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쓰면 테라피가 되는 이유

펜 한 자루면 충분하다.

by노브

글쓰기는 나를 스스로 테라피하는 과정이다.




심리 치료방법 중에 표현적 글쓰기, 내러티브 테라피 즉, 서사치료라는 방법이 있다. 치료방법을 설명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만큼 글쓰기는 테라피의 일환으로 사용되고 있다는 얘기를 하고 싶다. 왜 글을 쓰면 테라피 효과가 있는 걸까. 나는 상담을 하면 대부분의 경우 일상을 기록하는 것을 추천한다. 단순히 하루 있었던 일을 적는 것이 아니라, 자기 성찰 및 감정을 들여다보고 기록하는 것이다. 글을 쓰는 것이 마음을 다루는 도구가 되기 때문이다.


먼저, 글은 생각을 붙잡고 정리하고 비워준다. 생각은 머릿속에서 계속 같은 자리를 맴돈다. 그 생각을 잊지 않기 위해서다. 그런데 그걸 글로 옮기는 순간, 생각은 손 밖으로 나와 종이 위에 자리를 잡게 되면서 놓아주게 된다. 그렇게 글쓰기는 생각을 종이에 붙잡는 역할을 해서 심리적인 안정을 주게 된다. 생각 외에도 감정, 추억 그 모든 것을 글로 붙잡아 둘수록 더욱 효과는 커질 수 있다. 그렇게 글들이 모아지고 쌓여갈수록 내가 완성되어 간다.


그렇게 글을 한차례 후루룩 쓰면서 생각을 잡아서 비워내다 보면 어느 순간 머릿속이 텅 빈 느낌이 들곤 한다.


아, 다 걷어냈다. 다 비워냈다. 시원하다. 글로 다 적고 나면 더 이상 머릿속이 번잡하지도 않고 복잡하지도 않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렇게 비워 놓으면 얼마가지 않아서 다른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냉장고 바닥 저 끝에 묻혀 있던 내 아이스크림을 찾아내는 것처럼 '어? 여기 또 있었네!' 하고. 위의 것을 걷어 내야 아래 것이 보이게 되는가 보다. 바닥에 가려져 있던 새로운 생각을 찾아냈을 때는 다시금 활력을 느끼게 된다. 이렇듯 머릿속에서 붙잡고만 있던 것을 정리하고 비우는 것, 그 자체가 이미 치료의 시작인 셈이다.


글쓰기를 통해서 감정에 이름을 붙이게 되면, 그 감정과 거리를 두고 바라볼 수 있게 도움을 준다. 글을 쓰면서 사람은 참 솔직해진다. 나의 부정적인 감정을 쏟아 넣을 때도 있고 이기적인 내 고집을 써내려 가다가 결국은 솔직한 나를 만나게 된다. 나의 감정에 솔직해지고 나의 상처에 솔직해진다. 그 솔직함을 다 글로 쓸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한다 해도 그런 용기를 키워나갈 수 있게 된다. 나는 그런 과정이 나를 성장시킨다고 생각한다.


그 예를 들자면, "그냥 답답하다"와 "인정받지 못했다는 생각에 서운했다"는 완전히 다른 느낌을 준다. 감정에 정확한 이름을 붙이는 순간, 그 감정은 조금 더 다룰 수 있는 크기로 바뀌게 된다. 그리고 일단 글로 나온 감정은 더 이상 나 자신이 아니라, 내가 들여다볼 수 있는 제삼자의 입장에서 객관적인 대상이 된다. 이것은 상담에서 내담자와 문제를 분리해서 바라보게 하는 것과 같은 원리다. 그렇게 글을 쓰는 과정에서 감정에 휩쓸리는 사람에서 그 감정을 바라보는 사람이 되어 자기 성찰의 도구로 쓰이게 된다.


글을 꾸준히 쓰다 보면, 글 속에 반복되는 패턴이 보이기 시작하고 어느 순간 낯익은 장면이 자꾸 반복되는 걸 알아차리게 된다. '나는 항상 이런 상황에서 이렇게 반응하는구나' 하는 발견이다. 상담에서도 여러 회기를 거치며 스스로 자기 패턴을 알아차리는 순간이 하나의 중요한 전환점이 되기도 하는 것과 같다. 글쓰기는 혼자서도 그 여러 회기를 조용히 거치게 해주는 셈이다. 이런 알아차림의 순간이 올 때 사람은 보통 깨달음의 기쁨과 함께 성숙해졌다는 뿌듯함을 느낄 수 있다.


이런 알아차림 다음엔 이야기를 새롭게 쓸 수 있게 된다. 같은 사건도 어떤 문장에 담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이야기가 된다. 예를 들어 "나는 그때 버림받았다"로 생각했던 것을, "나는 그때 혼자 서는 법을 배웠다"로 쓸 수도 있다. 이야기치료에서는 이걸 '다시 쓰기'라고 부른다. 사건 자체는 바꿀 수 없어도, 그 사건에 붙이는 의미는 얼마든지 다시 쓸 수 있다. 그 순간, 나는 비로소 내 삶의 저자가 되고 주도권을 갖게 된다.


그래서 나는 말하고 싶다. 글쓰기는 테라피라고. 앞에서 말한 이 모든 과정이, 사실 상담실 안에서 일어나는 일과 거의 흡사하기 때문이다. 다만 글을 쓸 때는 상담사도, 예약도 필요 없고, 그냥 펜 한 자루면,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