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의 그림에 엄마는 없다.
아들이 하원 후 유치원에서 가족들과의 시간을 그린 그림을 짠 하고 보여준다.
5~6장 정도를 쭉 보여주는데, 엄마인 내가 그림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나도 분명 같이 보냈던 시간인데 말이다.
남편이 내 눈치를 슬쩍 보면서 아들에게 묻는다.
"왜 엄마는 없고, 아빠하고 ㅇㅇ이만 그렸어?"
"어, 음, 엄마는 나무 옆 텐트에서 아파서 누워있어."
"그래? 그래도 텐트 안에 엄마도 같이 그려주지."
"아니야!! 엄마는 문 닫고 쉬고 있어서 텐트만 그린 거야!!"
아파서 대부분 텐트 속에서 돗자리 펴고 누워있던 것은 사실이지만, 입구는 활짝 열어놓고 늘 아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런데 써놓고 보니 참으로 비겁한 변명 같기도 하다.
남편과 나의 대단치 않은 공간이 있다.
서로를 등 돌려 앉아 남편은 모니터 3개로 일을 하고, 나는 2개의 모니터로 글을 끄적이는 작은방.
집에 돌아와 아들을 재우고 남편과 각자의 일을 하는 공간에서 남편을 화형식에 처했다. 신명 나는 쥐불놀이가 따로 없었다.
속은 조금도 후련하지 않았다.
나는 아직도 6년 전 교통사고 후 제대로 치료를 못 받고 오직 출산 후 육아휴직을 받기 위해 나를 혹사시켰던 날들에 갇혀있다. 좀처럼 떠나 지지가 않는다.
신체는 이미 오래전에 죽어 비정상적 생명을 유지하며 움직이고, 자아와 판단력 같은 정신적 기능이 박살 난 좀비 같은 형태로 살아가는 것 같다.
이런 것도 PTSD의 일종이 아닐까?
진심으로 그 자리를 떠나고 싶은데, 그 시간들은 불쑥 나를 찾아온다.
사람들은 잊으라고 한다. PTSD가 잊는다고 마음먹으면 잊어지는 건가?
그런 약이 있으면 억만금을 주고서라도 사고 싶다.
이번엔 남편도 각오가 대단한 것 같다.
나의 송곳 같은 멸시와 조롱에도 본인의 바카라상 앞에 써 놓은 다짐처럼 최선을 다 하고 있다.
"너 똑바로 해. 난 한다면 반드시 해."
"이번이 마지막 기회야."
"너 이번에도 나 못 살리면 그땐 네가 무엇을 잃게 되는지 똑똑히 확인시켜 줄 거야."
남편에게 경고성 으름장을 잔뜩 놓고서야 화형식이 끝났다.
알아는 들었니? 대답은 왕 크게 어찌나 잘하는지!
나의 각오도 대단하다.
남편이 최선을 다 하고 있는 시간에 나도 스스로를 갈고닦고 있다.
아들의 그림 속에서 엄마의 부재가 어떻게 남편만의 탓일까?
내 시간을 소중하게 사용하지 않았다.
그리고 매우 오만했다.
기준 없이 무분별하게 사용한 시간들은 반드시 나를 찾아온다.
무자비한 '자경단'의 모습으로 찾아온다.
스스로 경계하고, 스스로 지킬 수 있을 때까지 자경단은 나를 향해 끝없이 다양한 형태로 표창을 날리고 칼빵을 꽂는다.
마무리는 어떻게 해야 하나 온라인카지노 화면을 멍하니 쳐다보고 있는데, 아들이 불쑥 들어온다.
"엄마 뭐 해? 이거 내 그림이잖아!"
"네가 그린 그림 때문에 행복하다는 이야기를 쓰고 있었어"
"진짜?! 엄마 고마워, 내 하트 받아줘!"
있잖아, 엄마는 반드시 엄마가 원하는 곳에 갈 거야.
엄마는 한다면 반드시 했어.
그곳에서 엄마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하고 있을 거야.
날짜 개념이 없어졌습니다.
백수의 삶이 다 그렇지 않겠습니까 ㅎㅎㅎ
발행일은 어제였지만, 아쉬운 마음으로 늦은 화요일에라도 후다닥 기록해 봅니다.
편안한 밤 보내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