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내 이목을 잡아끄는 두 유튜브 채널이 있다. 제목에서 적었다시피 '악성 내성인 정일영'과 '개과천선 서인영'이다. 두 채널 모두 유튜브 씬에 혜성처럼 등장했고, 자리를 잡자마자 신예로 등극했다. 어쩌면 이렇게 촬영하는 족족히 사람의 시선과 마음을 사로잡는 것인지 참으로 신기할 따름이다.
두 사람을 모르는 사람을 위해 짤막하게 소개해 보자. '악성 내성인 정일영'은 프랑스어를 가르치는 정일영 교수님의 채널이다. 정일영 교수님은 침착맨의 유튜브 채널에 프랑스어 강사로 등장해 거친 입담으로 존재감을 알리기 시작했다. 교수님에 대해 호기심을 갖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유튜브 채널을 개설한 게 요 근래의 일이다. 호락호락하지 않은 성격으로 '악플 입담'을 가지고 있다곤 하지만, 귀를 사로잡는 말솜씨가 사랑받는 가장 큰 이유인 것 같기도 하다. 말 안에 숨겨진 유쾌함과 따스함은 덤으로 따라온다.
'개과천선 서인영'은 유명 걸그룹 쥬얼리의 멤버인 서인영이 등장하는 채널이다. 서인영은 우리 결혼했어요나 신데렐라 등 우리 세대에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한 사람이다. 하지만 과거 욕설을 한 일이 미디어에 노출이 되며, 대중들의 뭇매를 맞고 잠시 사라졌다. 이후, 반성을 한다는 의미로 '개과천선' 타이틀을 달고 유튜브에 등장했다. 까랑까랑한 목소리와 솔직 털털한 성격이 유튜브라는 플랫폼과 잘 어울리는구나 싶으면서도, '스타성'이라는 말이 이런 사람에게나 어울리는구나 할 정도로 사람의 시선과 귀를 사로잡는 대범함이 있다. 간단한 설명을 덧붙였으나, 이래나 저래나 사람이 참으로 매력적인 두 채널이다.
자연스럽게 이 두 채널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하는 궁금증이 생긴다. 알고리즘이 너 나 할 것 없이 이들을 추천해 주는 걸 보면, 대중적으로 많은 관심을 갖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은, '솔직함'이다. 정일영 교수님의 영상을 보면, '바락바락 대든다'는 표현이 어떤 말인지 알 수 있다는 생각을 한다. 영상 한 편, 1분 1초가 남아나지 않을 정도로 컴플레인이 넘쳐난다. 불편한 감정이나 생각을 정말 솔직하게 드러낸다. 미안한 기색 하나 없이.
서인영의 영상도 마찬가지이다. 고마운 일은 고맙다, 미안한 일엔 미안하다며 감정을 숨기지 않고 드러낸다. 대중에게 알려질수록, 싫은 소리는 아끼고 아쉬운 마음은 감추기 마련인데 말이다. 그들의 솔직한 성정과 생각이,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에서 그들을 아끼는 마음이 생기는 것 같다.
두 번째 이유는 '세월이 느껴진다'는 점이다. 두 분 모두 녹록지 않은 인생을 살아왔다. 인생의 호시절과 밑바닥을 모두 지냈다. 쉽지 않은 인생에 지칠 법도 하지만, 그들은 자신이 가진 원래의 모습 그대로 살아간다. ‘하고 싶다, 되고 싶다'는 열망을 가진 채로 말이다. 인생의 굴곡을 겪어서일까?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 유연해진 태도도 눈에 띈다.
수청무어(水淸無魚)라는 말이 있다. 물이 너무 맑으면 물고기가 살지 않는다는 뜻이다. 기본적으로는 너무 결백하고 깐깐한 사람과는 누구도 어울리지 않는다는 말이지만, 사람이 성미가 너무 곧아도 주변과 어울리지 못한다는 의미로 꺼내봤다.
두 인물의 성격은 무던하다고 부르기는 어렵다. 자기주장이 확실한 편이므로. 솔직한 성격이 소싯적엔 누군가와 어울리기 어렵게 만들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인생의 롤러코스터를 타면서 세상과 융화될 수 있는 지점을 스스로 만들어낸듯했다. 사람이 이어진 일에는 선을 지키려 노력하고, 필요한 일에는 허허 웃으며 대처해낸다. 그래서인지 그들이 조언을 줄 때면, 직접 경험한 일을 바탕으로 하는 조언이니 잔소리처럼 들리지가 않는다.
에콰도르 키토에서 한인 호스텔에 머무르던 때에 60대 할아버지를 만난 적이 있다. 아내분과 동네 지인들을 모아 총 4명의 인원으로 구성된 여행객이었다. 어르신은 공무원을 정년 퇴임하시고, 남미를 여행하고 싶으셨다고 한다. 그래서 혼자 A4로 100페이지를 넘게 계획하며 여행을 시작했다고.
공무원인 까닭에 여행 기간, 동선, 숙박 장소 등등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일을 계획하셨다. 또 예약도 미리 다 해왔다. 변수가 넘치는 남미 여행을 이렇게 하나부터 열까지 준비해오신 게 정말 대단하게 느껴졌다. 여행 전반의 동선을 미리 짜온 내가 혀를 내두를 정도의 꼼꼼함이었다.
사실 여행 계획보다도 놀랍게 느껴진 건, 그들의 연배였다. 60대인 할아버지가 어떻게 이 모든 계획을 다 꾸리셨을까 하는 마음이 든 것이다. 내가 과연 어르신이라면, 그 연배에 이렇게 모든 것을 준비해 여행을 올 수 있었을까? 감히 상상해 본다, 그 과정이 얼마나 힘들었을지. 부모님 연배의 어르신들은 키오스크도 쓰기 어려워하는데 하며.
어르신은 컴퓨터로 정보를 검색하고, 스프레드시트에 표를 만들어 모든 일정을 계획했다. 사진을 짜집어내 첨부하고, 온라인 결제까지 마쳤다. 미래에 어르신의 연배가 되었을 때를 상상했다. 손녀가 손가락을 튕기며 코딩을 하고 '참 쉽죠? 이렇게 하면 돼요'하고 알려주는 것을 보고 따라 하는 것과 진배없는 이야기 같았다. 존경심이 들었다. 여행을 할 의지와 그것을 실천할 능력이 있다는 것. 두 가지 모두가 대단하게 느껴지던 순간이다.
이런 어르신들이 나에게 상당히 안정감을 주었던 기억이 있다. 잠시 에콰도르의 배경 상황에 대해 잠깐 이야기해 보려 한다. 에콰도르 키토를 여행하던 당시, 급보가 터졌다. 감옥에서 '마약왕'이라고 불리우던, 요주의 인물이 탈옥에 성공했다는 내용이었다. 거물급 죄수가 탈옥한 사실이 알려지자 에콰도르 전국이 들썩였다. 감옥에 있는 죄수들은 기세등등해서 목소리를 높였고, 감옥 밖의 범죄자들은 난동을 피워댔다. 치안이 악화되자, 에콰도르 정부는 밤 11시부터 새벽 5시까지 통행금지령을 내렸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모든 여행 일정을 접고 숙소에서 자리를 지키며 며칠을 지냈다. 에콰도르의 치안이 흉흉하다 보니 자연스레 불안함이 차올랐다. '이대로 여행을 또다시 멈추게 되는 건가?', '그동안 여행을 못할 이유가 수도 없이 많았는데, 나는 또 여기에서 멈춰야 하는가?'하는 물음도 함께였다.
그런 순간에 희한하게도 어르신 여행객의 존재가 위로가 많이 됐다. 오며 가며 웃으며 안부 인사를 건네주시던 말들과, 작은 것 하나라도 나누려는 마음들 때문이었다. 아침에 나갈 땐 사과를 쥐어주셨고, 저녁에 올 땐 내일 끓여 먹으라며 라면을 건네주셨다. 심지어는 마지막 날, 맛있는 음식 한 번 못 사준 게 미안하다며, 숙소에서 유료로 제공하는 온라인카지노를 한 끼 선물해 주셨다. 이게 어른의 정이구나 느꼈다.
이렇듯 여행을 하며, 세월을 지낸 사람에게서 안정감을 느낀다는 걸 알게됐다. 그들이 보낸 세월이 나에게 무슨 의미라고. 생면부지의 남에게서 편안함을 느끼는 게 희한할 정도였다. 하지만 사실 그 이유를 안다. 어르신이 사심 없는 호의를 건네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서로에게 필요한 게 전혀 없는 사람들이 다정한 말을 건넸던 것이다.
어릴 적 외할아버지가 내가 총총거리며 다가가던 순간에 모든 경계가 허물어지듯이 함박웃음을 지었던 기억이 있다. 내가 존재만으로도 소중하다고 느끼게 했던 그 기억 덕분에, 그 연배의 어르신이 나를 귀여워할 때면, 그 시절 꼬맹이로 돌아가는 기분이 드는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어르신 여행객에게서 안정감을 가진 가장 큰 이유는 '경험의 차이'를 느꼈기 때문이다. 그맘때 어르신들은 이미 크고 작은 문제를 지나쳐 왔기에 아무렇지 않게 문제를 다뤘다. '에이 뭐 별일 있겠어?'하는 말이, 안일하게 느껴지는 것이 아니라 겪어본 적이 있어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모습 말이다. 이런 모습을 보며 경험치가 많은 웃어른으로부터 안정감을 갖게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다시 정일영 교수님과 서인영의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이들이 대중적 인기를 끄는 이유는 무엇일까? 원하는 대로 사는 듯해 보이기 때문인 것 같다. 요즘 우리 슬롯에는 하지 말아야 할 행동들이 너무 많다.
선한 행동을 해서 칭찬받을 일이 있을 때, '우리도 앞으로 이렇게 하자. 우리 슬롯에 더 많은 선을 만들자!'라는 말은 하지 않는다. 반면, 누군가 나쁜 행동을 하는 모습이 비춰지면 '저렇게 하지 말아야 해!'하는 규제의 말이 오간다. 다시는 저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에서 하는 이야기다. 하지만 지금껏 축적되어온 많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 '하지 말아야 할 일 리스트'는 계속해서 갱신이 되고 있고, 이는 적어도 만 가지는 되는 것 같다.
이렇듯 우리 슬롯 안에서 상황에 대한 행동은 사실상 정형화되어 있다. 수학 공식처럼 말이다. 표준 인간을 선호하는 우리 슬롯의 풍류 상, 슬롯 다수가 정해놓은 태도를 그대로 따른다. 하지만 누군가가 정해놓은 그대로 삶을 살다 보면, 나도 모르게 지치게 된다. 타인의 기대와 기준에 맞추느라 행동에 제약이 걸리기 때문이다.
그런 삶을 살다 보면, 마음을 뻥- 뚫어주는 사람에게 시선이 가는 게 당연하다. 웹툰이나 웹소설만 봐도 '사이다, 고구마' 같은 말들이 일상어로 댓글에 쏟아진다. 대중들은 은연중에 내가 그리는 자유로운 삶을 행동으로 해내어 줄 대상을 찾는 것이다. 그것이 글이 됐든, 만화가 됐든, 사람이 됐든 말이다.
또 다른 포인트도 있다. 제멋대로 사는 누군가가 감화되는 장면이 포착된다. 인간은 자유롭게 살고 싶으면서도, 타인의 자유가 우리의 자유를 침범하길 원치 않는다. 그래서인지 '이걸 내가 왜 해야 해!'하며 소리치는 정일영 교수님이 금희쌤을 만나며 다름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순간이라던가. '난 이거 하기 싫어!'라고 외치는 서인영이 구독자를 위해서라면 스스럼없이 콘텐츠를 찍는 모습을 보고 애정을 느끼게 된다.
제멋대로 사는 것 같아 보이는 두 사람이, 우리 슬롯의 규범 안에 놓인 모습을 보며 흐뭇해한다. 노력하는 모습을 보면서, 이들이 사랑받으며 과거의 아픔을 치유하길 바라는 것 같다. 그렇게 행복한 시간을 보냈으면 하고 바라게 되는 것 같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느낀다.
그들을 보며 직접 만들어낸 콘텐츠에 대해서도 생각해 본다. 이전의 나는 글을 쓸 때도, 영상을 만들 때도 '남들의 시선'에 따라 골몰했던 것 같다. 대중은 '꾸미지 않은 모습'을 보고 싶어 한다. 하지만 그 솔직한 모습이라는 것도 누군가가 원하는 부분에 대한 솔직함이다. 조건값이 있는 솔직함인 것이다.
스스로 만들어낸 글과 영상을 비교해 봤다. 나는 내 글과 영상에 갭이 있다고 느낀다. 영상을 찍을 때의 나는, 영상을 보는 누군가를 '미지의 개인'으로 대한다. 사람 대 사람으로 대하다 보니, 처음 보는 사람을 대할 때의 모습이 계속해서 나온다. 누군가에게 일상적으로 할 수 있을 만한 이야기만 계속해서 꺼내게 되는 것이다. 스몰톡이라고 부를만한 것들만 말을 하게 된다. 그래서 깊이 있는 생각을 담기에는 아직 어렵게만 느껴진다.
반면 글을 쓸 때는 한결 더 솔직하다. 생각을 나열하고 질문을 던진다. 말로는 좀처럼 할 수 없는 이야기들도 스스럼없이 써 내려갈 수 있다. 그 이유를 생각해 본다. 글을 읽을 땐 여백이 생기기 때문인 것 같다. 100명의 사람이 한 개의 글을 읽더라도, 각자 다른 생각을 갖게 된다. 각자 집중해서 읽은 부분이 다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이 여백이 참 좋다. 100%를 건넸을 때, 글에서 60%를 얻게 됐다면, 남은 40%는 본인의 생각으로 채울 수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내가 영상과 글에 담는 것이 상당히 다르다. 그 간극이 커서 괴리감을 갖는 것 같다고 느낄 때가 있다. 이 간극이 '솔직함'을 줄어들게 하는 것 같기도 하다. 가장 크게 아쉬움을 느끼는 지점은, 이러한 차이로 인해 내 콘텐츠를 보는 사람들이 내가 어떤 사람인지 뚜렷하게 보이지가 않고, 그래서 매력적으로 느끼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 때이다.
여행을 시작할 무렵, "여행 유튜브 할 거야?" 하는 질문을 정말 많이 들었다. 뉘앙스가 전혀 이상할 게 없는 말이었는데 그 말이 좀 따갑게 들렸다. '너도 남들처럼 놀기만 하면서 돈을 벌고 싶니?', '여행 유튜브 하는 사람 널렸어', '돌아오면 뭐 할 건데, 허무한 결말을 맞이하고 싶니?' 하는 질문이 들리는 듯했다.
당시에는 당차게 '어, 나 유튜브도 할 거야!'라고 답은 했지만, 속으로는 씁쓸한 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평생소원인 세계 일주를 하며 추억을 기록하는 일이, 누군가에게는 그저 돈벌이 수단으로만 치환되는 일이겠구나 싶어서. 그들의 머릿속에는 빈털터리가 되어 돌아온 내가 있는 것만 같아서.
내포된 말에 반감이 들었지만, 소중한 사람들에게까지 그런 모습으로 남는 건 싫었다. 그래서 나를 응원해 주는 친한 사람들에게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내가 왜 여행을 결심하게 됐는지, 난 여행에서 무엇을 얻고 싶은지. 한 땀 한 땀 긴 시간을 들여가며 말이다.
하지만 어쩌면 날이 가득 선 그 말은, 내면에서 들리는 목소리였는지도 모른다. '여행을 하며 돈을 벌 수도 있지 않을까?'하는 기대감이 있던 게 사실이다. 하루에 10시간도 넘게 한자리에 앉아 영상 편집을 하던 날에는, 많은 관심과 더불어 돈을 벌고 싶던 게 사실이었으니까. 그게 내 여행을 인정받는 길이 되는 것 같았으니까.
그러면서도 초라한 성적표를 받아드는 날에는 괜한 심술을 부렸다. '흥, 나는 기록을 위한 촬영을 하는 것이지,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여행을 하는 게 아냐!'하며 말이다. 솔직한 모습을 보이지 못했던 과거의 나는, 내가 가진 기대와 실망을 쉽사리 영상에 담아내질 못했다.
하지만 글을 쓸 땐 사뭇 달랐다. 글을 쓰는 순간의 나는 결과에 상관없이 참 자유로웠다. 말 못 할 고민도 아주 쉽게 꺼내어 놓았다. 완성된 글은 만족스러웠지만, 그렇지 않은 글도 썩 쓸모 있어 보였다. 그래서 혼자만 끄적이던 글을 하나 둘 꺼내어놓기 시작했다.
홀로 생각하던 것들을 나누다 보면, 생각의 물꼬를 이해해 주는 사람이 나타날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나를 이유 없이 응원해 주는 사람이 늘어나길 괜히 기대하면서 말이다. 서툰 사람이라도 솔직하면 받아들여주는 세상인 것 같아서.
그래서 나는 계속 쓴다. 글이라는 수단이 나를 조금 더 솔직하게 드러낼 수 있다면, 글이 내게 맞는 방법인 것 아닐까? 하면서. 있는 그대로의 내가 받아들여지길 바라는 마음이, 평생을 쓰는 사람으로 살아가고 싶다는 바람을 만들어낸다. 그래서 오늘의 나는 생각하고 또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