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어김없이 자카르타 숙소에서 눈을 떴다. 아침 8시쯤 알람도 없이 일어났다. 자연스레 침대에서 이불을 걷어내고 내려와 바닥에 요가 매트를 펼치고 '15분 모닝 요가' 영상을 틀었다. 스트레칭을 하며 기지개를 켰다. 다음으로 세안을 하고 얼굴에 스킨과 로션, 선크림을 콕콕 찍어 발랐다. 간단하게 글을 쓸 준비를 마친 뒤, 커피 한 잔을 들고 바카라상에 앉았다. 요즘 매일같이 하는 아침 루틴이다.
'한 달 살기'라는 말로 시작한 게 무색하게, 자카르타 살이가 한 달 더 늘었다. 거창한 이유는 아니다. 맨 처음 한 달 살기를 결심하며 '아무것도 안 하면서 쉬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 뒤로 몇 가지 다른 이유를 붙이고 붙이고선 자카르타에 도착한 게 지난달 초의 일이다.
첫 주엔 새 거처가 생겼으니 동네 탐방을 했다. 장을 보기 위해 마트와 몰에 들렀고, 동네에 있는 가게들을 들락날락 거리며 맛집을 찾았다. 둘째 주엔, 자카르타를 한 바퀴 슥- 훑었다. 그래도 기왕 왔는데 돌아봐야지 하며 여행을 한다는 게 한 주가 훌쩍 지났다. 셋 째주에는, 참 서글프게도 지독한 감기에 걸렸다. 블록 엠이라고 하는, 서울의 홍대 같은, 사람이 많이 몰리는 곳에 들렀다가 큰 짐을 붙여 돌아온 것이다. 마지막 한 주는 다음 여정을 고민하느라 썼으니, 이마저도 쓸데없는 시간이 되었다. 결국 한 달을 늘리게 된 건 자연스러운 일이 됐다.
한 달 살이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 하니, 첫 한 달 살이가 떠오른다. 2020년, 스물여섯. 미국 인턴십을 마치고 돌아왔을 때의 이야기다. 3월 초, 세계 일주를 결심하고선 부푼 기대를 안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미국 인턴십을 마치며 한 달간 미서부 여행을 하며 돌아다닐 때만 해도, 코로나19가 그렇게까지 널리 퍼진 시점은 아니었다.
하지만 한국에 돌아오자마자 코로나19는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널리 퍼졌다. 한국에서 최대한 빨리 채비를 해서 외국으로 나갈 심산이었지만, 귀국 후 몇 달을 기다려도 백신이 생길 조짐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시간을 허비하고 싶지 않았던 나는 또 다른 버킷리스트였던 '제주도 한 달 살이'를 시작했다.
'제주도 한 달 살이'는 말 그대로 제주도에 한 달 살며 여행을 하는 일이다. 이전에 제주도를 여행하러 가서 스탭들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게스트 하우스에서 일을 하고 머무를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 정보는 제주도 게스트하우스 카페에서 찾을 수 있었다.
숙소마다 천차만별의 옵션이 있었다. 그중에서 성산일출봉과 가까운, 제주도 동쪽에 있는 한 게스트 하우스를 알게 됐다. 밤늦게 파티를 하고 사람이 많은 곳은 취향이 아니다보니 제끼고, 자연을 느긋하게 즐길 수 있는 곳을 찾다 보니 발견한 곳이다. 한 달을 일을 하면, 일주일 중 3-4일은 숙소 청소를 돕고 남은 날은 자유 시간이었다. 숙식을 모두 지원해 준다는 말에 솔깃해서 시작하게 됐다.
처음 하는 한 달 살이는 설렘 그 자체였다. 일하는 3일간은 너무나 고된 시간이었지만, 남은 4일 동안 어디에 갈지 고민하는 시간은 이루 말로 할 것 없이 즐거웠다. 제주도 성산일출봉 근처를 샅샅이 살폈다. 이전에 3박 4일 여정을 꾸려 제주에 놀러 왔을 땐, 한 지역에 고작 2-3개의 카페를 가는 게 전부였다. 하지만 이곳에 살게 되니 동네에 있는 모든 유명한 카페를 다 방문할 수 있었다. 원래도 유달리 좋아하던 제주도였던 터라, 행복하기만 한 시간이었다.
물론 늘 좋기만 한 건 아니었다. 게스트 하우스에 있는 침대보를 매번 벗기고 씌우는 일은 쉽지 않았다. 매일 아침마다 욕실과 바닥을 쓸고 닦았지만, 손톱만한 머리카락이 발견되어 혼이 날 때면 기분이 좋지 않았다. 하지만 그런 시간들이 모두 아무렇지 않을 만큼 제주 살이가 좋았다. 그 정도쯤이야, 일에 받던 스트레스에 비하면 별것 아니었으므로, 행복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다.
왜 사람들이 동남아의 한 시골 마을에 머물면서 한 달 살이를 하는지 알 것 같았다. 한 달 살이는 내가 좋아하는 곳에 머물면서 구석구석 세세하게 살펴보는 삶을 사는 것이었다. 사실 '살이'라는 말을 붙이긴 했지만, 실은 '긴 여행'이라는 말이 더 잘 어울리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좋아하는 곳을 선택하고, 그곳에 더 긴 시간을 쏟는 것. 자유여행의 본질에 가까운 그런 삶 말이다. 그것이 내가 이해한, 한 달 살이의 이유이자 정의였다.
한편, 호주 워킹홀리데이를 마치고 귀국을 했을 무렵에 나는 글을 쓰고 싶었다. 호주에 있던 당시의 나는 휴일을 제외하곤 하루에 12시간씩 매일같이 일을 했다. 이른 아침에 일을 시작할 때엔 '오늘 일을 마치면 생산적인 일을 해야지. 생각을 하고 글을 써야지'하며 나섰지만, 집으로 돌아올 땐 어김없이 녹초가 됐다. 몸을 쓰는 일을 하다가, 깊이 있는 생각을 하려고 보니 생각도 체력이 필요한 일이란 걸 깨닫게 됐다. 그래서일까? 다소 유난스러워 보이기는 하지만, 글을 쓰기 위해 집중할 수 있는 장소와 충분한 시간이 필요했다.
다른 이유도 있었다.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했다. 서울에 상경해서 혼자 산지가 어연 8년이 넘게 흘렀다. 혼자 사는 게 익숙하던 사람이, 여행을 하며 호스텔에 남들과 공간을 공유하며 산 게 1년. 호주에서 친구들과 부대끼고 방을 빌려 공동생활을 한 게 2년이다. 도합 3년의 시간을 지내면서, 혼자만의 시간이 정말로 고팠다. 중간중간 힘닿는 대로 혼자만의 시간을 가졌으나, 그 정도로는 충분하지가 않았다.
또 공간이라는 게 참 요상한 성격을 가지고 있다. 장소가 내 기억을 저장하고 있는 것 같았다. 오랜만에 방문한 고향 집에서도, 서울에 있는 언니 집에서도, 사라진 줄로만 알았던 기억이 또렷하게 떠올랐다. 누군가를 만나도 마찬가지였다. 가족과 친구를 만날 때면, 저 멀리 던져뒀던 기억들이, 너 나 할 것 없이 밀치며 뛰쳐나왔다. 사람과 공간. 두 조건 값이 맞물릴 때면, 그저 예전에 그랬던 것처럼, 나보다는 누군가를 먼저 생각하게 만들었다.
마지막으로, 다른 나라에서 사는 경험을 해보고 싶었다. 나는 이미 두 차례 외국에서 산 적이 있다. 스물다섯, 미국으로 인턴십을 떠나 뉴욕에서 1년을 살았다. 세계 여행을 시작하기 전에 내린 결정이다. 타국으로 나가고 싶다는 욕망이 여행을 향한 꿈인 건지, 아니면 다른 나라에서 살아보고 싶은 마음인 건지 알고 싶어 내린 결정이었다. 하지만 정착을 염두에 둔 적은 없었다.
한편 서른에서 서른둘, 호주에서 2년을 지냈다. 이 또한 '여행을 위한 자금'을 모으기 위한 여정이었다. 돈을 목표로 하고 있었으니, 경주마처럼 달리기만 했다. 호주에서 만난 대부분의 사람들이 '호주에서 살고 싶지는 않아? 영주권 생각은 없어?'하고 물었지만 뜻이 없었다. 목적을 위한 임시 거처로 생각한 셈이다. 이렇듯 다른 나라에서 사는 삶은 남의 이야기처럼 생각하고 있었다. 무의식중에 결국 한국에 들어와서 살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하지만 언젠가, '꼭 한국에서 살아야 할까?'하는 의문이 생겼다. ‘여행을 이렇게나 좋아한다면, 그래서 다른 나라에서 사는 게 이렇게 거리낌이 없다면 왜 나는 한국에서 산다는 생각을 갖고 있을까?’ ‘한국에서 살아야겠다는 생각 자체가 스스로의 결정에 한계를 두는 행동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미친 것이다. 평소 현실적으로 생각하는 편이었기에, 모든 현실을 고려한다면 당연한 선택에 불과했지만, 생각의 한계를 없애고 싶었다. 모든 값을 영점으로 두고 시작하고 싶은 것이다.
이 '한계 없애기' 행동은 대학생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학부 시절, 학점 4.5의 벽을 넘지 못하던 순간이 있었다. 늘 시간표가 테트리스처럼 차곡차곡 쌓여 있었다. 바쁘게 일도 해야 했고, 심지어는 연애까지 했다. 시험 기간에는 매일 수면시간을 4시간으로 줄여가며 공부를 했지만 24시간이 모자랐다.
그래서인지 스스로를 몰아붙이지 않고 싶다는 명목으로 '한 과목 정도는 B를 맞아도 괜찮아. 조금 낮은 성적을 받아도 나 스스로에게 실망하지 않을 거야'라는 말을 스스로 했다. 이건 합리화에 불과했다. '이렇게 바쁘게 살아도 이 정도 성적은 받을 수 있어'라며 콧대 높은 자존심에 금이 가기 싫어서, 나 자신에게 건넨 면죄부에 불과했다.
하지만 3학년 1학기가 찾아왔다. 전 학기를 통틀어 신경 쓸 게 가장 많았던 시기였다. 7과목을 들으며 숨 쉴 겨를조차 없이 바빴던 탓에, 면죄부를 내릴 시간조차 없었다. 아이러니하게도 3학년 1학기에 그렇게 고대했던 4.5학점을 받았다. 인생 최고의 성적표였다. 늘 어딘가에서 삐끗해왔으므로, 이번에도 한 개쯤 삐끗했겠지 하며 기대감을 낮췄었다. 그래서인지 기쁜 마음보다는 얼떨떨한 마음이 컸다.
이때 문득 느꼈다. '나는 나 자신을 위로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에게 한계를 부여하고 있었구나. 나는 한계까지 부딪힐 수 있는 사람인데, 기대한 만큼의 결과가 나오지 않을 게 두려워서 한계를 걸어둔 거야.' 숨구멍인 줄 알았던 생각이, 알고 보니 도전에 빗장을 걸어 잠그는 행위였다.
그 사실을 깨달은 후로, '한계 없애기' 연습을 꾸준히 했다. 한 번 내가 스스로 부여하는 한계 지점을 느끼고 나니, 일상에서의 한계점이 너무나 잘 보였다. "너는 뭐가 되고 싶어?"라는 말에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먼저 나누고, 한계 안에서 할 수 있는 대답만 하는 내가 보였다.
스스로 '나는 좀처럼 큰 사람이 되기 어렵겠다'는 생각을 했고 그 생각이 미웠다. 나는 왜 상상에서조차 한계를 두는가, 하는 생각이 머리에 스쳤다. 그래서인지 ‘다른 나라에 살 수도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에 가능성을 열어두고 싶다는 건 상당히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앞선 주된 이유를 차치하고도, 한 달 살기를 결심한 데는 몇 가지 이유가 더 있었다. 호주 워킹홀리데이에서 인도네시아 친구들을 많이 만났다. 여전히 서로 다른 문화적 배경을 가지고 있긴 하지만, 한국인과 대만인을 제외하고선 유일하게 맘이 맞는 친구가 생긴 나라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들의 나라는 어떤 나라일까? 하는 호기심이 생겼다. 그래서 인도네시아를 택했다.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 때문에 첨탑 위 라푼젤 같은 생활을 고려하고 있었으므로, 눈 돌아갈 재미요소가 많은 발리보다는 인프라가 잘 갖춰진 대도시 자카르타를 선택하게 되기도 했다.
한 달 살이를 결심하기까지, 정말 많은 이유를 발견했다. 수많은 이유에 대해서도 질문을 만들어 다시 되물었다. 이게 정말로 '지금' 필요한 일이냐고. 무수히 많은 질문을 던진 후, 스스로 붙인 이유가 꽉꽉 들어찼을 때가 되어서야 결정을 내리게 됐다.
사실 이 말은, 이 여정에 나 자신조차 명확하게 설득이 될만한 뚜렷한 이유가 없다는 말이기도 하다. 분명했다면 망설이지 않았을 것이므로. 하지만 늘 명확한 선택만 있는 건 아니었다. 지나고 보면 깨닫게 되는 것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맘때의 선택은, 단지 우선순위가 명확하지 않았을 뿐이었다.
이쯤 되니 한 달 살이에 대한 정의를 다시 내려볼 수 있겠다. 맨 처음 제주도에서 한 달 살이를 했을 때는 '여행'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한 달 살이의 본질이 여행이었고, 여행을 위해 머무는 선택을 한 거니까. 하지만 이번 자카르타 한 달 살기는 '쉼'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시간과 장소를 만들어내는 선택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생면부지의 누군가와 살을 맞대어 살게 된 사람마냥, 익숙한 것들을 찾아다니게 된다. 일상을 무너트리지 않게 나만의 루틴을 만들고, 그것을 매일같이 하고 있다. 필요를 위해 한 선택이지만, 문화적으로 환경적으로 너무 다른 장소에서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모르는 곳에 나와서 한 달을 산다는 건, 매일같이 새로운 상황과 부딪혀야 한다는 이야기이다. 하고 싶은 게 생기면, 어디에 가야 할 수 있는지 알아봐야 한다. 원하는 게 없으면, 또 다른 옵션이 있는지 뒤적여봐야 알 수 있다. 필요한 건 찾아서 배우고 쓰고, 경험하며 체득하고, 내가 살던 기성의 슬롯에서 해왔던 일을 다시 시작하는 일이다.
여행자로 떠돌이 생활을 하며, 어디서든지 일하며 살 수 있는 노마드 워커를 꿈꾼 게 사실이다. 하지만, 이게 내게 지속 가능한 삶의 방식일까? 유영하며 사는 것을 꿈꾸는 사람이지만 그렇다는 대답이 선뜻 나오지를 않는다. 어딘가에 정착을 하고, 동네를 오가며 아는 사람이 생기고, 안부와 일상을 묻는 사람이 있는 곳. 혹은 그것에 준하는 것이 생겼을 때, 비로소 내가 '살아갈 곳, 살고 싶은 곳'이라는 타이틀을 붙일 수 있겠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
'한 달 살이'라는 컨셉이 여행의 한 장르로 널리 알려지게 되면서, '나를 아무도 모르는 곳 먼 곳에 가서 홀로 지내는 여유로운 삶'을 그리게 됐다. 하지만 지금의 나에게 한 달 살이란, 쉼, 그리고 다음 여정을 준비하는 시간으로 정의를 할 수 있을 것 같다.
자카르타에 있으며 혼자서 시간을 정말 많이 보냈다. 홀로 시간을 보내다 보면, 누가 쳐다보는 것도 아니고 뭘 해야 한다고 정해진 것도 아닌데, 스스로에게 박하게 구는 시간이 있다. 누워서 릴스를 보는 시간이라던가, 그러면서도 끊임없이 군것질거리를 입에 집어넣는 시간들 말이다.
반면, 나에게 후한 시간들이 있다. 체육관을 등록할 수 없어, 아파트의 작은 실내 짐에 운동을 할 때. 기상 후 머리가 가장 맑은 때에 글을 쓰는 시간 같은 것들 말이다. 시간제한 같은 건 두지 않은 채로 몰입하는 시간이다. 그럼에도 전혀 아깝지가 않다.
시간 제약이 없을 때 스스로에게 박한 것과 후한 것들을 보면서, 내가 필요로 하는 게 무엇인가를 깨닫는다. 하고 싶어서 하는 것에는 시간이 아깝지가 않다. 그래서 여러분들에게도 묻고 싶다. 당신이 후하게 시간을 쓰는 일이 무엇이냐고. 하고 나서 아깝지 않은 시간이 무엇이냐고. 그리고 또 말하고 싶다. 스스로에게 후한 시간을 조금 더 선물해 주라고, 그것이 보람찬 마음을 건네줄 수 있도록 말이다. 이 말을 끝으로 오늘의 글을 마쳐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