돌이 아니라 더 나은 결과를 위한 가장 강력한 디딤돌이 된다.
셋째, 진정한 의미의 풍요로운 관계가 형성된다. 나에게 없는 점을 가진 사람, 나와 다른 세상을 보여주는 사람과 함께할 때 나의 세계관도 넓어진다. 상대를 있는 그대로 인정해 주는 사람 곁에는 ‘이 사람 앞에서는 내 모습 그대로 편안하게 있어도 되는구나’라는 안전감을 주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많은 사람이 모여든다. 사람 사람을 내 기준에 맞춰 바꾸려 하지 않고 존중해 주는 태도가 결국 나를 향한 깊은 신뢰로 돌아오게 된다.
오케스트라가 아름다운 소리를 낼 수 있는 이유는 모든 악기가 똑같은 소리를 내기 때문이 아니다. 날카롭고 높은 소리를 내는 바이올린이 있고, 묵직하고 깊은 소리를 내는 첼로가 있으며, 맑은 울림을 주는 플루트가 존재한다. 만약 바이올린이 첼로를 향해 “왜 너는 나처럼 높은 소리를 내지 못하냐”라고 비난한다면 아름다운 교향곡은 결코 탄생할 수 없다. 서로 다른 음색을 가진 악기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소리를 낼 때 비로소 커다란 울림과 감동이 완성된다.
우리가 살아가는 슬롯 역시 커다란 오케스트라와 같다. 나와 다른 가치관과 취향을 가진 사람은 나를 괴롭히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이라는 오케스트라 안에서 자신만의 고유한 소리를 내고 있을 뿐이다.
상대의 소리를 억지로 바꾸려 하지 않고 ‘저 사람은 저런 음색을 가졌구나’ 하고 귀 기울여 들어주면서 내 소리 역시 담담하게 내어보는 것. 이러한 포용과 존중의 자세야말로 다름으로 인한 스트레스에서 벗어나 서로에게 가장 든든한 조력자가 되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