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홍빛 투항(投降)
박순동
기어이 올 것이 왔습니다
숨죽여 외면하던 내 빈 가슴으로
터질 듯 부풀어 오른 분홍빛 함성들
겹겹이 쌓인 꽃잎은
그대가 내게 던지는 달콤한 그물인가요
가늘게 떨리는 수만 개의 꽃술은
나를 부르는 간절한 손짓인가요
그 유혹이 너무도 선명하여
나는 더 이상 눈을 감을 수 없습니다
봉오리마다 맺힌 그 뜨거운 설렘이
내 혈관을 타고 붉게 흘러듭니다
차마 보지 못해 뒤돌아섰던 그 마음이
이제는 꽃잎 아래 무릎을 꿇습니다
지고 나서 후회할 그리움 따위는
저 흐드러진 웃음 뒤로 감추어 둡니다
자, 이제 마음껏 피어나세요
나도 그대의 붉은 물결 속에
기꺼이 함께 침몰하렵니다
이 봄이 다 가도록
나는 그대의 가장 화사한 포로가 되어
이 지독한 설렘을 끝까지 앓겠습니다.
26 .4 .8. 순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