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8. 19. ~ 21.
#1 첫째 날
약 180명의 JD 1L(로스쿨 1학년)과 13명의 LLM, 그리고 몇 명의 편입 학생들은 UGA Chapel이란 작은 교회 같은 건물에 모였다. 오리엔테이션이 주로 여기서 진행되었다. 건물은 정장을 입은 사람들로 가득 찼고, 그들이 떠들고 웃는 소리로 건물이 쾅쾅 울렸다. 오리엔테이션에서 친구들과의 관계를 강조한 탓인가. 처음 보는 사람들과도 바로 악수하고 잡담하고 이내 친구가 되는 분위기였다.
거기다 오리엔테이션 자체도 주입식 강연만이 아니었다. 특히 첫째 날에는 그룹토론 섹션이 있었다. 60페이지짜리 자료를 읽어오라는 숙제도 있었다. 변호사의 professionalism과 ethics가 충돌하는 경우 어떻게 하겠냐에 대한 사례와 질문을 두고 토론하는 것이었다. 한국에서의 느낌처럼 별 것 아니겠지, 형식적으로 하는 거겠지라는 안일한 생각으로 그룹토론에 들어왔다.
작은 교실에 들어갔더니 교수님과 현직 미국 변호사가 슬롯석에 앉아 있었다. 이윽고 교실에 학생들이 다 들어왔는데 15명 정도 중 나 혼자만 LLM 학생이었고, 나머진 미국 현지인 JD들이었다. 자기들끼리 모여 앉아서 특유의 오버스러움을 장착한 채 악수하고 주먹을 부딪히고 그러면서 자기소개에 열중이었다. 마치 교수님 앞에서 교우관계가 좋은 모습을 보여주는 듯한 느낌까지 들었다. 반면 나는 쭈구리처럼 구석 자리에서 노트북을 켜고, 아무도 눈을 안 마주치려고 화면만 뚫어져라 봤다.
토론 시작에 앞서 자기소개를 할 땐 그래도 자주 써먹던 레퍼토리가 있어 "Hey guys" 이러면서 "나는 LLM 학생이고 공무원이고, " 이렇게 어찌어찌 진행을 했다. 하지만 막상 토론이 시작되니깐 학생들의 말이 전혀 들리지 않았다. 한 번은 어떤 애가 한참을 말하다 뚝 끊었길래, 왜 멈춘 거지? 할 말이 없는 건가? 이렇게 생각했는데, 교수님이 "Good point!"라고 답을 하셨다. 말이 끝났던 거였다. 이 정도로 심각하게 청취가 안 되는 나를 보면서 내가 여기 왜 앉아 있는 건가 자괴감이 들었다. 참여를 안 하면 불시에 나에게 질문을 할까 봐 한 번은 손을 들고 이런저런 대답을 했다. 말이 점점 길어졌고 수습이 잘 안 되던 찰나에 교수님이 내 말을 끊고 말했다.
"(영어로) 그래서 honesty가 중요하다는 거죠?"
그렇게 한 번만 딱 대답한 후부터, 언제 나를 시킬지 몰라 2시간 내내 조마조마했었다. 그러다 더 이상의 질문 없이 그룹토론이 끝났을 땐 속으로 환호성을 질렀는데, 아차. 앞으로 1년 동안 이런 수업을 수없이 들을 건데, 이렇게 살아야 하는 건가, 내가 잘 버틸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들었다. 오리엔테이션이 끝난 후 아내가 날 데리러 왔는데, 내 얼굴을 보자마자 어디서 탄 내가 난다고 했다. 하루 종일 긴장하면서 속이 시커멓게 탄 것이 내 얼굴까지 티가 나는가 보다. 그래도 혼자만 끙끙 앓고 있었던 걸 척하고 바로 알아봐 주는 아내가 고마웠다.
#2 둘째 날
둘째 날은 전날보다 LLM 동기들과 더 가까워졌다. 그래도 JD 친구들에 비해서는 같은 외국인 처지라 그런지 유대감이 있었다. 여기서 처음 만난 친구들이랑 서로 인사하고 자기소개하고, 틈틈이 시답지 않은 여러 이야기들을 나눴다. Athens 날씨나 맛집 같은 것들. 다양한 국적의 친구들이었는데 공통점은 모두가 영어를 매우 잘했다. 모국어가 영어인 친구들이 많았고, 유럽에서 온 친구들은 이미 영어를 현지인 수준으로 쓰고 있었다. 배우자가 미국인인 친구들도 있었는데 그들도 자연스러웠다. 나만 전형적인 외국인이었다.
처음엔 같은 LLM 동기라는 사실에 안도감을 느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꼭 그렇지도 않았다. 친구들 사이에 껴서 겨우 일상적인 말을 하고 나면 마치 영어 말하기 시험을 치른 듯 등에 식은땀이 났다. 가끔은 내가 말했는데 상대가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며 되묻기도 했는데 그땐 마치 시험 문제를 틀린 듯 얼굴이 화끈거리는 느낌도 받았다. 낄끼빠빠가 자꾸 떠오르는 건 왜일까.
영어로 말하다 보면 설명하기가 너무 어려워서 본의 아니게 사실이 아닌 말을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커피 마시러 가자는 질문에, "나 정말 커피 좋아하는데, 오리엔테이션 시작까지 30분 밖에 안 남았잖아. 그 시간 안에 커피를 다 마시기가 어려울 거 같아서 이번에는 안 되겠다. 다음에는 같이 가자"라는 답변 대신에 "나 커피 잘 안 마셔"라고 하는 거다.
그런 식으로 친구들에게 수업 중인 아내 핑계를 대면서 아내를 데리러 나가야 한다고 둘러대고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공무원 동기들 사이에서도 내가 나이가 많다 보니 주변인 느낌을 받았는데, 여기서도 나이가 아닌 언어 때문에 똑같은 경험을 한다는 게 낯설지 않았지만, 싫었다.
#3 셋째 날
오리엔테이션 마지막 날에는 증명사진을 찍는 세션이 있었다. 200명이나 되는 학생들이 차례로 찍는 거다 보니 대기 줄이 꽤 길었다. 나도 혼자 줄을 서서 기다렸다. 내 주변에는 모두가 JD 학생들이었고, 다들 삼삼오오 모여서 즐겁게 잡담을 나누고 있었다. JD들끼리는 정말 교우관계가 돈독했다. 나만 LLM이었고, 외국인이었다. 모르는 사람을 붙잡고 영어로 말을 걸 자신이 없었고, 그들도 나를 적당히 못 본 척하는 느낌이었다. 핸드폰만 의미 없이 만지작거렸다. 그러다 도저히 못 견디겠어서 자리에서 벗어났다. 나중에 줄이 줄어들면 다시 가야겠다고 하면서.
한 시간이 지났을까. 다시 사진 찍으러 올라가는데, 엘리베이터에서 한 JD 여학생을 만났다. 뽀글뽀글한 머리를 위로 묶었던 친군데 얼굴이 낯이 익었다. 사실 원래도 안면인식에 문제가 있는 나인데, 외국인은 너무 다 비슷하게 생긴 것 같아서 아직은 사람들이 잘 구분이 안 가는 거겠지 했다. 아무 말 없이 있으려고 했는데, 큰 엘리베이터 안에 단 둘이만 있으니깐 너무 어색했다. 아마 그녀도 똑같은 느낌이었을 것이다.
어쩌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서로 자연스럽게 자기소개를 하고 말을 나누게 되었다. 놀랍게도 그녀는 나를 알고 있었다. 알고 보니 첫째 날 함께 그룹토론을 한 것이었다. 심지어 내가 어디 부처에 근무하는 공무원이라는 것도 기억하고 있었다. 살짝 감동을 받았다. JD 중에 나란 존재를 아는 첫 학생이었다. 우리는 한국과 미국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나눴고, 헤어질 때도 마치 친구처럼 손을 격하게 흔들었다. 언젠가 또 우연히 만나게 된다면 그땐 이름을 다시 물어보고 기억해야겠다.
마지막 날에는 여러 만남의 행사들이 있었다. 먼저 LLM 졸업생들과의 만남. 졸업생들은 미국 변호사로서 어떤 활동을 하는지, 미국 변호사 시험을 보려면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를 알려줬다. 동기들 대부분 미국에서 변호사로 일하고 싶어 했다. 그래서 적극적으로 질문을 했다. 나만 관심이 없어 그런가 그들의 대화가 잘 들리지도 않았고, 들으려고 노력도 하지 않았다. 증명사진을 찍는다고 미국인들에게 둘러싸여 있다가 이를 피해서 동기들에게 왔는데도 또 겉도는 느낌이 들었다. 이런.
오후에는 LLM 동기들과의 첫 술자리가 있었다. 지금까지는 그냥 지나가다 만나면 소규모로 대화하면서 알아갔는데, 다음 주 학기 시작 전에 본격적으로 모여서 노는 자리였다. 어쩌다 보니 한가운데 앉게 되었는데 불편한 지점이 여럿 있었다. 다들 영어를 잘하니깐 내가 못 따라가는 농담들도 많았는데 웃을지 말지 고민하느라 진을 뺀 것이었다. 내가 영어로 제일 못 알아듣는 게 농담인데, 이런 사교 모임에서 대화의 대부분이 농담이다. 얼마나 힘들었을지 지금도 상상이 안 된다.
거기다 갑자기 칠레 친구가 나에게 "한국에서는 상사가 퇴근하지 않으면 부하 직원은 눈치 본다고 퇴근을 못하는 분위기냐"는 말을 영어로 길게 물었다. 곧바로 이해하지 못해서 여러 차례 되물었는데 칠레 친구도 당황하는 눈빛을 보였다. 어색한 분위기 속에 답답했는지 한국계 미국인 친구가 못하는 한국어로 더듬거리며 나에게 설명해 줬다. 솔직히 가볍게 웃고 떠들자고 모인 모임에서 이런 질문이 나올 거라고 상상이나 됐을까. (그러고 보니 농담도 문제고 진지한 대화도 문제다) 어쨌든, 나 빼고 다들 이해했다는 점이 더 서글펐다.
파티가 끝나갈 무렵 누군가가 우리들 나이가 궁금하다고 했다. 한 명씩 듣다 보니 변호사까지 하다가 온 친구들인데 생각보다 20대가 많아 젊어서 놀랐다. 내 차례가 되었을 때 말했다. "Guess!" 사람들은 20대, 30대라고 답을 했는데, 내가 포티식스라고 했다. 다들 화들짝 놀랐다. 포? 식스? 내 면허증을 보여달라고 그러기도 했다. 나보고 피부관리하는 법을 묻고, 누구는 동양인의 유전 때문이라고 했다.
순간 갑자기 나에게 관심이 쏠렸다. 나의 공무원 경력으로 나오는 프로페셔널리즘은 전혀 그들에게 의미가 없었다. 그렇다고 내가 영어를 못해도 신경을 안 썼다. 오직 동안의 모습이 내 캐릭터가 되었다. 모임이 마치고 술집을 나와서도 저 뒤에서 친구들끼리 포티식스라고 수군거리는 게 들렸다.
어떤 방식이든 존재감을 느끼게 된 마지막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