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이 되는 나이 헤아리기

시골에서 연령을 나누는 법

by상모솔새

나는 숫자에 약하다. 그래서인지 항상 나이를 헤아리는 게 어려웠다. 한국식 나이 세는 법은 늘 헷갈렸고 심지어 나는 빠른년생이어서 학교에 한 해 일찍 입학했다. 그런 탓에 고등학교 선후배가 여럿 있는 공무원 슬롯에서는 의도치 않게 족보 브레이커가 되기도 했다. 여전히 나는 누가 나이를 물으면 버벅거린다. 아마 올해 3n살…? 일 걸요, 하고 두리뭉실하게 대답한다.


다행스럽게도 이 지역에서는 정확한 내 나이를 물어보는 사람이 적다. 30대라는 것만 알면 충분하지, 구체적으로 몇 살인지까지는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또래끼리라면야 정확한 숫자를 알아야 서열을 정리할 수 있겠지만 까마득한 어른들의 입장에서는 서른 하나인지 서른다섯인지는 크게 중요한 사항이 아니다.


우리나라에서 30대는 중요한 분기점이다. 각종 지원사업이나 정바카라에서 말하는 ‘청년’의 기준이 그즈음에서 갈리기 때문이다. 나도 얼마 전 겨우 어느 정부지원 적금의 막차를 탔다. 서둘러 공무원 생활을 정리한 것도, 정부에서 정하는 청년의 기준에서 벗어날까 봐서였다. 갈 수 있는 길은 많을수록 좋으니까.


하지만 이곳에서 나는 내 나이를 정확히 헤아리지 않아도 된다. 한두 살 더 먹어도, 하다못해 열 살쯤 더 먹어도 여기서는 청년 취급을 받는다. 가게를 창업할 때 신청했던 지원사업의 제한연령은 만 49세였다. 형님의 친구분이 청년회의 부녀회장을 맡고 계신다던데, 이제 곧 50대쯤 되시는 걸로 알고 있다. 어디 보자, 7n년생이면 올해 나이가 몇이지. 아무튼 그건 중요치 않다.


어머님과 함께 일하면서 수다를 떨다 보면 혼란스러울 때가 많다. 보통은 가정사에 대한 이야기가 주된 소재인데,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키워드들은 다음과 같다. 딸, 아들, 손주, 애들… 듣다가 머릿속이 정리가 안 되어서 나는 기다리다 못해 여쭈어 본다. 그래서 그 집 아들 나이가 얼마 정도인가요, 하고. “사십은 넘었고, 오십 됐나?”


그러니 내가 애를 낳고도 어른 취급을 받을 수 없는 건 당연하다. 인구소멸위기에 더해 초고령화를 겪고 있는 이 지역에서 어른 대접받기란 쉽지 않다. 우리 집 5살 어린이가 ‘나는 나중에 어른 되면 ㅇㅇ이랑 결혼할 거예요.’라고 말할 때의 ‘어른’과 어머님이 말하는 ‘어른’은 전혀 다르다. 후자는 웃어른이나 어르신의 개념에 보다 가깝다.


숫자로 표시되는 법적인 성년 기준을 넘긴 것만으로는 어른이 될 수 없다. 누군가의 부모가 되는 것으로도 부족하다. 내가 관찰한 바로는, 자녀를 혼인시킬 정도쯤 되면 어느 정도 어른 대접을 받을 수 있지 않나 싶다. 사돈어른이라는 호칭도 있지 않은가. 나이로 따지면 우리 엄마가 적지만, 어머님께서 우리 엄마를 존중해 주시는 것처럼. 자녀들을 결혼시킴으로써 비로소 어른들의 리그에 첫 발을 내디딜 수 있는 게 아닐까?


이미 70대이시고 손자들도 있는 어머님께서는 길 가시는 어르신들을 ‘할매’라고 지칭하실 때가 있다. 남성의 경우에는 ‘나-많 사람(나이가 많은 사람).’ 우리가 노인분들을 어르신이라고 부르는 것과 용법은 비슷해 보이지만, 약간 의아해지는 것이다. ‘아지매’와 ‘할매’의 경계선은 어디인지? 모르긴 몰라도 정확한 나이 기준이 있는 것 같지는 않다. 법적인 나이가 정확한 나이도 아닐 것이다. 주민등록이 늦게 되거나 틀리게 된 경우도 흔하고, 숫자보다는 띠로 먼저 나이를 가늠하는 세대이기도 하다.


몇 살쯤 되었는지보다 결혼 여부, 자녀 유무, 취학 여부, 자녀의 혼인 여부가 그 사람의 칭호를 결정한다. 가끔씩 있는 또래와의 조우를 제외하고는, 나는 내 나이를 잊고 산다. 나이를 묻는 사람도 거의 없는 데다, 여기서는 두 자리 숫자보다는 나에게 미취학 자녀가 있다는 사실이 더 중요하다. 앞으로도 나는 내 나이를 헷갈려하는 채로 살 듯하다. 훗날 어른이 되어도 마찬가지겠지.

이전 14화아무도 나를 모르는 시골에서 조용히 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