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나를 소중히 여기는 방법

혼자 온 여자 5 完

by하누

발리도, 길리T도 가기 전의 일이다. 생업으로 로맨스 판타지를 쓰는 나는 장르의 배경이 되는 고전 유럽풍 자료를 수집하는 것을 좋아했다. 같은 로맨스 판타지 작가인 친구가 내게 짧은 유튜브 동영상을 추천해주었다.


귀여운 그림과 유머러스한 톤으로 진행되는 그 동영상은 19세기 영국의 무도회 문화에 대해 담고 있었다. 당시의 무도회는 그냥 놀이가 아니었다. 혼인 적령기에 든 여자의 혼처를 구하기 위한 취업 면접장이었다. 결혼하기 위해서는 중산층의 1~2년 치 연봉을 태워 무도회를 열어야 했지만 여자는 먼저 남자에게 춤을 신청할 수도 없었고, 세 시즌 안에 청혼받지 못하면 사교계에서 퇴출이었다. 영상 속의 여자들은 인생의 패배자가 되지 않기 위해 필사적이었다. 아름답게 꾸미고, 큰돈을 쓰고, 근사한 남자의 청혼을 기다리면서.


깔깔 웃으면서 볼 수 있게 잘 만들어진 동영상인데도 나는 숨이 턱 막혔다.


‘내가 저 시대에 태어났다면, 난 미쳐버렸거나 죽었을지도 몰라.’


결코 겪어본 적 없는 상황이었는데도 왠지 그런 확신이 들었다.


난 왜 그런 생각이 들었을까? 그때는 잘 몰랐지만, 지금은 안다. 내가 정말로 사랑하는 어떤 것. 내 인생에서 가장 소중히 여겨 단 한 번도 놓은 적이 없는 것이, 그 시대의 여자들에게는 허락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무도회의 규칙을 한 단어로 줄이면 ‘기다림’이다. 춤 신청을 기다리고, 청혼을 기다리고, 선택받기를 기다린다. 자신의 인생인데 자신은 고를 수 없다.


나는 도무지 그렇게 살 수가 없다. 사범대를 그만둘 때도,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는 직업을 고를 때도, 혼자 비행기표를 끊을 때도. 그중에는 잘한 선택도 있었고 후회한 선택도 있었지만, 전부 내 선택이었다. 그러니 내가 사랑하는 것은 자유, 선택할 자유다.


내가 웹소설이라는 일을 선택한 것도 그래서였다. 작품이란 혼자 쓰고 혼자 결정하는 것이다. 그 결과가 잘 되어도 안 되어도 내 것이라는 것이 나는 좋았다.


생각해보면, 혼자 하는 여행이라는 것은 ‘자유’라는 가치의 결정체나 마찬가지다. 혼자 여행 중에 우리는 모든 것을 스스로 결정한다. 어떤 관광지에 갈지, 비행기를 탈지 버스를 탈지 같은 중대한 선택은 물론이고, 점심으로 뭘 먹고, 얼마나 휴식을 취하며, 어떤 기록을 남길지와 같은 사소한 것조차도. 전부 자신이 선택하고 스스로 행동하며, 그 바카라임은 직접 진다. 난 그것이 좋았다. 자유로운 존재가 된 것 같았다. 살아있는 것만 같았다.


그리고, 이런 나보다도 훨씬 더 자유를 사랑했던 한 여자가 있다. 데블라 머피(Dervla Murphy)다.


1931년에 아일랜드에서 태어난 머피는 열 살 때 생일 선물로 중고 자전거와 중고 지도바카라을 받았다. 어린 머피는 생각했다.


‘언젠가는 이 자전거로 인도에 갈 거야.’


그러나 그 꿈은 쉽게 이루어지지 않았다. 열네 살 때부터, 류마티스 관절염을 앓는 어머니를 위해 학교까지 그만두고 간병에 전념해야 했던 것이다. 헌신적인 간병은 16년이나 지속되었고, 어머니의 사망으로 끝났다.

모친이 세상을 떠난 다음 해 겨울, 머피는 열 살 때의 결심을 실현했다. 자전거 한 대와 권총 한 자루에 의지해 혼자서 인도로 향한 것이다! 머피 서른한 살 때의 일이었다.


당연히도 여행은 지독히도 험난했다. 1963년의 겨울은 120년 만의 혹한이 유럽을 덮친 겨울로 알려져 있다. 구 유고슬라비아에서는 늑대 무리의 습격을 받았지만, 권총으로 놈들을 물리쳤다. 이란의 경찰서에서는 강간을 당할 뻔했지만, '차마 밝힐 수 없는 방법(unprintable tactics)'을 써서 간신히 위기에서 벗어났다. 아프가니스탄에서는 버스를 타고 가던 중 얻어맞고 갈비뼈 세 대가 부러졌다.


그렇게 여행을 시작한 지 6개월 만인 1963년 7월 18일, 머피는 마침내 인도 델리에 도착했다.


머피에 대해 알게 된 나는 기묘한 느낌이 들었다. 내가 한때 공감했던, ‘여자이기에 여행을 하고 싶어도 못 간다’라고 썼던 실비아 플라스와 데블라 머피는 각각 1932년생과 1931년생으로 거의 동갑이었다. 오랜 우울증을 앓던 플라스가 비극적으로 세상을 떠난 1963년의 겨울, 머피는 인도를 향해 출발했다.


나와 머피, 플라스는 모두 같은 욕망을 가지고 있다. ‘서부로 여행을 가도 되면 얼마나 좋을까. 밤에 마음껏 걸어 다녀도 되면 얼마나 좋을까.’ 플라스가 일기에 쓴 문장이다.


플라스가 두려워한 위험은 실재한다. 나는 그것을 내 몸으로 직접 겪었다. 아직도 떠오른다. 여행 중 겪었던 위협의 순간들. 태국의 툭툭 기사가 내 발목을 만졌을 때. 꼬망이 몸을 더듬었을 때의 감각이 살갗 위로 생생하다. 문단속을 확인하러 다가갈 때의 불쾌한 떨림을 여전히 기억한다. 공포에는 근거가 있다. 여자 혼자 여행하는 일은 틀림없이 위험한 일이다.


하지만 동시에 생생히 떠오르는 순간들이 있다. 바다에서 시선을 조금 내리는 것만으로도 달라지는 알록달록 색색깔의 풍경. 스쿠터 뒷좌석에서 느끼는, 내 머리카락을 흩뜨리는 바람. 위험하고 심술궂은 사람보다 훨씬 더 많은, 다정한 사람들. 낯선 풍경 속에 홀로 있음을 실감할 때 깨닫는, 진정한 자유의 순간.


위험한 일들을 겪었지만 여전히 내게 ‘여행’이라는 말에는 그런 기억들이 두려움보다, 불안감보다 앞선다.


그 모든 험난한 일들을 겪고 델리에 도착한 머피도 그런 기분을 느꼈을 거라고, 그것이 그가 모든 위험을 무릅쓰고 여행을 떠난 이유일 거라고, 난 감히 그렇게 믿는다.


나는 플라스에게 공감하고 그가 느꼈던 위험이 실재함을 알지만, 그럼에도 나는 머피처럼 살 것이다.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티 브랜드 사장의 말이 다르게 들린다.


“인도 여행하기 좋아요. 여자인 저도 매번 혼자 다녀옵니다.”


그는 매년 혼자 인도에 갔다. 머피가 자전거로 간, 내가 두려워서 끝내 가지 못한 그 나라에. 그 시절의 나는 그의 말을 입장이 다른 사람의 나이브한 말이라고 생각했지만, 그것은 사실 알면서도 위험을 무릅쓰는 사람의 말이었다. 진지하지 않았던 쪽은, 그의 십수 년을 한 줄로 흘려들은 나였는지도 모른다.


세상은 여자더러 말한다.


집에 얌전히 있으라고.


그것이 너 자신을 소중히 여기는 것이라고.


하지만 나는 위험을 이유로 내 세계의 크기를 줄이라는 명령을 듣지 않을 것이다.


나는 내 호기심과 모험 욕구를 굶주리게 하지 않을 것이다.


이것이 내가 나를 소중히 여기는 방법이다.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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