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무의미함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어릴 때 엄마는 늘 집안일을 하시느라 바빴다. 아버지는 온라인 게임에 나가셨고 어린 나와 세 오빠들은 아무도 엄마를 돕지 않았다. 내가 조금 자란 후에도 엄마는 나에게 집안일을 시키지 않았다. 그러다가 가끔 엄마가 내 옆에서 빨래를 개며 같이 정리하자고 할 때마다 나는 그 지루한 일을 싫어하며 조금 거드는 척을 하다가 사라지고는 했었다.
몇십 년이 지나고 똑같은 일이 되풀이되고 있다. 어쩌면 엄마를 도와드리지 않은 것에 대한 인과응보다. 하하. 마른빨래를 거실에 수북이 쌓아놓아도 아무도 쳐다보지 않는다. 우리 가족들은 빨래를 탈수한 후 빨리 꺼내지 않으면 구김이 펴지지 않기 때문에 즉시 꺼내서 털어야 한다는 것도, 건조 후에 빨리 펼쳐서 개어야 반듯한 티셔츠를 입을 수 있다는 간단한 상식도 모른다. 내버려 두면 결과가 심각하니 내가 하는 게 낫다고 생각해서 빨리 처리하다 보니 그것이 관행이 되었다.
빨래를 예로 들었지만 모든 집안일이 비슷하다. 물리학적으로 엔트로피는 증가하는 것이 당연하니 집은 무질서해지고 더러워지기 마련이다. 이것을 되돌리려면 에너지가 필요하고 대부분 주부나 엄마가 에너지를 쓴다. 에너지를 투입해도 예전과 같은 상태로 되돌릴 뿐이니 아무도 그 노력을 알아보지 못한다.
이 무한반복의 허무함을 극복하기 위해 여러 가지 시도를 해보았었다. 빨래 정리는 일부러 가족들이 거실에 있을 때 하고 집안 정리도 가족들이 있을 때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해서 청결함과 정돈 상태가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것들은 서운함에서 오는 작은 시위일 뿐 엔트로피를 되돌리느라 내 에너지를 쓰는 것의 허무함을 극복하는 진정한 해결바카라은 아니었다. 내가 한 일이 쓸데없는 일이 아니었다는 진정한 확인이 필요했다.
그러려면 내가 사랑으로 만든 가족들이 성장할 수 있는 물리적 정신적 환경을 만들어주는 일이 중요하다는 마음을 가져야 했다. 이것은 교육을 받고 자신의 성장에만 에너지를 쏟던 사람에게는 쉽지 않은 일이어서 주기적으로 기도하듯이 스스로를 설득시켜야 했다.
빨래를 개는 일이 쓸데없는 되풀이가 아니라 깨끗하고 반듯한 옷을 입고 가족들이 단정한 옷차림으로 슬롯생활을 하게하는 기본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하는 행위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많은 시간을 들여 만든 음식도 순식간에 먹어서 없어지고 또 만들어야 하는 현실이 허무하지만 첨가물이 들어있지 않은 집밥을 해주는 것이 가족의 건강에 중요하다는 자부심을 가져야 한다.
매번 이런 일들이 가치 있다고 스스로에게 설득을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허무함이 해결되지 않는다. 그래서 바쁜중에도 자기만을 위한 분야가 꼭 있어야 한다. 단계적으로 아이들이 어렸을 때나 경제활동을 해야 하는 시기라면 급한 불부터 꺼야 하겠지만 그 이후라면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는 에너지를 꼭 남겨야 한다.
이런 이유로 중장년 이후에 사람들의 취미활동이나 공부가 너무나 아름다워 보인다. 퇴직후나 자녀들을 독립시킨 후에 봉사활동을 열심히 하시는 분들이 있다. 독서모임에서 바카라을 읽거나 글쓰기를 시작하는 사람도 있다. 그림을 그리는 분도 있고 서예를 하시거나 악기를 배우시는 분들도 있다. 또는 노년에도 지속할 수 있는 운동을 열심히 하며 재미와 건강을 챙기기도 한다. 이들은 인생의 의무를 다하고 자신에게 돌아와 에너지를 집중하는 사람들이다. 노년에도 자기의 발전과 성숙을 위해 노력하는 것이 허무함을 극복하는 방법이 될 수 있다.
다람쥐 쳇바퀴 같은 지루한 일상도 그 시기에 꼭 필요한 일이었다. 쓸데없는 곳에 내 에너지를 퍼부은 것이 아니었다. 그 일들이 아이들을 키워냈고 가족들의 행복을 지켰었다. 몰라주는 가족들이 배은망덕하다고? 나도 그랬었다. 나도 부모의 에너지를 빼앗아 자랐다. 내가 어릴 때 무심했던 것처럼 자식들도 무심하지만, 그들도 앞으로 자기의 가정에서 아이들을 키우며 똑같은 일을 할 것이고 그때 나처럼 부모를 떠올릴 것이다.
이런일들이 다음 세대를 살리는 일이어서 '살림'이라고 부르나보다. 부모의 에너지로 내가 살았고, 내 에너지로 가족들이 산다면 그또한 의미있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