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사기꾼을 만난 적이 있다. 아르헨티나의 수도를 여행하기 위해 호스텔에 머무르던 시기였다. 며칠 동안 도심 곳곳을 돌아다녔고, 그러다 보니 느지막이 같은 숙소에 한국인이 머무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어쩌다 보니 말을 트게 됐고 이야기를 한참을 나눴다. 그분은 자신을 '여행 코디네이터'로 소개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와 대화를 하는 동안, 그가 사기꾼이라는 건 꿈에도 짐작하지 못했다. 편안한 표정과 서글서글한 말투, 그리고 점잖은 태도를 가졌기 때문이다. 사기꾼보다는 가게 사장님 같은 인상을 가진 분이었다. 그래서일까? 그와 나누는 모든 대화는 내 궁금증을 자아냈고, 여행에 대한 조언을 토씨 하나 안 틀리게 기억하려 노력했다. 그가 사기꾼이란 걸 알게 된 건 머지않은 일이었다.
이 경험 이후로, 내가 누군가를 참 쉽게 믿는다는 걸 깨달았다. 원체 의구심이 많은 성격인 탓에, 원인의 원인까지 들여다보는 편이었다. 하지만 타인, 그러니까 나와 다른 남에 대해서는 질문을 하나 던지고 그에 대한 대답이 나오면, 그걸 그대로 받아들이는 편이라는 걸 알게 됐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하고 자문해 봤다.
나는 일단 대화 내용을 사실이라고 믿는다. 모르는 사람과 대화를 나누더라도, 의심을 깔아놓은 채로 대화를 시작하면 본질을 파악하기 어려워진다. 내용을 곡해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일단 믿는 마음을 바탕으로 대화를 시작하게 된다. 물론 낯선 이를 처음 만날 때, 의도가 명확하지 않으면 석연찮은 티를 팍팍 내곤 한다. 그렇게 하지 않았을 때, 안 좋은 일을 당한 적이 있어서다.
멕시코에서 있었던 일이다. 신혼여행으로 입소문이 많이 난 칸쿤에 도착했다. 에메랄드빛 카리브해가 이어진 연안과 석회암 아래에 투명한 물을 머금은 세노떼는 이 지역에 호기심을 갖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멕시코의 마지막 여정이, 아름다운 바다를 보며 휴식을 취할 수 있는 휴양지인 것도 썩 마음에 들었다.
세계여행 첫 목적지를 멕시코로 선택하며 생각이 참 많았다. 예전에 영화 '코코'를 보며, 죽음을 축제처럼 묘사하는 모습이 신기했던 기억이 있다. 우리는 늘 무겁게만 받아들이는 사후 세계를 즐겁게 묘사하는 게 궁금증을 자아낸 것이다. 호기심이 생겨 방문했지만, 생각할 거리가 많아 머리가 복잡했던 여행지이기도 했다.
그래서 칸쿤에서 어디를 여행할까 하다가, 칸쿤의 끝자락에 위치한 '이슬라 블랑카'에 가기로 했다. 이슬라는 섬, 블랑카는 하얀색이라는 의미이다. 외진 곳이다 보니 사람이 많이 없다는 후기가 보였다. 조용한 곳에서 생각을 갈무리하며 여정을 마무리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장소를 정하자마자 콜렉티보를 타고 바닷가로 향했다. 탈탈거리며 굴러가는 봉고차를 타고, 이슬라 블랑카에 도착했다. 곧바로 환호성이 터졌다. 천국 같은 풍경이 펼쳐진 것이다. 연안을 따라 터키색 바닷물이 일렁이고 있었고, 발자국 하나 없는 백옥 같은 모래가 펼쳐져 있었다. 이 새하얀 백사장을 독차지하는 기분이 들었다.
물에 발을 담갔다. 물이 어찌나 맑은지 발아래가 훤히 다 보였다. 하지만 긴 연안 때문인지 길게 이어진 파도가 거센 물살을 몰고 왔다. 이 파도에서 수영을 하다간 금세 저 멀리 바닷가로 내던져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연안을 따라 걸어보기로 했다.
세상의 끝으로 향하는 기분이 들었다. 새하얀 연안에는 바다에서 떠내려온 플라스틱 물병, 먹고 버린 것 같은 붉은 킷캣 껍질이 갈색 해초 틈에 끼워져 있었다. 사람 하나 없는 길이었지만, 지나간 사람의 흔적이 마음을 안심시켜줬다.
조금 더 들어가자 높게 솟은 야자수가 나타났다. 그늘 아래 자리를 펴고 잠시 앉았다. 가사가 없는 음악을 틀고선 그 자리에서 휴식을 취했다. '아, 이제 멕시코 여정이 끝나는구나.' '이런 아름다운 곳에서 마무리를 하는구나'하며 말이다. 만족스러운 마음이 차올랐다.
불편한 이야기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즐거운 여정을 마친 뒤,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해변 입구로 향했다. 거기서 한 50대 미국인 아저씨를 만났다. 미국 중부에 사는 머리가 희끗한 아저씨는, 멕시코에 휴양 차 놀러 왔다고 했다. 해변에 들어서는 길에 '안녕'하고 인사를 건네길래 '안녕!' 하며 답을 했었고 나오는 길에 다시 마주쳤다. 미국인은 스몰톡을 좋아하는 사람이 많았으므로, 혼자 와서 심심했나 보다 하며 대꾸를 했던 차였다.
아저씨는 어디로 가고 있느냐 물었다. 콜렉티보를 타고 도심으로 가는 길이라고 답했다. 잠깐 고민하던 아저씨는 본인도 센트로를 거쳐 집으로 가는 길이니 태워주겠다고 했다. 잠깐 의뭉스러운 표정을 짓고선 쳐다봤지만, 수작을 부리는 것 같지는 않았다. 미국에 있던 시절, 동료들이 픽드랍을 많이 해줬기 때문에 어른이 보이는 순수한 호의처럼 보였다. 게다가 며칠 전, 친구와 히치하이킹을 성공하고 인류애가 충만했던 나는, 세상에 참 좋은 사람이 많구나 하며 얻어 탔던 것 같다.
하지만 모르는 사람의 차를 얻어 타는 게 그다지 마음 놓이는 일은 아니었다. 그래서 나름대로 질문을 던지며 그 사람에 대해 파악했다. 나이는 59세, 이름은 제임스고 미국에서 왔다고 한다. 작년 한 해에만 8개의 나라를 여행할 정도로 여행덕후라고도 했다. 사람 만나는 걸 좋아하고, 다른 사람을 도운 일화를 아주 자랑스레 말을 했다. 아들이 둘이 있다고 했고, 한국에도 방문한 적이 있다고 했다. 호의를 베푸는 모습을 보며, "아, 나도 예전에 그랬지" 하고 생각했다.
2018년, 당시 제주도 여행을 위해 큰맘 먹고 렌트를 했던 적이 있다. 한국이 독일을 상대로 2:0의 승리를 거둔 월드컵 경기를 보며, 숙소에 같은 방을 쓴 친구들과 친해졌다. 내일 제주에서의 일정을 물었더니 편집샵을 돌아다닐 예정이라고 했다. 전부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다닐 거라, 동선이 살짝 애매하다는 말을 듣고선 기사 역할을 자처했다. 어차피 친구들이 오기 전 혼자 여행하는 시기이니, 혼자보다는 여럿이 여행하기 더 재미있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이다.
이처럼, 시간과 자본이 있던 시절의 나에게 픽드랍은 손쉬운 호의였다. 아저씨는 재력을 과시했고 시간도 넘쳐 보였다. 게다가 도심까지는 길이 멀지 않았으므로, 괜한 걱정으로 남을 의심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아저씨는 끊임없이 여행에 대한 이야기를 했기에, 웃어른 여행객이 초보 여행객에게 주는 호의겠거니 했다.
몇 분이 지나지 않아 목적지인 해변에 도착을 했다. 차량이 도심으로 빠져나가는 길목에 있는 해변이었기에 그곳에서 내려달라 요청해둔 상태였다. 바다에 도착해서 헤엄을 칠 생각이었는데, 아저씨가 갑자기 여기에서 같이 놀아도 되느냐고 물었다.
나는 이 말의 의미를 '이 해변에서 나도 놀다가 가려고 한다'고 이해를 했다. 본인이 바다에서 노는 건 자유이니 그냥 오케이라고 답하고 바다에 발을 담갔다. 하지만 수위가 너무 높아 수영을 하기에는 어려웠다.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그 모습을 보던 아저씨가 갑작스러운 제안을 했다. 이 근처에 본인이 경험해 본 바다 중 가장 아름다운 바다가 있는데 거기에 한 번 가보지 않겠냐고 말이다. 수위가 낮아 수영하기도 좋은 곳이라고도 했다. 잠시 고민을 해봤다. 지금까지 대화를 나눠봤을 때, 이상한 점을 발견하지 못했다. 게다가 '여행을 좋아하지만, 함께 놀 사람이 없어 심심해 보이는 사람' 정도로 해석했기에 무서운 느낌이 없었다.
게다가 정오 즈음이라, 어둡거나 무서운 시간도 아니었고 칸쿤까지 다시 데려다주겠다고 했다. 어느 장소인지 물었더니, 구글맵에 검색해서 보여줬다. 내가 이전에 저장해둔 적이 있는 주소였다. 한 번 가볼까 싶어 알아봤던 곳이라 인근 장소나 버스 타는 곳 위치까지 알고 있었다. 여차 무슨 일이 생겨도 버스를 타고 오면 되겠거니 생각했다. '한 번 가보지 뭐, 이런 게 여행 아니겠어?'하고. 나는 이 생각을 정말로 후회한다.
도착해서 본 바다는 정말 예뻤다. 2-3시 정도 된 시간이었는데, 해가 슬쩍 내려와 주황빛으로 세상을 물들이고 있었다. 바닷물은 뜨거운 햇빛으로 따뜻해졌다. 기분이 좋아져 홀로 물놀이를 하는데, 아저씨가 물 위에 떠있는 해초를 공으로 만들더니 내게 던졌다. 갑작스러운 장난이 썩 유쾌하지는 않았지만, 물에서 헤엄만 치기엔 심심한가 보다 싶어서 그냥 그 공을 다시 던져줬다.
핑퐁이 이어졌다. 공놀이를 계속 건네는 게 요상하다고 느낄 무렵, 점점 거리가 가까워지는 게 느꼈다. 일부러 거리를 두고, 공을 다시 던지지 못하게 저 멀리 보냈다. 마침내 그 이상한 랠리는 끝이 났다. 아저씨가 내게 가까이 오더니 웃으며 내 팔뚝을 쪼물딱 거렸다.
온몸에 소름이 쫙 돋았다. '이게 뭐야?' 심장이 쿵쾅쿵쾅 뛰었다. 마음이 불편해지자마자 온몸에 사이렌이 울렸다. 집으로 빨리 돌아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곧장 수영을 멈추고 이만 가야겠다는 말을 했다. 아저씨가 저녁을 먹고 가라고 한다. 숙소 레스토랑에서 아주 맛있는 새우 피자를 판다고.
곧장 거절했다. "내일 새벽에 콜롬비아로 가는 비행기를 타는데 짐을 챙겨야 해서요." 잠깐 상황을 살피던 아저씨는 알겠다고 하더니 물 밖으로 나오며 숙소에서 씻고 가라고 했다. 내 표정이 짙게 굳었다. 내 표정을 본 아저씨는 오해하지 말라며, 숙소 바깥쪽에 욕실이 있다고 보여줄 테니 씻고 싶으면 씻으라고 했다.
속으로 욕지거리가 나왔다. 진짜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말해서 물 마시라는 소리 정도를 하는 줄 알았다. 계속 거절을 했더니, 일단 차가 그곳에 있으니 그쪽으로 이동하자고 했다. 차량을 향해 가면서 머리를 계속 굴렸다. 무섭다는 생각이 한 번 들기 시작하니, 어떤 식으로 위협적인 상황이 올지몰라 불안했다. 큰 소리를 내거나 갑자기 도망치면, 누군가와 함께 쫓아올 것 같아서 계속 머리를 팽글팽글 굴려댔다.
나한테 씻으라고 제안하던 아저씨는, 극구 거절을 하자 그러면 본인은 씻고 오겠다고 짜증스레 말하며 기다려달라고 했다. 두려움에 버스 노선을 혼자 알아보고 있었는데, 그사이 샤워를 마친 아저씨가 숙소 샤워 시설을 보여줄 테니 씻을지 말지 보고 결정하라며 보여줬다.
정말이지 역겨웠다. 집에 빨리 가야겠다는 말을 세 번이나 하고 나서야 차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차로 걸어서 이동하는데 카메라 각도가 왠지 나를 찍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불편해서 나란히 걸었다. 차를 타고 칸쿤으로 돌아올 때 계속 숙소가 어디냐고 묻길래, 근처 그로서리를 도착지로 말했다. 이 아저씨가 찾아올까 봐 너무 무서웠다. 운전을 하는 아저씨는 화가 나 보였다. 거칠게 쌩쌩 달리지를 않나, 끼어드는 차를 향해 '퍼킹'하며 욕을 해 댔다. 무서움이 극에 달했다.
차에서 내릴 무렵, 아저씨가 셀카를 찍자고 제안했다. 사진 한 장 안 찍으면 안 보내줄 것 같은 기세라, 알겠다고 하고 셀카를 찍었다. 찍힌 사진을 확인하겠다고 하며 앨범을 열었는데 기절 초풍하는 줄 알았다. 내 원피스 꽃무늬 사진이 스무 장은 넘게 보였다.
'이 아저씨 대체 뭘 찍은 거지?' 누가 봐도 몰카였다. 소름이 쫙 돋았다. 근데 더 소름 돋는 게 있었다. 바로 다른 여자의 비키니 사진이었다. 두 번째 방문한 해변에서 수영을 하려고 자리를 잡을 때 아저씨는 주변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별생각이 없었는데, 그때 찍은 사진인 것 같았다. 여성의 비키니 사진들을 보니 구역감이 치솟았다. 변명 삼아 그로서리에 내려달라고 했지만, 소름이 가라앉지 않아서 결국 슈퍼마켓에서 한참을 있다가 밖으로 나왔다.
처음에는 무서웠는데 집에 오니 그라데이션 분노가 치밀었다. 만약 무슨 일이 있었다면, 그의 사진첩이 다른 것으로 채워졌을 것이라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나에게 샤워를 종용한 이유도 모종의 이유가 있었을까? 하고 생각하니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왔다.
상식 안에서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한 것들이, 의도가 끼워졌을 때 얼마나 나빠질 수 있는가 하고 배운 시간이었다. 자바카라의 시간이 참 길었다. '그냥 콜렉티보를 타고 갔었더라면', '못 가본 여행지는 그대로 남겨뒀더라면' 하는 마음이 생겼기 때문이다. 좋은 추억으로 마무리할 수 있었던 칸쿤에서의 여정이 불편한 경험으로 인해 훼손된 기분이었다. 자바카라과 분노가 번갈아 오갔다. 좋은 일만 있었으면 하는데, 누군가를 쉽게 믿다 보면 이렇게 나쁜 일도 일어나곤 한다.
나쁜 의도를 가진 누군가 때문에 세상 모든 것들을 미워하고 싶지는 않다. 여행하면서 나쁜 사람보다는 좋은 사람들을 더 만났으니까. 못된 누군가를 만나며 인간에 대한 기대가 깎여나가는 건 사실이지만, 남이 나쁜 짓을 한다고 나도 그래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나는 나와 같은 경험을 하는 사람이 줄어들도록, 한 번 더 손 내밀 생각이다. 그동안 타인에게 받아온 친절이 나를 올곧게 키워냈으니까. 나쁜 일로 인해 나의 태도를 바꾸기보다는 좋은 경험으로써 나를 바꾸는 삶을 살아야지. 그것이 나쁜 경험이 내게 더 큰 영향을 미치지 않게 만드는 일이라는 걸 기억하며, 오늘의 글을 마쳐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