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교통사고가 난 후 지독한 무기력이 찾아왔다. 평소 육체보다 정신이 먼저라고 생각해서 뭘 하든 정신만 똑바로 차리면 된다고 스스로를 다그치며 살았는데, 이번에는 그 주문이 통하지 않았다. 집중하려고 하면 뒷골이 당기고, 왼쪽 어깨는 수시로 찾아오는 통증에 시달렸다. 몸 여기저기서 열이 났다가 내리길 반복했다. 팔과 어깨를 다른 걸로 바꾸고 싶었다. 그러나 육체의 통증보다 더한 건 복잡한 마음이었다.
차의 앞부분을 다 갈아낼 정도의 충격이었으니 몸이 비명을 지르는 건 당연했다. 가장 기본적인 생활만 유지하며 동선을 줄이고, 생각도 멈추고 틈만 나면 누워 지냈다. 그렇지만 시도 때도 없이 찾아오는 분노와 화는 지치지도 않아서 귓가에 대고 끊임없이 속삭였다.
3월 설마, 했던 사람에게 배신을 당했다. 혼자만의 일이라면 어떻게든 일어설 수 있었을 것인데, 돈과 사람이 얽히니 문제가 복잡해졌다. 가장 가까운 사람들이 제일 먼저 멀어졌다. 사람 좋아하는 레트리버처럼 사람만 보이면 반갑게 다가갔던 나는 차가워진 눈초리에 어쩔 줄을 몰랐다. 아무리 바카라을 읽어도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서 사고가 반가웠다면 말이 될까. 이렇게라도 해서 항복깃발을 올리고 싶었을까.
누워 있는 내내 마음이 불안했다.
나 없이도 잘 돌아가는 세상은 금세 나를 잊을 것만 같았다.
매일 쓰던 글을 쓰지 않으니 갑자기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된 것 같았다.
한여름밤의 꿈처럼 짧고 강렬한 기억을 더듬으며 한숨만 쉬고 있던 그때,
큰 형님에게서 연락이 왔다.
형님은 열 살 어린 막내 동서가 소설을 쓴다고 했을 때 제일 먼저 축하해 줬다. 예술에 대한 막연한 동경이 있다면서 뭘 하든 시작하는 동서가 멋있다는 말과 함께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내가 한 것보다 과한 칭찬에 몸 둘 바를 몰라도 형님 앞에서는 제법 나도 괜찮은 사람이 됐다. 형님은 "당신의 안녕"을 재미있게 읽었고, 지인들에게도 선물을 했다고 하며, 조심스럽게 마을 도서관에서 북토크를 해 보는 건 어떠냐고 하셨다. 형님의 친한 지인에게 말을 해 놔뒀다는 것이다.
누워서 천장에 번진 얼룩을 보며 울고 있었던 나는 형님의 말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형님, 감사합니다. 고개를 조아리며 몇 번이나 감사인사를 드렸다. 이불을 개고 일어나 세수를 했다.
나를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
나를 기다리는 사람이 있다.
내가 뭘 하길 원하는 사람이 있다.
그것만으로 살아갈 이유는 충분했다.
마음을 준 만큼 돌아오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내 마음을 받아주지 못하는 그 사람의 잘못이다. 그건 내가 머리를 싸매고 끙끙 앓을 문제가 아니다. 그에게 할애할 시간이 없다. 지나간 일들을 돌아보며 후회하고, 억울해하고, 받지 못한 것에 아쉬워하는 것은 나에게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렇게 생각하고 "당신의 안녕"을 집었다. 세상에 나온 지 일 년이 채 안 되었는데 아주 오래전에 쓴 글처럼 멀게 느껴졌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일들이 있었는가. 그리고 앞으로 또 어떤 일들이 펼쳐질까?
알 수 없기에 가볼 만하다. 이번 주 토요일 <당신의 안녕>을 갖고 사람들 앞에서 '삶이 소설이 되는 순간'에 대해 이야기한다. 나는 할 말이 많고, 나를 사랑해 주는 사람들이 기꺼이 나의 이야기를 들으려고 온다. 그러므로 나는 누워 있을 시간이 없다. 사람이 나를 할퀴고 지나간 자리에 삶은 다시 돋아나고, 다른 사람들이 들어와 말을 건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