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물병자리인 나의 생일이 있는 달, 2월. 몸이 무거워진 1월을 지나, 2월이 다가오면,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한다. 아직은 밤이 길어 깜깜한 새벽 5시 반, 주섬주섬 입고, 산바카라을 나선다. 20대에는 2월이 마음이 우울했었는데, 나이가 들어가니 마음과 몸 둘 다 우울하다. 우리네 엄마들도 그랬을까? 차가운 공기는 내 빰을 스치고, 우울하던 생각을 얼어붙게 만든다. 7시가 다 되어가니 슬며시 해가 고개를 든다. 1시간 반 남짓 걷고 나면 우울한 몸도 개운해진다.
01 나들이
멀미가 있어서 서울을 갈 때면 지하철을 주로 이용했었는데, 오늘은 버스 맨 앞자리에 앉아서 나들이를 간다. 혼자 온전히 있을 공간이 없어서 혼자 온전히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곳을 떠올리고, 행동으로 옮겨본다. 물끄러미 창밖을 보는데, 친정 가족이 떠오른다. 엄마랑 올케… 생각해 보니, 올케가 20살 남짓 되었을 때 만나 가족이 되고, 그래서 올케라기보다 여동생 같다고나 할까? 특별히 가깝지도 멀지도 않으며 오랫동안 보사오니 서로가 많이 성장했구나 싶네. 나들이 가며 되돌아보는 시간들.
02 오리 부부
오리는 서로 사이가 좋다고 한다. 청계천을 지나가는데, 암수가 짝을 이뤄서 다니고 수컷이 꼭 암컷 뒤를 졸졸 쫓아다닌다. 짝짓기 철인가? 귀여워.
03 스며든다
편을 가라는 마음은 사람들 마음으로 쉽게 스며든다. 선을 위한 행동이라 말하는데, 그 말속에는 사람을 나누고 있다. 그것을 바라보자니, 씁쓸하고, 쉽게 휩쓸려 가는 내 마음을 보고도 씁쓸하다. 내가 해야 할 것은 어느 한편으로 치우치지 않고, 중심을 잡고 서 있는 것, 그것이 내가 해야 할 일인데, 조금 버겁다. 인정받으려고 시작한 일도 아니오. 어떤 위치를 얻기 위함도 아니오. 사소한 이유에서 시작했던 일이 조금씩 확장되어 여기까지 왔다. 자신의 것을 내놓지 않으려는 사람들. 봉사에 대한 대가를 원하는 사람들. 감정에 치우쳐 일을 그르치는 사람들. 그 틈바구니에 내 몸이 갈기갈기 찢겨 나간다. 비난받고 거절당하는 것은 그리 겁나지 않는다. 일생이 그래왔으니까. 단지 내가 바라는 것은 분리의 마음이 내 마음에 스며들지 않고, 선으로 포장하는 마음을 구분하고, 타협하지 않는 것이 필요하다.
04 상처
참 오래된 상처들이 소리 소문 없이 가슴을 후벼온다. 따스한 태양 아래에서. 은은한 달빛 아래에서. 걸으면 참 좋으련만. 바쁜 일정에 실내에서 반려 식물들만 살피는 일과만이 구멍 난 가슴을 메울 뿐이다. 테이블 위에 있는 반려 식물을 들여다보니 이파리에 내 맘처럼 구멍이 나있다. 수경 재배가 가능한 아이로 단단한 녀석인데, 사람들이 뿜어내는 부정적인 것을 네가 몸으로 받아냈구나. 내일은 따스한 햇살과 은은한 달빛을 받아 내 기운을 채워 너를 치유하는 에너지를 보내줄게. 상처는 아물고, 언젠가 새 살이 돋겠지. 그 치유는 스스로 일으키니 우리 힘을 내 보자.
05 바다
꿈을 꾼다. 나는 유독 바다 꿈을 자주 꾼다.
비가 내리는 바다 위에 몸을 띄운 채 떠 있다. 내 목에는 두 아이가 매달려 있고, 나는 있는 힘을 다해 아이들을 구조 보트 위로 올려 보낸다. 부두까지 가려면 아직 거리가 남아 있다. 아이들을 먼저 올려둔 뒤 구조 보트를 붙잡고 잠시 숨을 고른다. 그런데 점점 힘이 빠져간다. 그 순간 아래를 내려다본다. 깊은 심해 속에서 죽은 혼들이 내 다리를 붙잡고 아래로 끌어내린다. 하지만 꿈속의 나는 이미 여러 번 이런 일을 겪어본 사람처럼 행동한다. 아래를 바라보지 않는다. 대신 수면 위의 태양을 바라본다. 그리고 깊게 숨을 들이마신다. 심호흡과 함께 다시 수면 위로 솟아오른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다시 구조 보트에 몸을 의지한다. 바다는 우리의 무의식을 상징한다고 한다. 잠재의식, 어쩌면 오랫동안 쌓여온 감정과 기억의 더미일지도 모른다. 몸이 지쳐 있을 때면 나는 종종 바다 꿈을 꾼다. 그런데 이번 꿈은 조금 달랐다. 이번에는 아이들이 있었다. 그리고 나는 아이들을 그 어두운 바다에서 건져 올리고 있었다. 오래전 반복해서 꾸던 꿈에서는 내가 바다 한가운데서 허우적거리며 엄마를 기다리고 있었다. 누군가 나를 구해주기를 바랐다. 하지만 이혼 이후 꿈은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 어느 순간 꿈속에서 문득 깨달았다. “아, 나 수영할 줄 알지.” 그때부터 나는 누군가를 기다리지 않았다. 스스로 헤엄쳐 뭍으로 나왔다. 많은 시간을 지나고, 수많은 감정의 파도를 건너며 지금의 나는 제법 안정된 곳에 서 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배운 방법들을 사용해, 오래 전의 나처럼 무기력하고 길을 잃은 사람들을 조금씩 건져 올리기 시작했다.
눈을 뜨고 침대에 가만히 앉아 꿈을 떠올렸다. 그제야 알 것 같았다. 왜 내가 구조 보트에 올라타지 않았는지. 왜 다시 바다로 몸을 돌렸는지. 아직도 깊은 바닷속에서 도움을 기다리는 아이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나는 그 아이들을 건져 올리기 위해, 다시 바다로 들어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겨울은 끝나지 않았지만, 나는 안다. 봄은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얼어 있던 땅이 조금씩 녹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새싹이 자라나듯, 나 역시 그렇게 변화하고 있다. 비우고, 바라보고, 다시 걸어간다. 오늘도 나를 관찰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