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마귀는 기억한다.
2006년, 미국 시애틀의 워싱턴 대학 캠퍼스. 생물학자 존 마즐러프는 이상한 가면을 쓰고 있었다. 원시인 얼굴을 한 고무 가면이었다. 그는 그 가면을 쓴 채 캠퍼스의 까마귀 몇 마리를 그물로 붙잡아 다리에 표식을 달고 풀어 주었다. 까마귀들은 다치지 않았다. 그러나 잊지 않았다.
그 뒤로 누구든 그 가면을 쓰고 캠퍼스를 걸으면 까마귀들이 몰려와 머리 위를 맴돌며 날카롭게 울어 댔다. 쫓아오며 위협했다. 같은 사람이 다른 가면을 쓰면 아무 일도 없었다. 까마귀들은 사람이 아니라 얼굴을 기억하고 있었다. 더 놀라운 일은 몇 년 뒤에 벌어진다. 그물에 붙잡힌 적이 없는 까마귀들, 심지어 그 사건 뒤에 태어난 어린 까마귀들까지 가면을 보면 소리를 질렀다. 까마귀들은 원한을 서로에게 가르치고, 다음 세대에 물려주고 있었다. 이 반응은 10년이 넘도록 사라지지 않았다.
까마귀의 뇌는 호두 한 알만 하다. 그러나 2016년의 한 연구에 따르면, 까마귀는 그 작은 뇌에 원숭이 못지않은 수의 신경세포를 빽빽하게 채워 넣고 있다. 뉴칼레도니아까마귀는 철사를 구부려 갈고리를 만들고, 그것으로 좁은 통 속의 먹이를 꺼낸다. 일본 센다이의 까마귀들은 단단한 호두를 횡단보도에 떨어뜨려 놓고 기다린다. 신호가 바뀌어 자동차가 호두를 밟고 지나가면, 다시 신호가 바뀌기를 기다렸다가 사람들과 함께 길을 건너 깨진 호두를 주워 먹는다.
까마귀는 죽음도 안다. 미국의 연구자 케일리 스위프트는 까마귀들이 죽은 동료 곁에 모여드는 모습을 관찰했다. 까마귀들은 시끄럽게 울며 주위를 맴돌았다. 그리고 그 근처에 있던 사람을 위험한 존재로 기억해, 오랫동안 그곳을 피했다. 사람들은 이것을 〈까마귀의 장례식〉이라 부른다. 슬픔인지 배움인지는 아직 아무도 모른다.
까마귀의 기억은 원한만 담지 않는다.
시애틀에 사는 여덟 살 소녀 개비 만은 학교에 가는 길에 까마귀들에게 먹이를 나눠 주곤 했다. 몇 년 동안 날마다 마당의 모이통에 땅콩과 개 사료를 채웠다. 어느 날부터 모이통 옆에 작은 물건들이 놓이기 시작했다. 구슬, 단추, 반짝이는 귀걸이 한 짝, 레고 조각, 하트 모양의 구슬 장식. 까마귀들이 가져다 놓은 것이었다. 개비의 어머니가 공원에서 카메라 렌즈 뚜껑을 잃어버린 날, 그 뚜껑은 며칠 뒤 모이통 가장자리에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개비는 까마귀들이 준 선물을 작은 상자에 하나하나 모아 두었다.
동아시아에는 〈반포지효〉라는 말이 있다. 까마귀 새끼가 자라면 늙은 어미에게 먹이를 물어다 먹이며 은혜를 갚는다는 것이다. 과학적으로 정확한 이야기는 아니다. 다만 어떤 까마귀들은 다 자란 뒤에도 둥지를 떠나지 않고 남아 부모를 도와 동생들을 함께 키운다. 옛사람들은 그 모습을 보고 효도를 떠올렸을 것이다.
인간은 오래전부터 까마귀를 두 얼굴로 보았다. 서양에서 까마귀는 죽음과 불길함의 상징이었다. 그러나 북유럽 신화의 최고신 오딘의 어깨에는 두 마리의 까마귀가 앉아 있다. 그 이름은 〈생각〉과 〈기억〉이다. 고구려 무덤의 벽화에는 태양 속에 사는 세 발 달린 까마귀가 그려져 있고, 일본 신화에서는 세 발 까마귀가 길 잃은 첫 번째 천황을 인도한다. 인기 애니메이션 「귀멸의 칼날」에서도 사람의 말을 하는 까마귀들이 귀살대원들의 곁을 날며 임무를 전한다. 동아시아에서 까마귀는 오래전부터 길을 아는 새, 소식을 전하는 새였다.
똑똑한 동물은 많다. 개는 주인을 알아보고, 코끼리는 수십 년 전의 동료를 기억하며, 돌고래는 서로를 이름처럼 부른다. 그러나 낯선 사람의 얼굴 하나를 기억했다가 그 원한을 무리 전체에, 다음 세대에까지 전하는 새는 드물다. 그리고 같은 새가, 자신에게 먹이를 준 아이에게 반짝이는 선물을 물어다 준다.
복수와 은혜는 서로 반대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둘은 같은 능력에서 나온다. 잊지 않는 것.
어쩌면 인간이 오랫동안 까마귀를 불길하게 여긴 것은, 그 새가 우리를 너무 잘 기억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