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안전한 집에 있지 않아?

혼자 온 여자 4

by하누

한국에 돌아온 뒤로도 나는 가끔 그 일들을 생각했다.


내가 뭘 잘못했을까? 아직 잘 모르는 남자의 스노클링 가이드를 덥석 받아들인 게 문제였나? 콜택시를 너무 자주 부른 게? 아니면 애초에, 여자 혼자 아메드 같은 시골 마을에 간 것부터가?


잘못을 찾자면 끝이 없다. 게다가, 그 잘못이라는 것들은 하나같이 이상했다. 스노클링을 좋아한 것. 바다에 간 것. 혼자 여행한 것. 그건 잘못이 아니라, 그냥 내가 하고 싶었던 일들이었다.


내가 겪은 일들을 세어보자. 자전거로 위협해온 백인 남자가 둘. 스쿠터 뒷좌석에서 고백해온 남자가 하나. 그리고 꼬망. 국적도, 인종도, 언어도 달랐다.


같은 건 하나뿐이었다. 나는 혼자였고, 여자였다.


사건이 하나라면 우연일 수 있다. 두 번이라면 불운일 수 있다. 하지만 세 번부터는 통계이며 구조가 된다.


리베카 솔닛은 저서 『걷기의 인문학(Wanderlust: A History of Walking, 2001)』에서 이렇게 썼다.


“여자들은 공공장소에 있는 동안 사적인 부분(private parts)을 침해당하는 일이 놀라울 정도로 자주 발생한다. (중략) 성에 관한 관습을 깨뜨린 여자를 묘사하는 방황한다(stroll, roam, wander, stray)는 표현은 여자의 여행에 성적인 면이 있을 수밖에 없음을, 또는 여자가 여행을 떠날 때 여자의 섹슈얼리티는 관습을 위반할 수밖에 없음을 암시한다.”


그러고 보면 스쿠터의 남자도, 꼬망도 같은 단어를 썼다. 사랑한다고. 나는 그들과 친해질 수 있어 즐거웠다. 스몰토크를 나눴고, 발리 이름도 얻었다. 하지만 내가 주고받으려 한 것은 어디까지나 인간적 교류였지 성(性)이 아니었는데, 혼자 온 여자의 교류는 그것만으로도 동의 신호가 되는 모양이었다.


그들이 반한 것은 내가 아니었을 것이다. 얼굴 네 번 본 여자, 2주 동안 선베드 값이나 흥정하던 사이에 반할 이유가 없다. 그들이 본 것은 나라는 사람이 아니라 ‘혼자 온 여자’였을 것이다.


주변 사람들과 여행에 대한 대화를 나누다 보면, ‘혼자 온 여자’가 될까 두려워하고 조심하는 사람은 나뿐만이 아니었다.


“OO에 가고 싶은데, 여자 혼자 가기 무서워.”

“OO에 여자 혼자 어떻게 가.”

“여자 혼자 동남아로 여행을 간다고? 위험하지 않아?”


‘혼자 온 여자’, ‘사적인 부분을 침해해도 될 만한 여자’, ‘관습을 위반한 여자’가 되는 일은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두려운 일이었고, 또 걱정할 만한 일이었다.


이런 생각은 요즘만의 것이 아니다. 1952년, 열아홉 살의 실비아 플라스는 자신의 일기장에 이렇게 썼다.


“여자로 태어났다는 건 내 끔찍한 비극이다. 길에서 일하는 사람들, 선원들과 병사들, 술집 단골들과 어울리고 싶은 마음이 간절한데, 풍경의 일부가 되고 싶은데, 익명의 존재가 되고 싶은데, 경청하고 싶은데, 기록하고 싶은데, 다 망했다. 내가 어린 여자라서. 수컷으로부터 습격당하거나 구타당할 가능성이 있는 암컷이라서. 남자들이 어떤 존재인지, 남자들이 어떻게 사는지 궁금한데, 그렇게 궁금해하면 유혹한다고 오해받는다. 모든 사람과 최대한 깊은 대화를 나눌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노천에서 자도 되면 얼마나 좋을까. 서부로 여행을 가도 되면 얼마나 좋을까. 밤에 마음껏 걸어 다녀도 되면 얼마나 좋을까.” (Carol Brooks Gardner, Passing By: Gender and Public Harassment. 『걷기의 인문학』에서 재인용)


여행지의 여성은 같은 장소의 남성은 거의 걱정하지 않는 종류의 위험부담을 지기 십상이다. 여성 여행자들이 남성 여행자들보다 더 많은 층위의 조심을 하는 모습을 우리는 쉽게 볼 수 있다. 나만 해도, 문을 한 번 더 단속했고, 내 활동 영역을 제한했다(‘숙소 근처에서만 있을까’).


그런데 난, 왜 자꾸만 여행을 할까? 태국에서, 길리T에서, 아메드에서 겪은 일들만 따지더라도 불쾌를 넘어 눈앞이 아찔해지는 순간들이 있다. 익숙한 땅을 떠났다는 이유만으로 다정했던 세상은 돌변해서 나를 향해 이를 드러낸다. 세상은 내게 이렇게 말하는 것만 같다.


“이렇게까지 하는데, 자꾸 여행할 거야?”

“왜 안전한 집에 있지 않아?”

“왜 아무도 시키지 않았는데도 집을 나서서, 스스로를 위험에 빠뜨려?”


그 질문에 대해서 나는 오래 생각했다.


나는 스스로를 학대하고, 위험에 빠뜨리고 있는가?


이토록 위험한 여행을 계속하는 것은 나 자신을 소중히 여기지 않는 걸까?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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