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 길라잡이

A. 선을 그어 나가는 마음 #07

by우드노트
앞으로 교육에서 주목받게 될 분야는 무엇일까요?


자녀계획도 없고 의무교육과정에서도 이미 10년 가까이 멀어져 교육 제도에 관해서는 크게 할 이야기가 없으니, 성인 이후의 교육에 관한 단문.


무언가를 지속적으로 배우거나 시도하지 않으면 개성도 능력도 없는 인간으로 도태될 것이라는 것을 누군가의 잔소리를 들어서가 아니라 시대의 변화를 살갗으로 느끼며 깨닫게 되는 시대다. '디지털'이라는 단어조차 촌스럽게 느껴질 정도로 기술 발전이 빠르다는 것은 이제 말할 필요도 없다. 코로나라는 극악무도한 깡패가 수학 시간 이후 들어본 적도 없는 그리스 알파벳들을 마스크 앞에 들먹이며 변화를 요구하니 하늘빛이 노래진다. 가장 친한 친구 중 둘은 대학 교육에 실망해서, 쥐꼬리만한 연봉 인상에 실망해서 등의 이유로 국비 지원 직업교육 학원을 찾았다. 그곳에 번듯한 대학 나온 또래들이 포진하고 있다는 것으로 미루어 판단하건대 이 나라의 성인 이후 교육은 그들의 가려운 곳을 제대로 긁어주고 있지 않다.


대학 시절 '건축과 컴퓨터'라는 수업을 제외하고는 그 어떤 수업에서도 건축 관련 결과물을 제작하기 위한 컴퓨터 툴을 배운 적이 없었다. 그 외의 모든 정보와 기능은 동기들에게 서로 물어보거나 구글/유튜브를 통해서 등 알음알음으로 배운 것이다. 그렇다고 교수들이 컴퓨터 작업에 대한 요구를 하지 않았느냐 하면 그것은 아니며, 그들이 그것을 다룰 줄 알면서 시켰느냐 하면 겨우 그게 구현 가능한지 정도 만을 이해하고 있는 수준이었다. 그러니 우리는 대학을 통해서 직업적인 기술을 배웠다고 하기에는 너무 뒤처진 것을 배웠다. 대학이 직업학교로 바뀌어 가고 있다는 비판의 명성과는 달리, 대학은 시대의 직업이 요구하는 기능을 가르치는 데조차 뒤처져 있다.


지금까지도 새로운 기술은 계속 나오고 있고, 이 직종은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고서는 살아남기 어려운 곳이다. 요즘은 내가 배울 수 있는 능력이 지금 초등학생들도 배울 수 있는 능력 정도인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요새는 바카라, 학원 등 그 어떤 루트로 배우는 것보다도 유튜브가 더 정보를 빠르게 얻는 데에 탁월한 매체로 자리매김했다. 누구나 어떤 것이든 배울 수 있는 시대이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을 배울지 선택할 길라잡이다. 배움은 각자의 몫이지만, 그 배움을 위한 출발점에서의 방향이라도 제시할 수 있는 교육자여야 교육의 터전에 필요한 사람이 되는 시대가 아닐까.







무엇을이 아닌 누구를 배울 것인가


위의 글을 적던 5년 전에 나는 대학이나 제도권 교육이 시대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다는 사실에 이미 냉소적이었다. 학교에서 가르쳐주지 않는 최신 툴과 기술을 구글이나 유튜브에서 알음알음 배웠고, 그렇기에 미래의 교육이란 그 무수한 정보의 바다 속에서 어디로 가야 할지 출발점의 방향을 짚어주는 '길라잡이' 역할이면 족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세상의 시계는 생각보다 훨씬 더 빠르게 돌아갔다. 이제는 길라잡이라는 표현조차 다소 아득하게 느껴진다. 굳이 유튜브를 검색하며 독학의 고통을 견딜 필요도 없이, AI에게 몇 문장만 던지면 가장 효율적인 정답과 튜토리얼이 실시간으로 쏟아지는 시대가 되었으니까. 배움의 도구도, 방향을 잡아주는 기술도 이미 차고 넘친다. 그렇다면 모든 기술과 지식이 공기처럼 흔해진 지금, 교육이라는 폐허에는 무엇이 남아야 하는 걸까.


얼마 전 모임에서 사람들과 부모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다 문득 깊생을 하게 된 경험이 있다. 사람이란 생물학적으로나 심리학적으로 가만히 두면 저절로 퇴적되는 존재라는 사실이 꽤 충격을 주었다. 카를 융은 "무의식을 의식으로 만들지 않으면 무의식이 삶의 방향을 결정하게 되고, 우리는 그것을 운명이라고 부른다"고 했다. 부단히 부딪히고 스스로를 관조하지 않으면, 우리는 놀라울 정도로 내가 그토록 닮기 싫어했던 부모의 못난 모습이나 타인의 원치 않는 패턴을 그대로 복제하며 살아간다. 무의식의 인력을 거스르는 노력을 하지 않을 때, 인간은 익숙한 그림자들을 향해 꼴사납게 흘러가 버리는 것이다. 자연스럽게 방치했을 때 인간이 도달하는 곳이 결국 자신의 이상과 반하는 것이라니, 생각해 보면 인간이란 참 슬프도록 불완전한 존재다.


공부는 얼마든지 혼자 할 수 있지만, 이 불완전함 속에서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들여다보는 '생각의 발전'은 혼자서 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하나의 인간을 하나의 바카라이라고 한다면, 그 바카라을 읽고 이해하는 유일한 방법은 오직 타인과의 깊은 대화뿐이다. 나라는 바카라도 타인이라는 바카라도 마찬가지다. 회고라는 이름으로 모여앉은 이들은 서로 잘 알지 못하는 사이임에도, 아이러니하게도 각자가 현재 관심을 갖고 있는 분야에 대한 가장 최첨단의 고민과 질문을 망설임 없이 내어놓는다. "너는 지금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느냐"고 묻는 타인의 눈빛 앞에서 비로소 우리는 나 자신에게 진짜 질문을 던지게 된다.


그래서 나는 미래의 교육 공간을 생각할 때, 단상을 바라보고 일렬로 늘어선 네모난 교실을 떠올리지 않는다. 오히려 고전주의 시대의 빛이 깊게 들어오는 도서관이나 라운지 같은 풍경을 떠올린다. 빽빽한 종이바카라 대신 시각화된 정보와 데이터가 부유하고, 사람들은 자유롭게 머물며 서로를 마주 보고 앉을 수 있는 공간. 일방적인 지식 전달이 아니라 선문답 같은 대화가 오가며 무의식에 잠겨 있던 질문들이 툭툭 터져 나오는 곳.


무엇을 더 배울지 헐떡이며 찾아 헤매는 시대는 끝났다. 앞으로 주목받게 될 교육은 기술을 가르치는 학원이 아니라, 타인이라는 거울을 통해 스스로를 관조하고 질문하게 만드는 '회고의 공간'이 아닐까. 내가 나라는 굴레에서 벗어나 다른 방식으로 살아볼 가능성을 찾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계속해서 마주 앉아 서로라는 바카라을 읽어 내려가야 하는 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