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각보 왕이불
나는 그 자리에 우뚝 멈춰 섰다. 내 48.5킬로그램의 육신을 지배하는 극도의 미적 강박증이 경보를 울리기 시작했다. 저 매듭의 끔찍한 모양새는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어떤 미치광이가 실을 저 따위 흉측한 각도로 묶어놓았단 말인가!
"거기, 잠깐 스톱."
나는 다짜고짜 아이의 앞을 가로막았다. 내 린넨 셔츠 자락이 바람에 펄럭이며 아이의 얼굴에 그늘을 드리웠다. 내가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기 위해 손을 집어넣자, 땅만 보고 걷던 아이가 화들짝 놀라 어깨를 움츠렸다.
내 손에 쥐어진 것은 파리 방돔 광장의 앤틱 숍에서 구입한, 순금으로 코팅된 손바닥만 한 자수용 가위였다. 햇빛을 받아 서늘하고도 찬란하게 번쩍이는 그 황금 가위를 든 채, 나는 아이의 손목을 향해 다가갔다. 나의 시각을 심각하게 오염시킨 저 끔찍한 털실의 숨통을 당장 끊어버려야만 했다.
"히익!"
내 그림자가 아이의 발등을 덮자마자, 아이는 마치 굶주린 맹수라도 만난 것처럼 펄쩍 뛰며 뒤로 물러났다. 아니, 내가 맹수라면 차라리 다행이게? 나는 지금 쏟아지는 자외선에 녹아내리기 일보 직전인 가련한 희생자인데 말이다. 하지만 내 손에 들린 번쩍이는 황금 가위가 아이의 눈에는 꽤나 위협적이었던 모양이다.
"아, 아저씨... 누구세요? 왜 저한테 가위를..."
아이의 목소리는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울음이 터질 것 같은 눈망울. 하지만 내 시선은 아이의 얼굴이 아니라, 여전히 그 흉측한 손목 매듭에 고정되어 있었다. 가까이서 보니 상태는 훨씬 더 심각했다. 시장통 천 원짜리 가게에서나 팔법한 싸구려 아크릴 털실. 심지어 색깔은 촌스러움의 극치인 '떡볶이 국물 레드'였다. 게다가 매듭은 또 얼마나 성의 없게 지어놓았는지, 실밥들이 여기저기 터져 나와 마치 털이 빠진 쥐꼬리 같은 형상을 하고 있었다.
나의 고귀한 시각적 평형이 무너지는 소리가 들렸다. 이건 단순한 매듭이 아니다. 이건 나의 미적 감각에 대한 선전포고이자, 전 세계 패션 장인들에 대한 모욕이었다.
"얘, 너는 이딴 걸 손목에 감고 다니면 잠이 오니? 이건 거의 시각적 테러리즘 수준이야. 내가 방금 너 때문에 소중한 망막 세포 몇백만 개를 잃었거든. 당장 이리 내놔. 이 흉물을 제거해야 내 정신 건강이 회복될 것 같으니까."
나는 가냘픈 손가락으로 가위 손잡이를 꽉 쥐고 아이의 손목을 향해 돌진했다. 바람에 휘날리는 가벼운 육신이라 움직임이 날렵하지는 않았지만, 바람의 도움을 받아 순식간에 아이의 코앞까지 도달했다.
"안 돼요! 안 돼! 이거 자르면 안 된단 말이에요!"
아이는 비명을 지르며 손목을 뒤로 감추었다. 그리고는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기 시작했다. 아, 정말이지 내 인생에 가장 귀찮은 생명체가 바로 우는 아이인데.
"왜 안 된다는 거야? 내가 이탈리아산 최고급 실크 리본으로 바꿔주겠다는 것도 아니고, 그냥 이 쓰레기를 치워주겠다는데. 너, 혹시 이게 유행이라고 생각하는 거니? 낭성면의 힙한 패션 아이템이야?"
"아니요! 우리 할머니... 할머니 때문에 묶어놓은 거란 말이에요!"
아이는 소매를 걷어올리며 엉엉 울었다. 아이의 가느다란 손목에는 이미 그 붉은 실 때문에 빨간 자국이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얼마나 세게 묶었는지 살이 움푹 패어 있을 정도였다.
"우리 할머니가 치매라서... 밤만 되면 자꾸 밖으로 나가버리신단 말이에요. 길 잃어버릴까 봐, 자다가 나 모르게 나갈까 봐, 그래서 이렇게 손목을 같이 묶고 자는 거예요. 이거 자르면 할머니 없어져요. 할머니 어디 가버리면 안 된단 말이에요!"
아이의 울음 섞인 사연이 골목 안에 울려 퍼졌다. 웬만한 휴먼 다큐멘터리 작가라면 여기서 같이 눈물을 닦으며 아이를 안아주었을 대목이다. 하지만 나는 누구인가. 목포대학에서 칸트와 헤겔의 미학을 전공하신 어머니 밑에서 자라며 '슬픔보다는 추함이 더 죄악'이라고 배운 연지형이다.
나는 아이의 슬픈 사연을 듣고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오히려 더 큰 짜증이 밀려왔다.
"야, 너 지금 나랑 농담하니? 할머니가 나가는 걸 막으려면 문에 잠금장치를 달든가, 아니면 스마트 태그 같은 걸 달아야지. 겨우 이 0.5밀리미터짜리 싸구려 실 하나로 사람을 묶는다고? 이게 무슨 뉴턴의 역학을 무시하는 발상이야? 그리고 백번 양보해서 묶는다고 쳐도, 왜 하필 이 색깔이냐고! 이 색깔은 보는 사람의 심박수를 불안정하게 만든다고. 내 말 안 들려?"
아이의 울음소리가 더 커졌다.
"아저씨 나빠요! 아무것도 모르면서! 우리 집은 돈 없어서 그런 거 못 산단 말이에요! 이 실이 우리 할머니랑 나를 지켜주는 유일한 건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