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도 맛도 이상해요.
나는 채소를 싫어한다.
그렇지만 건강을 챙겨야 하는 나이가 되니 별수 없이 싫어하던 채소도 먹으려고 노력 중이다.
그중에서도 항산화 성분이 많다는 보랏빛 채소들에 관심이 많아졌는데, 적양배추나 블루베리까지는 조금씩 입에 들이는 데 성공했다.
달큰한 맛이 끔찍한 적양배추는 시판하는 참깨 드레싱에 버무리면 꿀떡 삼켜낼 만했고, 마트에서 사 올 때마다 남겨서 버렸던 블루베리도 키워서 먹으니 맛 좋은 주전부리쯤으로 인식하게 되었다.
그런데 어째서인지 보랏빛을 띠는 항산화 성분 가득한 채소중, 가장 커다랗고 흔한 '가지' 만큼은 가지가지 방법으로 조리를 해 보아도 삼켜내는데 무리였다.
굽고, 찌고, 튀기고..
바삭하게 튀겼다 해도 결국 혀 위에서 뭉그러지는 그 식감이 나를 괴롭게 했다.
찌고 볶아서 만든 가지 요리의 경우는 쳐다보는 것부터 괴로운 지경이었다.
척 보면 압니다!
굳이 입에 넣어보지 않아도 그릇에 담겨있는 가지 반찬 모양만으로도 충분히 짐작가능한 식감과 맛이 내 미간을 찌푸리게 했다.
향을 느끼지도 못하면서, 가지 반찬에서 김이 모락모락 올라올 때면 어쩐지 그 향이 느껴지는 것만 같은 놀라운 기적이 일어났다.
1년에 소비하는 가지의 개수가 0.001개쯤 될 법한 나도, 예전에는 '가지'에 큰 거부감 없었다.
심지어 조리도 하지 않은 가지를 우걱우걱 베어 먹기도 했었는데, 부모님이 화분에서 키워내신 채소라서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수상쩍게 조용한 딸을 찾아보시다 생가지를 씹어먹고 있던 내 모습에 아빠는 경악을 하셨더랬다.
그랬던 내가 학교 급식을 먹고서부터 가지 요리에 대한 혐오가 생겨났다.
잔반을 남기면 하늘이 무너지는 줄 알았던 학급 분위기 탓에, 매일 찾아오는 급식차 반찬통에 가지가 들어있을까 봐 걱정이 가득했던 날들이었다.
아마도 대량의 음식을 조리하면서 조금 더 익혀졌을 수도, 혹은 간이 잘못되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무슨 이유에서든, 학교 급식으로 나왔던 가지 반찬들은 맛이 끔찍했다.
oo가 반찬 남겼대요~!
그 시절에는 왜 그리도 일러바치는 녀석들이 많았는지..
내가 초등학교를 다니던 때는 선생님들에게 촌지와 선물을 챙겨 보내는 것이 당연했던 시절의 끝물이었다.
지금 시대에서는 SNS를 도배할만한 일이겠지만, 그 시절에는 아이들 손에 선생님께 보내는 선물과 꽃다발들이 흔하게 들려있었고, 그것을 핑계삼에 선생님과의 돈독한 친분을 유지하는 아이들도 많았다.
선물이 아니고서야 지체 높으신 선생님과 대화하기 어려워서였는지 몰라도, 선생님에게 말 한마디라도 더 걸려는 일념을 가진 아이들은, 교실에서 일어나는 작은 일들 모두 놓치지 않고 일러대기 바빴다.
특별한 사건사고 없이 흘러가는 지루한 초등학교의 교실.
그때의 담임들은 반찬을 남기는 일이 농부의 노고를 무시하고, 영양사님의 정성을 내팽개친 변절자의 행동인 양 호들갑을 떨어댔었다.
싫어하면 안 먹을 수도 있는 것을..
주지 말라는 반찬을 식판에 담아 준 급식부장을 탓해야지, 그깟 반찬하나 남겼다고 교탁옆에 세워두고 인민재판을 벌렸던 그때의 담임도, 상황도 싫었다.
촌지를 안 줘서였을지, 반찬 남기는 습관을 고치려는 것이었는지..
그 의도는 알 수 없다.
다만 60명이나 되는 바글바글한 아이들 사이에서, 그 물컹한 녀석을 꿀떡꿀떡 삼키고 나면 헛구역질이 올라오고 입맛이 가셨다.
소름이 끼쳐서 팔뚝마다 닭살이 돋고 털이 섰다.
한겨울 노상방뇨하는 아저씨처럼 부르르 떨리던 몸의 느낌이 지금도 선명하다.
시간이 흐르고 어른이 되니 먹고 싶지 않은 것을 안 먹어도 되는 날이 많아졌다.
남 눈치 보지 않고 좋아하는 음식을 먹는 것이, 스트레스받는 날들을 버티게 해 주는 것 만 같았다.
내가 번 돈으로 내가 좋아하는 것을 내가 원할 때 먹었다.
짧은 시간 한국에 머무는 휴가기간 동안은, 좋아하는 음식을 찾아먹기에도 시간이 촉박했다.
좋아하는 회와 해산물을 잔뜩 먹고, 좋아하는 반찬과 과일만 챙겨 먹어도 늘 아쉬운 날들이었다.
소위 말하는 어른의 Flex로 뽀드득 소시지를 잔뜩 구워 먹고, 묵은지 한 포기에 스팸 한통을 넣고 진하게 졸여서 주말 내내 먹는 것도 행복했다.
그렇다.
먹는 행위 그 자체는, 원하는 음식을 바라보는 시각적 충족감뿐만 아니라, 먹겠다고 마음먹은 순간부터 입에 들어가는 모든 과정이 만족스러워야만 한다.
몸에 좋은 것이니 먹으라는 거듭된 권유나 강압적인 분위기로 흘러가서는 안 되는 것이다.
이 좋은 세상.
먹을 것도 많은데 좋아하는 것만 먹다 가도 시간이 모자르다.
영양소가 다 무슨 소용이며, 나이가 뭐 대수란 말인가!?
내 입으로 무엇을 넣을지 말지에 대한 선택권 정도는 보장되어야 하는 삶이지 않은가?
먹기 싫은 음식을, 먹지 않겠다는 확언에도 불구하고 '먹어라, 먹어라, 맛봐라.' 거듭 묻는 것도 고문이다.
사랑이 아니다.
어차피 까탈스러운 입맛 덕분에 군것질도 많이 하지 않는 편이고, 야식이며, 자극적인 음식도 거의 먹지 않으니, '가지'정도는 내 인생에서 버리기로 한다.
가지 따위!!
잔반 남겼다고 일러대던 놈들과 그 담임들에게나 양보해야겠다.
내 몫까지 다 먹어라!
#몸에좋은가지 #다드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