싫어하지만 잘 만들어요, 제육볶음.

그렇지만 먹지는 않지요.

by민영

내 주특기는 제육볶음이다.


물론 나는 만들기만 할 뿐 먹지는 않는다.


물렁뼈와 고추장이 들어가 있는 음식을 한다는 것이 내키지는 않지만, 생각보다 간단하게 만들 수 있고, 만든 결과물을 남편과 지인들이 좋아해 주기 때문에, 싫어하면서도 가장 잘 만드는 아이러니한 요리 중 하나다.




나는 제육볶음을 만들 때 기름기가 적당히 섞인 대패삼겹살을 주로 이용한다.

열이 오른 팬에 대패삼겹살을 올리고, 고기의 앞뒤를 노릇하게 구워내는 것이 제육볶음의 시작이다.


번잡스럽게 파나 마늘을 먼저 볶아내지 않아도 괜찮다.

고추장 양념이 생략된 모든 과정들을 커버 쳐 주기 때문.


양념장이 들어가기 전에 고기를 볶아두는 이유는, 생고기를 제육 양념에 절였다가 볶았을 경우 덜 익은 부분을 분별하기 힘들었던 경험 때문이다.

어차피 내가 먹을 것이 아니기 때문에 덜 익은 줄도 모르고 상에 내어놓아도 알 길이 없다.

미리 익혀서 요리하는 편이 만드는 사람과 먹는 사람 서로의 정신 건강과 몸 건강에 이롭다.



요란한 소리와 함께 여러 번 방향을 바꿔주며 구워낸 삼겹살은, 집게로 집어서 먹기 좋은 크기로 가위질해 준다.

적당히 잘라진 고기 위로 다진 마늘 한 큰 술과 양파 반 개를 썰어 넣고 함께 볶는다.

멋을 부려야 하는 날에는 당근 한토막을 썰어 함께 볶아주면 제법 그럴싸한 비주얼의 음식이 된다.



싫어하는 음식을 요리하는데 어찌 맛이 있는 것인지, 시아주버님이나 남편도 신기해한다.


몇 번의 시행착오 끝에 남편이 가장 맛있어했던 레시피의 양념 비율을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 비결이라면 비결.


간 보기를 최대한 피하고, 맛의 변화를 최소화하려면 양념장의 비율을 지켜야 한다.

딴생각을 하다 비율을 어긋나면 부득이하게 여러 번 간을 봐야 하는 불상사가 생기므로, 고추장, 간장, 맛술, 설탕과 고춧가루 등의 양념이 몇 수저 들어갔는지 비율을 잊지 말아야 한다.


양파가 조금 물렁해진 즈음 만들어둔 양념을 추가하고, 화분에서 뽑아온 대파를 숭덩숭덩 잘라 넣는다.


제육볶음에 들어가는 채소들은 썰어놓은 모양이 투박할수록 먹음직스러워 보이는 이상한 멋이 있다.

정성 없이 툭! 썰은 듯 한 모양의 큼직하게 자른 파를 추가해 준다.


제육볶음은 만들기 쉽고, 파는 많이 넣을수록 맛있다.


어느 정도 볶다 보면 고기에 양념이 잘 스며들었는지 확인해야 할 시간이 온다.

최대한 기름기 없는 살코기 부분을 손톱만큼 잘라 맛을 봐야 한다.

돼지고기 맛과 고추장 양념맛에 부르르..

역시나 적응되지 않는 맛이다.



움푹한 그릇에 완성된 제육볶음을 수북이 담아내고 볶은 깨를 과하게 뿌려 마무리해 준다.


곁들일 국과 쌈채소, 그리고 제육볶음과 함께 꼭 먹어야 하는 청고추를 준비한 후 남편을 부른다.


특별할 것 없는 반찬에도 칭찬 일색인 남편이지만, 제육볶음이 상에 오르는 날에는 통통하게 살이 오른 광대뼈가 평상시 보다 더 볼록해지곤 한다.


진수성찬이네!


이까짓 것 금새 만드는데 뭐 맛있다고 이리 좋아하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뭐든 잘 먹는 남편이지만, 그날의 메뉴의 성공 여부를 가늠하기는 아주 쉽다.

밥을 한 공기 더 먹느냐, 마느냐에 따라 그의 만족도를 알 수 있다.


한 숟가락만 더 먹을까?


기대하던 문장이 들리면, 많지도 적지도 않은 양의 밥을 적당히 담아 내어 준다.



같은 과정으로 만든 제육볶음을 석쇠에 올려 불향을 올려주는 날이면, 우리집을 찾은 지인들도 남편과 함께 밥공기 비우는 속도를 높이곤 한다.


냄새를 못 느끼는 나로서는 이러나저러나 같은 음식 같은데, '불향이 나서 더 맛있다~!'라는 멘트와 함께 만들어둔 제육볶음이 금새 바닥을 보인다.


고추장에 버무려진 돼지고기가 뭐 그리 맛있다는 건지 알 수가 없지만, 마당에서 키워낸 채소를 처리하기에는 제육볶음만 한 메뉴가 없으므로, 쌈채소들이 창궐하는 시기에는 빠지지 않고 내놓는 메뉴가 됐다.


너는 안 먹어?
응. 안 먹어. 많이들 먹어.


제육볶음이 상에 오른 날의 내 밥상은 허술하기 그지없다.

기껏 만든 음식을 앞에 두고도 젓가락이 갈길을 잃는다.


언제 씹힐지 모를 물렁뼈도 무섭고, 걸쭉한 고추장 양념도 부담스럽다.

고기가 모두 사라진 후 양념에 볶아 먹는 볶음밥도 사절이다.


열심으로 키운 쌈채소를 여러겹 올려 맨밥과 강된장을 넣어 쌈을 만들어 먹을 수밖에 없다.

크게 한 쌈 삼켜내고 소맥으로 입가심을 한다.


좋던 싫던, 내가 만든 음식을 잘 먹어주는 사람들이 있으니 고마울 따름이다.

내 입을 통과하지 못한 제육이 다른 사람의 배를 든든히 채워주었으니 되었다.


나 아닌 누군가에게는 사랑받으며 사그라진 제육이에게 건배!



#제육볶음싫어요 #만들어는드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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