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만 무료

내려놓지 못한 도구들

by은파랑

1949년 8월, 몬태나의 만 걸치 계곡에서
불길이 바람을 타고 산등성이를 넘어왔다.

열세 명 소방대원이 불을 등지고 달렸고
풀은 허리까지 자라 있었다.
불은 그보다 빠르게 다가왔다.

대장 와그너 닷지는 달리는 대신 멈추어
눈앞의 풀에 성냥을 그었다.
먼저 태운 자리에 몸을 누이려는 것

그리고 외쳤다.
"도구를 버려라, 이쪽으로 와라"

대원들은 그 말을 알아듣지 못했다
어깨의 배낭도, 손에 쥔 톱과 삽도
그들에게는 일할 몸의 일부였기 때문

도구를 쥔 채 달린 사람들은
산등성이를 몇 걸음 앞에 두고 쓰러졌다.

훗날 학자들은 이 장면을 오래 들여다보았다.
살아남는 일은 더 빨리 달리는 힘이 아니라
쥐고 있던 것을 놓는 용기에 달려 있었다.

1987년, 심리학자 다니엘 웨그너는
사람들에게 짧은 부탁을 했다.
"지금부터 흰곰을 생각하지 마세요."

사람들은 오 분 동안 흰곰을 떠올렸고
뒤에는 더 자주, 더 선명하게 떠올렸다.

밀어낸 생각은 사라지지 않고
마음 문턱 밖에 서서 서성였다.
그는 그것을 '역설적 되돌림'이라 불렀다.

그러니 우리를 무겁게 하는 것들은
대개 크고 요란한 것들이 아니다.

답하지 못한 안부 하나
끝내하지 못한 사과 하나
이미 식어 버린 기대와
아직 입에 물고 있는 서운함

주머니 속 작은 돌멩이들은
하나하나는 가벼워도
밤이 오면 모여 바다 밑 닻이 된다.

우리는 그것을 잊으려고 애쓴다.
애쓰는 동안 돌은 더 단단해진다.

잊으려는 마음이 곧 붙드는 손이라는 걸
흰곰은 알고 있었다.

그래서 무게를 덜어 내는 법은
지워 버리는 데 있지 않았다.

그것이 거기 있음을 인정하고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오래 바라본 뒤
조용히 땅에 내려놓는 일

닷지가 불길 한가운데서
스스로 태운 풀밭에 누웠을 때
그의 머리 위로 불은 파도처럼 지나갔고
그는 살아서 일어났다.

놓아 버린 자리에는
타고 남은 맨땅이 있었고
불은 더 태울 것이 없는 곳을
그대로 지나쳐 갔다.

오늘 밤, 나를 누르는 것들의 이름을
하나씩 불러 보자.

그리고 그것이 정말
내 어깨에 얹혀 있어야 할 짐인지
묻고 또 물어보자.

내려놓은 손은 비어 있는 것이 아니라
다음 바람을 맞이할 만큼
가벼워진 것이다.


은파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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