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직검사를 해야 한다고요?"
마지막으로 유방암검사를 받은 건 2023년 12월이었다. 캐나다에서는 만 45세부터 정기검진 대상이 되며, 50세가 되면 2년에 한 번씩 유방암 정기검진을 반드시 받으라는 레터가 날아오기 시작한다. 캐나다에서는 유방암 검사를 비롯하여 혈액 검사, 엑스레이, 초음파(Ultrasound) 등 의학적으로 필요한 진단 검사들을 주 정부 의료보험을 통해 전액 무료로 받을 수 있다. 가족력이나, 본인의 의사에 따라 매년 검사를 받기도 한다. 캘거리에 이사 온 후 패밀리 닥터가 내가 그전에 유방암 검진을 받은 적이 없으면 검사를 받으라고 해서 49세에 시작했고, 그 후 2년에 한 번씩 검사를 받았다. 보통 아시아인들은 유방 조직 치밀도가 높게 나오는 편이어서 매번 초음파(Ultrasound)까지 한번 더 찍어야 하는 경우가 생긴다. 그래서 그 이후에는 늘 두 개의 검사를 한번에 다 받았다. 마지막 검사 후 2년이 지나 다시 검사해야 할 시기가 돌아왔다.
원래는 2025년 말에 예약이 잡혀 있었지만, 별생각 없이 깜빡하고 시간을 놓쳐버려서 2026년 1월로 예약을 미루었다. 그런데, 예약당일에 자서전 강의 일정이 생겨버려 또다시 연기를 했다. 내심 그냥 안 하고 넘어가면 안 될까 꼼수를 생각해 보면서. 그렇게 다시 검사를 받게 된 날이 바로 2주 전인 6월 4일이었다.
2년 6개월 만이다.
유방촬영술 마모그램(Mammogram)은 굉장히 불편하고 귀찮은 일이다. 상의를 탈의한 채 가슴을 샌드위치 기계처럼 위에서 납작하게 누른 상태에서 가슴 하나씩 따로 촬영해야 한다. 자세도 민망한데 눌릴 때는 꽤 아프기도 해서 별로 가고 싶지는 않다. 내가 무슨 암이 있겠어.. 라며 검사 자체를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날도 역시 마모그램과 초음파 검사 모두 예약이 되어 있었다. 초음파 검사까지 마친 후에 촬영하신 분이 나에게 잠시 앉아서 의사 소견이 나올 때까지 기다리라고 했다. 잠시 후 의사가 오더니, 내 왼쪽 유방이 2023년과 비교해서 조직의 크기가 변화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게다가 겨드랑이에도 림프절의 형태가 커져 있다며 조직검사를 받아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조직검사는 수술은 아니지만 부분마취를 해야 하고 끝나면 약간 어지러울 수 있으니 혼자 오지 말고 운전할 보호자를 동행하라고까지 하신다. 조직검사 스케줄을 잡아주겠다면서 예약을 해주는데, 의료부문에서 느리디 느린 캐나다에서 일주일 뒤로 바로 예약을 잡아 주는 걸 보니 내 상태가 꽤나 급한 상태인 건가 괜히 의심하게 되었다.
가슴에 작은 조직 하나 떼는데 굳이 보호자를 동행해야 하나 싶어 얼마 전에 유방암 조직검사를 한번 해본 경험이 있는 지혜에게 물어보았다. 조직검사를 한다고 하니, "언니, 어떡해!" 하며 걱정을 하면서도 검사 후 많이 아픈 건 아니니, 운전은 직접해도 상관없다고 조언해 준다. 다행이다. 이건 그냥 검사일뿐인데 가족들에게 말해서 굳이 신경 쓰게 하기 싫었기에 조용히 다녀오고 싶었다. 남편은 캘거리 아닌 다른 지역에서 일하고 있는데 괜히 걱정만 쌓이게 될 것이 뻔했다.
앨버타주에서는 이런 검사들을 받고 나면, AHS(Alberta Health Services)에서 운영하는 'MyHealth Records'라는 온라인 포털에 검사 결과를 상세히 올려준다. 마모그램 받은 결과를 살펴보니 어려운 용어들이 많았다. 제미나이에 검사 결과를 올려보니, 나는 BI-RADS 5라는 등급을 받았고 이는 유방암일 확률이 매우 높을 때 주어지는 등급이라고 한다. 1-6등급까지 있는데 5등급은 확률이 95% 이상일 때 주어진다고.
분명 내 검사결과인데 남의 차트를 보듯이 분석 결과를 읽어본다. 보통 영상 의학에서는 2cm를 기준으로 그보다 크면 어느 정도 크기가 있는 편으로 분류한다는데 나는 3.2cm라고 한다. 그리고 내 정보를 캘거리 Breast Health Program 전문 외과의에게 긴급 의뢰를 넣어둔 상태라고 한다.
사태의 심각성을 알고 미리 준비 중이라는 건가? 내가 진짜 암이라도 생긴 거야?
일주일 뒤 6월 11일. 지정된 장소로 조직검사를 하러 갔다.
상의 탈의를 하고 가운을 입고 조도를 낮추어 놓은 진료실로 들어갔다. 나를 도와주는 간호사분이 내게 대략 4군데 정도의 조직을 채취할 예정이며, 어떤 식으로 진행될 것인지를 설명해 준다. 왼쪽유방과 겨드랑이 쪽에 긴 바늘을 삽입할 것이며 시간은 많이 걸리지 않는다고 말해 주었다. 침대에 누워 한쪽 가슴을 열고 팔을 위로 올리고 조직을 떼어낼 곳을 영상을 확인하며 마크로 표시를 하고 있으니 의사가 들어왔다. 국소마취를 여러 군데 했다. 잠깐 찌릿하긴 했지만 참을만했다. 긴 바늘이 쑥 들어오는 느낌이 들었고 들어온 상태에서 몇 번을 더 꾹 누르며 돌렸다. 금방 끝날 거라고 생각했지만, 시간이 제법 걸렸다. 올리고 있던 팔이 저려왔다. 가슴을 열고 그 상태로 꼼짝 않고 누워 있는데 갑자기 눈물이 저절로 흘렀다. 울지는 않는데 눈물이 흐르는 신기한 일을 경험했다.
의사는 가슴 두 군데의 조직을 떼어낸 후 괜찮냐고 묻는다. 나는 "괜찮아, 미안, 갑자기 왜 눈물이 날까.."라며 민망한 마음을 표현했다. 다 큰 성인이 눈물을 질질 흘리는 게 부끄럽기도 했고, 그 순간 왜 그런 감정이 들었는지 알 수 없었다. 간호사가 혹시 아파서 그런 거니 아니면 마음이 힘드냐고(overwhelmed) 물으며 휴지를 건네주면서 토닥여준다. 다른 생각을 하게 하려는지 올여름 계획을 물어본다. 나는 모르겠다고 말하는 중에 눈물이 더 많이 흘러내렸다. 이제는 정말 마음에서 우는 눈물이다. 의사는 마지막 시술을 마친 후 나에게 너무 잘 참았다, 정말 잘했다면서 토닥여주었다. 실제로 발을 토닥토닥 쓰다듬어 주시고 나가셨다. 두꺼운 바늘로 찌르는 거라 가슴에 작은 상처가 생기고 겨드랑이 쪽에는 생각보다 피가 많이 났다. 간호사가 방수밴드를 붙여주고 앉을 수 있게 도와주는데, 아까 울었던 게 민망하기도 해서 "I don't know why I am so emotional."이라고 멋쩍게 말했다. 간호사는 충분히 그럴 수 있지. 이런 곳에 오는 걸 좋아하는 사람은 없어. 이젠 다시 안 와야지?라고 말했다.
그리고 나는 차로 돌아가 한바탕 울음을 쏟아냈다. 운전을 하는데도 자꾸 눈앞이 흐려져서 혼이 났다. 참으로 신기한 감정이었다. 나는 암에 대해 걱정하고 있지도, 두려움이 있었던 것도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마음 저 한편에서는 겁이 났던 걸까.. 그 순간이 어떤 감정이었는지 나는 지금도 알 수가 없다. 너무나 친절한 의사와 간호사 덕분에 마음은 많은 위로를 받았음에도.
다음날 붙여둔 밴드를 보니 피가 굳어서 처참했고, 겨드랑이와 가슴에 커다란 멍이 들어있다.
그리고 또 일주일이 흘렀다. 나는 때때로 결과를 걱정하긴 했지만, 잊고 있을 때가 더 많았다. 여전히 똑같은 생활을 하고 있었다. 운동도 하고, 매일 하던 일과들을 해내고 있었다. 나에게는 일어나지 않을 일일 거라는 생각도 했다.
오늘 오전에는 캘리와 개산바카라도 함께 다녀오고, 피부과에도 갔다 왔다. 집에 돌아가는 길에 장을 보러 가야 해서 차에 시동을 걸다가 My Health record에서 새로운 메시지가 도착한 것을 발견했다. 조직검사받은 지 일주일 만에 나온 결과였다. 잠시 숨을 고르고, 결과가 나온 메시지 창을 열어보았다. 복잡한 내용은 거르고 Positive 인지 Negative 인지부터 찾았으나 마음이 급해서인지 그 단어는 보이지 않고, 읽어도 무슨 말인지 알 수 없는 상형문자들의 나열인 것 같았다. 캡처를 해서 제미나이에게 물어보았다.
"간단히만 말해줘. 그래서 양성이래 음성이래?"
왼쪽 유방 침윤성 유방암 2등급(Grade 2) 및 왼쪽 겨드랑이 림프절 전이되었다고 합니다. 호르몬과 단백질 검사는 진행 중이며, 이 결과가 나와야 치료 향방이 나올 계획입니다.
허탈한 웃음이 나왔다.
가끔 틀린 정보를 쏟아내기도 하는 제미나이여서 다시 확인을 거듭했다.
"유방암이 맞는거네? 그럼 2등급이라는 건 내가 유방암 2기라는 거야?"
여기서 말하는 등급은 암세포가 얼마나 다르게 생겼고, 얼마나 빨리 자라는지를 알려주는 것으로 1~3등급 중 2등급은 딱 중간 정도의 성장 속도와 성질을 가졌다는 것입니다. 이미 림프절까지 전이되었기 때문에 극초기(0기~1기)는 아니고 2기 후반에서 3기로 추정됩니다.
메시지창을 닫았다. 조금은 숨을 골라야 할 것 같았다.
그래서, 지금부터 내가 달라지는 게 어떤 걸까? 나는 그대로인 거 같은데, 이 결과지 하나로 2주 만에 내가 순식간에 다른 사람이 되었다. 감정의 동요를 전혀 느끼지 못하고 그대로 장을 보러 가서 쌀을 사고, 집에 와서 세탁기에 넣어둔 빨래를 건조기에 돌리고, 아이들 밥을 차려준다. 오전에 캘리와 개산바카라 갔던 사진을 보며 깔깔대며 카톡으로 농담을 하고 있다.
'야, 너 암 이래. 조직검사를 할 때는 침대에 누워만 있어도 눈물이 흐르더니, 막상 진짜 암이라는 말을 들었을 땐 어쩜 이렇게 태연할 수 있을까?'
방금 다녀온 피부과에서 가벼운 레이저 치료라도 받고 나온 것처럼 덤덤한 나를 보며 자문해 본다.
잘 모르겠다. 내가 아직 아프지 않아서일까? 작년 겨울에 예정대로 검사를 하러 갔다면 림프절까지 전이되지는 않았을까? 작년에 오케스트라를 그만두고, 기타 밴드를 그만두고, 테니스를 그만두고, 경제팀 모임을 멈추었을 때 내 몸은 이미 다 알고 있었던 걸까.
내가 아프면 문제 될 일들을 머릿속으로 계산해 본다. 농구하는 아이를 수업에 데려다줄 일도 걱정되고, 강아지 산바카라도 걱정된다. 그래도, 뭐든 닥치면 다 하게 돼있으니 미리 걱정은 거두자.
이 와중에 암 선고를 받고도 병원비 걱정은 안 해도 되는 이 나라의 시스템에 감사한 마음부터 일어난다. 이런 내가 속없는 거 같다가도, 어쩌면 이런 게 어떻게든 살아내겠다는 내 안의 기특함인 거 같아 나를 조용히 토닥여본다.
잘 될 거야... 조용한 내 인생 시나리오.. 이렇게 한번 거창해진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