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관계에서 겸손의 영향은?

by최환규

우리는 매일 수많은 사람과 관계를 맺으며 살아간다. 가정과 온라인 게임, 친구 관계나 가벼운 모임에 이르기까지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곳이라면 어디서나 눈에 보이지 않는 미묘한 힘겨루기가 벌어지곤 한다. 많은 사람이 은연중에 자신의 존재감을 더 크게 드러내고 싶어 하고, 대화나 관계에서 주도권을 잡으려 애쓴다. 상대보다 조금이라도 더 잘나 보이고 싶고, 내 의견이 옳다는 것을 증명해 상대를 제압하려는 욕망은 누구에게나 숨어 있다. 이렇게 얻은 상대에 대한 우위는 우리에게 무엇을 남길까?


상대와의 경쟁에서 이겨 순간적인 승리감을 느낄지는 몰라도 그 과정에서 상대의 마음에 남은 상처와 앙금은 결국 두 사람 사이의 거리를 멀어지게 만든다. 나를 높이기 위해 상대를 내리누르는 순간 관계의 균열은 시작된다. 반대로 인간관계에서 참된 깊이와 울림을 만드는 것은 나를 증명하려는 과시가 아니라 상대를 온전히 받아들이려는 ‘겸손의 태도’이다.


우위를 점하려는 욕망이 관계를 망치는 이유


사람은 누구나 인정받고 싶은 본능을 가지고 있다. 내가 얼마나 유능한지, 얼마나 근사한 삶을 살고 있는지, 내 생각과 판단이 얼마나 정확한지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고 싶어 한다. 그러나 이러한 욕정이 지나치면 대화는 소통이 아니라 경쟁으로 변한다. 상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내 자랑을 얹거나, 상대의 의견에서 약점을 찾아내어 반박하려 드는 모습이 대표적이다. 상대가 어떤 고민이나 성과를 이야기할 때 ”나 때는 말이야…”라며 자기 경험으로 화제를 돌려버리거나, 상대의 부족함을 은근히 지적하며 자신이 한 수 위임을 은연중에 암시하는 행동 역시 마찬가지다.


이런 행동의 뿌리에는 ‘상대를 이겨야 한다’라는 조급함과 ‘내 존재감을 증명해야 한다’라는 불안이 자리 잡고 있다. 하지만 내가 상대를 제압하여 승리하는 순간 상대는 패배자가 된다. 자신의 존재감을 부정당하고 마음에 상처를 입은 상대는 마음의 문을 닫아걸거나, 언젠가 그 빚을 갚기 위해 또 다른 공격성을 품게 된다. 상대보다 비교 우위에 서는 것은 일시적으로 자존심을 채워줄지는 몰라도 서로를 연결해 주던 따뜻한 신뢰의 끈을 잘라버리는 가장 빠른 길이다.


겸손은 나를 지우는 것이 아닌 상대를 비춰주는 것


많은 사람이 겸손을 자기 비하나 무조건적인 굴복으로 오해하곤 한다. 자신을 한없이 낮추어 남에게 밟히는 것이나, 내 주관 없이 남의 뜻에 끌려다니는 것을 겸손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참된 겸손은 결코 약함의 표시가 아니다.


겸손은 내 존재를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내 존재만큼이나 상대의 존재도 크고 소중하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다. 내 생각이 중요하듯 상대의 의견에도 그만한 이유와 가치가 있음을 인정하는 성숙함이다. 즉, 내가 세상의 중심이라는 착각에서 벗어나 상대의 삶과 생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겠다는 따뜻한 수용의 태도가 바로 겸손이다.


단단한 자존감을 가진 사람만이 겸손할 수 있다. 굳이 상대를 깎아내리거나 나를 과시하지 않아도 내 가치가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따라서 겸손한 사람은 상대와 겨루려 하지 않는다. 대신 상대가 편안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을 수 있도록 마음의 공간을 내어준다. 나를 과도하게 드러내기보다 상대를 온전히 비춰주는 거울이 되어주는 것이 바로 겸손의 진짜 모습이다.


겸손이 관계에서 만들어내는 긍정적인 결과


겸손한 태도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 잔잔하지만 깊은 변화를 일으킨다. 첫째, 겸손은 상대의 마음을 여는 열쇠가 된다. 사람은 자신을 가르치려 들거나 제압하려는 사람 앞에서는 방어벽을 세운다. 그러나 자신을 존중하고 내 이야기를 진심으로 들어주려는 사람 앞에서는 경계심을 허물게 된다. 겸손한 사람은 상대를 판단하거나 평가하지 않고 온전히 받아들이기 때문에 겸손한 사람과 함께하는 사람은 깊은 안정감과 존중받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이러한 경험은 단단한 신뢰로 이어진다.


둘째, 불필요한 갈등과 상처를 줄여준다. 인간관계에서 발생하는 대다수의 싸움은 ‘누가 옳은가?’를 다투는 과정에서 일어난다. 자신이 옳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상대를 틀린 사람으로 만드는 순간 갈등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진다. 그러나 겸손한 사람은 “내 생각이 틀릴 수도 있다” 혹은 “당신의 시선에서는 그렇게 보일 수 있겠다”라는 여지를 남긴다. 이러한 태도는 경직된 분위기를 부드럽게 만들고, 서로를 상처 주지 않으면서도 문제를 해결해 나갈 수 있는 대화의 길을 연다.


셋째, 나 스스로를 성장하게 만든다. 모든 것을 다 안다고 생각하고 남보다 우위에 서려는 사람은 새로운 것을 배울 수 없다. 다른 사람의 의견을 내 아래로 여기기 때문이다. 반면, 겸손한 사람은 누구나 나에게 무언가를 가르쳐줄 수 있는 선생님이라고 생각한다. 상대의 장점과 지혜를 받아들이는 개방적인 태도 덕분에 겸손은 사람을 얻을 뿐만 아니라 나 자신의 삶도 한층 더 넓고 깊어지게 만든다.


겸손은 거창한 구호나 특별한 결심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우리가 매일 나누는 말과 행동, 작고 소소한 습관 속에서 겸손은 비로소 실체화된다. 몇 가지 방법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말하기보다 듣기에 집중한다. 대화할 때 내 순서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상대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연습이 필요하다. 상대의 말이 끝나면 바로 내 이야기로 화제를 전환하기보다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구나”, “많이 힘들었겠네”라며 상대의 마음을 먼저 받아주는 것이 겸손한 듣기의 시작이다.


둘째, ‘내가 맞다’라는 고집을 내려놓아야 한다. 내 판단이 언제나 옳을 수는 없다. 내 생각과 다른 의견을 만났을 때 반박하려는 본능을 잠시 누르고 상대가 왜 그렇게 생각했는지 그 입장을 한 번쯤 헤아려보는 여유가 필요하다. 나의 불완전함을 인정할 때 비로소 다른 사람의 존재가 눈에 들어온다.


셋째, 다른 사람의 공헌을 인정하고 감사한다. 좋은 결과가 나왔을 때 그것을 오롯이 나의 공으로 돌리기보다 함께한 사람들의 수고를 먼저 챙기는 마음이 중요하다. 작은 일이라도 상대의 노력과 기여를 말로 표현하고 감사함을 전할 때 상대는 자신이 존중받고 있음을 온전히 느끼게 된다.


바다에 수많은 강물이 흘러드는 이유는 바다가 그 어떤 강보다 낮은 곳에 위치해 있기 때문이다. 낮은 곳으로 내려갈 때 모든 것을 품어 안을 수 있듯이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자신을 낮추는 사람 곁으로 자연스럽게 사람이 모여든다.


상대와의 경쟁에서 이겨 얻는 우월감은 찰나에 불과하며 그 끝에는 외로움이 남는다. 남을 누르고 얻은 자리는 언제 빼앗길지 몰라 불안하지만, 겸손으로 상대를 높여준 자리는 결코 흔들리지 않는다. 상대를 온전히 받아들이고 존중하는 태도는 상대를 위한 선물이기도 하지만, 결국 내 삶을 더욱 풍요롭고 따뜻하게 만드는 가장 지혜로운 삶의 방식이다.


남보다 위에 서기 위해 애쓰는 대신 상대의 마음 곁에 평등하게 서는 삶을 살고, 나를 증명하려는 욕심을 한 걸음 물려두고 상대를 온전히 받아들일 때 비로소 상처 주고받는 경쟁에서 벗어나 참된 인연의 온기를 누릴 수 있게 된다.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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