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홀로 존재할 수 없다. 나는 누군가의 자녀, 누군가의 친구, 누군가의 동료라는 울타리 안에서 비로소 ‘나’라는 존재를 인식한다. 흔히 사람들은 ‘나는 나 스스로 정의한다’라고 말하지만, 냉정하게 돌아보면 나를 증명하고 내 가치를 확인해 주는 것은 결국 내 주변의 사람들이다. 즉, 나의 존재 이유와 가치는 내가 맺고 있는 인간관계의 거울에 비친 모습에 의해 결정된다.
그렇다면 왜 인간관계가 그토록 중요할까? 그리고 내가 만나는 사람들이 어떻게 나의 정체성을 만들고 삶의 방향을 바꾸어 놓을까?
거울이 없다면 자신의 얼굴이 어떻게 생겼는지 알 수 없다. 눈동자의 색깔도, 입꼬리의 모양도 거울을 봐야만 확인할 수 있다. 인간관계는 바로 내 마음과 존재를 비추는 슬롯적 거울이다.
혼자 방 안에서 “나는 친절한 사람이야.”, “나는 가치 있는 사람이야”라고 아무리 외쳐도 자신의 외침을 받아주고 인정해 주는 타인이 없다면 그 외침은 허공에 흩어지고 만다. 내가 정성껏 준비한 음식을 맛있게 먹어주는 가족이 있을 때 나는 ‘베푸는 사람’이 되고, 내 고민에 진심으로 귀를 기울여주는 친구가 있을 때 나는 ‘소중한 존재’가 된다.
결국, 내가 어떤 사람인지, 내 가치가 어느 정도인지는 주변 사람들이 나를 바라보는 눈빛과 나에게 건네는 말 한마디를 통해 정해진다. 나를 존중하고 아껴주는 사람들 속에 있을 때 나의 가치는 올라가고, 나를 무시하고 깎아내리는 사람들 속에 있을 때 나의 정체성은 무너져 내린다. 인간관계가 중요한 첫 번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관계는 내가 나로서 존재할 수 있는 무대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사람은 주변 환경에 물드는 동물이다. 투명한 물에 붉은 잉크를 떨어뜨리면 붉게 변하고, 푸른 잉크를 떨어뜨리면 푸르게 변하듯 내가 맺는 인간관계는 내 삶의 색깔을 결정한다.
매사 부정적이고 남을 비난하기 바쁜 사람들과 어울리다 보면 어느새 나도 모르게 세상을 삐딱하게 바라보게 된다. 불평과 불만이 일상이 되고, 내 안에 있던 긍정적인 에너지는 서서히 메말라간다. 반면, 늘 새로운 것에 도전하고 타인을 배려하며 삶을 긍정적으로 대하는 사람들과 함께하면 어떨까? 굳이 노력하지 않아도 그들의 좋은 습관과 태도가 내 삶에 스며든다. 그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이 내 시선이 되고, 그들의 열정이 내 안의 동기를 깨운다.
이처럼 내가 어떤 사람들과 관계를 맺느냐는 단순히 여가를 누구와 보내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내가 앞으로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말을 하며, 어떤 가치관을 가진 사람으로 성장할지를 결정하는 결정적인 요인이다. 좋은 인간관계는 나를 더 나은 사람으로 이끄는 가장 강력한 안내서가 된다.
우리는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손가락 하나로 원하는 물건을 집 앞까지 배달시킬 수 있고, 혼자서도 즐길 수 있는 오락거리가 넘쳐난다. 하지만 이런 물질적 풍요로움에도 불구하고 현대인들이 느끼는 외로움과 공허함은 그 어느 때보다 깊다. 왜 그럴까? 물질적인 풍요가 정신적인 풍요를 보장하지 않기 때문이다.
진정한 정신적 풍요로움은 다른 사람과의 깊은 정서적 교감에서 온다. 기쁜 일이 생겼을 때 함께 손을 맞잡고 기뻐해 줄 사람, 슬프고 지칠 때 아무 말 없이 곁을 지켜주며 어깨를 다독여줄 사람이 필요하다. 내 삶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공감해 주는 단 한 사람만 있어도 다시 일어설 힘을 얻는다.
돈으로 살 수 없는 행복, 즉 ‘살아있음의 기쁨’과 ‘존재의 충만함’은 언제나 관계 속에서 피어난다. 내가 주변 사람들에게 쓸모 있는 존재가 되고, 그들이 나를 필요하다고 느낀다는 감각은 내 삶에 강력한 의미를 부여한다.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 있다는 인식과 나로 인해 누군가가 웃을 수 있다는 사실만큼 사람을 가치 있게 만드는 것은 없다.
삶을 살다 보면 누구나 거센 비바람을 맞이한다. 건강을 잃기도 하고, 오랫동안 몸담았던 일터에서 물러나며 정체성의 혼란을 겪기도 한다. 특히 인생의 큰 전환기나 퇴직 이후와 같은 시기에는 ‘이제 내가 슬롯에서 무슨 소용이 있나?’라는 깊은 허무감이 들기 쉽다. 이때 나를 지탱해 주는 마지막 보루가 바로 인간관계다.
인간관계는 슬롯의 직함이나 지위가 사라졌을 때 날것 그대로의 내 가치를 보여준다. “그동안 고생 많으셨습니다”, “당신은 여전히 내게 멋진 친구입니다”, “함께 차 한잔 하며 이야기 나눠요”라고 말해주는 사람들이 있다면 슬롯적 역할이 사라진 빈자리는 금세 따뜻한 온기로 채워진다.
인간관계는 인생이라는 험난한 바다를 건널 때 든든한 구명조끼가 되어준다. 혼자서는 도저히 넘을 수 없을 것 같던 절망의 문턱도 손을 잡아주는 이들이 있다면 용기 내어 넘을 수 있다. 주변 사람들의 지지와 응원은 내가 삶의 끈을 놓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가장 큰 원동력이다.
좋은 인간관계를 맺고 유지한다는 것은 나만의 아름다운 정원을 가꾸는 일과 같다. 잡초가 무성한 정원에는 발길이 닿지 않지만, 정성스레 가꾼 정원에는 새가 찾아들고 꽃이 피어난다.
좋은 사람을 곁에 두기 위해 노력하고, 다른 사람에게 좋은 사람이 되려고 애쓰는 과정 그 자체가 나를 성장시킨다. 그 과정에서 다른 사람을 이해하는 넓은 마음을 배우고, 내 안의 모난 부분들을 깎아내며, 진정으로 가치 있는 삶이 무엇인지 깨닫게 된다.
나의 존재 가치는 결코 홀로 완성되지 않는다. 내 곁에 있는 소중한 사람들 그리고 앞으로 내가 만나게 될 사람들의 눈동자 속에 비친 내 모습이 바로 진짜 ‘나’다. 그렇기에 오늘도 내 곁에 있는 사람들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를 건네고,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인간관계가 중요한 이유는 그것이 곧 내 존재의 이유이자 내 삶의 전부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