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각보 왕이불
태양은 공평하다고 누가 말했던가. 적어도 충북 청주시 낭성면의 태양은 지독하게 편파적이고 폭력적이었다. 봄볕이라는 낭만적인 단어는 그저 시인들이 바카라상머리에서 지어낸 새빨간 거짓말이다. 내 머리 위로 쏟아지는 자외선 A와 B는 밭에 심어진 상추나 배추들에게는 광합성의 축복일지 몰라도, 파리 몽테뉴 거리의 에스테틱에서 관리받던 내 고귀한 피부 세포들에게는 무자비한 공습 경보나 다름없었다.
"야! 이 종잇장아! 넌 아까부터 거기 쭈그려 앉아서 대체 뭘 쳐바르고 있는 거여!"
내 등 뒤로 꽹과리보다 더 시끄러운 곽두팔 이장의 호통이 날아와 꽂혔다. 나는 한 손으로 이탈리아제 실크 스카프를 목에 꽉 두른 채, 다른 한 손으로는 거울을 보며 스위스산 자외선 차단제를 뺨에 톡톡 두드리고 있었다. 백탁 현상 없이 수분감만 채워주는, 15밀리리터에 30만 원을 호가하는 나의 생명수였다.
나는 이장님의 고함을 가볍게 BGM으로 흘려들으며, 약지가 아닌 가장 힘이 약한 새끼손가락으로 눈가 주변을 조심스럽게 터치했다. 피부가 얇은 눈가에 압력을 가하는 것은 미학적 자살 행위니까.
"이장님, 쳐바르다니요. 텍스처를 레이어링하고 있는 겁니다. 그리고 제가 쭈그려 앉은 게 아니라, 중력이 저를 강하게 당기고 있어서 잠시 지면과 교감하는 중이라고 해두죠."
"지랄 염병하고 자빠졌네! 거름 포대 하나 못 나르는 놈이 입만 살아서! 네 놈 몸무게가 50키로 나간다는 소문을 듣긴 했다만, 이 정도로 쓸모없는 뼈다귀일 줄은 몰랐다!"
이장의 말에 나는 거울을 탁 덮으며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정확히 짚고 넘어가자면, 내 몸무게는 50킬로그램이 아니다. 50킬로그램의 벽은 이미 지난겨울 파리에서 트러플 리조토를 먹다 체했을 때 무너졌다. 현재 나의 총질량은 48.5킬로그램. 177센티미터의 골격에 48.5킬로그램이라는 수치는, 인체가 구현할 수 있는 가장 아슬아슬하고 아방가르드한 비율이다. 바람이 조금만 거세게 불어도 체공이 가능하며, 뛰어가는 것보다 날아가는 것이 물리적으로 더 타당한 상태. 나는 이 가벼움을 극도의 진화라 믿었다.
마침 낭성면 산기슭을 타고 건방진 봄바람이 훅 불어왔다. 내 얄팍한 몸뚱이가 주정뱅이처럼 크게 휘청였다. 나는 반사적으로 옆에 꽂혀 있던 고추 지지대를 두 손으로 꽉 부여잡았다. 내 펄럭이는 오버사이즈 린넨 셔츠가 마치 항해를 시작한 범선의 돛처럼 부풀어 올랐다.
"어휴, 저, 저, 진짜 날아갈 뻔했네. 넌 밥도 안 쳐먹고 사냐?"
방금 전까지 호통을 치던 두팔 이장이, 지지대에 매달려 바람에 펄럭이는 나를 보며 헛기침을 했다. 분노보다 어이가 없어서 나오는 순수한 탄식이었다. 나는 지지대를 잡은 채로 턱을 치켜들고 대꾸했다.
"이장님, 제 몸무게는 50킬로도 안 되는 게 아니라, 우아하게 비워낸 겁니다. 채우는 건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완벽하게 비워내는 건 예술의 영역이거든요. 그리고 지금 밥이 문제입니까? 광노화가 문제지. 밭일은 노동이지만 피부 손상은 비극입니다. 자외선이 진피층의 콜라겐을 파괴하는 속도가 이장님이 저기서 괭이질하는 속도보다 세 배는 빠를걸요?"
"이 썩을 놈이 끝까지 말대꾸는! 도지사 아들이면 다여? 우리 밭에 왔으면 흙을 파야지!"
"도지사 아들이니까 흙을 안 파는 거죠. 흙은 굴착기가 파는 겁니다. 그리고 솔직히 이 밭 흙 색깔, 너무 우중충한 갈색 아닙니까? 저는 시각적으로 이렇게 채도 낮은 공간에서는 의욕이 안 생기더라고요. 밭을 좀 민트색이나 파스텔 핑크로 칠해주시면 제가 호미 한 번 정도는 쥐어보겠습니다."
두팔 이장의 얼굴이 방금 전 자외선 차단제를 바른 내 뺨보다 더 하얗게 질렸다. 그는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낫을 꽉 쥐었다. 그가 진심으로 177센티미터짜리 인간 대파를 수확해 버리기 전에 슬쩍 자리를 피하는 것이 상바카라이었다. 나는 고추 지지대에서 손을 떼고 옷에 묻은 먼지를 털어냈다.
"자외선 지수가 너무 높아서 저의 오늘 야외 활동 할당량은 끝났습니다. 마을 회관 가서 에비앙으로 세수 좀 하고 올게요. 이장님도 그만하시고 들어가시죠. 며칠 전에 제가 발라드린 명품 립밤, 벌써 다 드셨나 본데 입술이 또 사하라 사막이네요."
"이, 이, 입술 얘기는 왜 또 꺼내!"
이장님이 기겁을 하며 자기 입술을 소매로 가렸다. 그 틈을 타 나는 깃털처럼 가벼운 발걸음으로, 아니 사실상 바람에 등 떠밀려 밭둑을 내려왔다. 50킬로그램도 안 되는 체중의 유일한 장점은 튀어야 할 때 발소리조차 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산그늘 마을의 비포장도로를 걷는 내내, 내 머릿속은 오직 내 피부 점막을 공격하는 시골의 먼지와 미세한 곤충들에 대한 분노로 가득했다. 부모님은 내게 시골의 정을 느끼고 오라고 이 유배지에 나를 던져두었지만, 내가 여기서 느낀 것은 오로지 파상풍에 대한 공포와 자본주의 인프라의 부재뿐이었다. 편의점 하나 가려면 차를 타고 20분을 나가야 한다니, 이곳은 인류 문명이 닿지 않은 갈라파고스가 분명했다.
그렇게 먼지 구덩이 같은 마을 길을 투덜거리며 걷고 있을 때였다.
모퉁이 배움터로 향하는 좁은 골목 어귀에서, 누군가 땅바닥만 뚫어져라 쳐다보며 걸어오는 것이 내 예민한 시야에 포착되었다. 몸집이 내 절반도 안 되어 보이는 작은 여자아이였다. 마을 정류장 뒤에 산다던, 낡은 운동화를 구겨 신은 아이.
하지만 내 시선을 사로잡은 것은 아이의 얼굴이나 표정이 아니었다. 그것은 아이의 빛바랜 카디건 소매 끝, 손목 부근에 칭칭 감겨 있는 정체불명의 시뻘건 털실 뭉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