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일을 자꾸 미루던 30대 온라인 게임인의 첫 프리다이빙 여행_3편
- 2부 -
마음이 기우는 쪽으로
<준비 운동>
동생의 한마디로 오키나와에 갈 날짜가 생겼다. 늘 회사 일정부터 확인하던 달력 한가운데에 ‘오키나와’ 네 글자가 들어왔다. 항공권을 사고 숙소를 고르고 장비를 챙겼다. 방 한쪽에는 흰 슈트와 민트색 마스크, 민트색 가방이 놓였다.
내 취향의 물건들을 고르다 보니 이번에는 바다에 데려갈 몸도 눈에 들어왔다. 오랫동안 대충 데리고 살았던 살색 몸을 조금씩 움직이고 돌봤다. 인어공주가 아니어도 황제펭귄 한 마리로 당당하게 바다에 갈 수 있도록. 1년 동안 마음속에만 있던 바다가 날짜를 얻고, 짐이 되고, 하루의 할 일이 되었다.
“진짜 가자!”
“그래? 그럼 언제 갈까?”
우리는 곧바로 휴대폰을 꺼냈다. 이럴 때 우리 자매는 빠르다. 함께 하기로 결정했으면 일단 달력을 펼치고, 갈 수 있는 날짜와 항공권, 숙소를 본다. 통장 잔액도 대충 한 번 확인한다. 설렘보다 검색창과 앱이 먼저 열리는 자매다.
당시 동생은 10년 넘게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자기가 해보고 싶었던 일을 준비하던 때였다. 쉽게 말하면 백수였다. 덕분에 일정 조율은 간단했다. 나만 날짜를 만들면 됐다. 살다 보니 ‘백수 동생’이라는 말이 이렇게 든든하게 느껴질 줄이야.
문제는 나였다. 온라인 게임인의 여행은 마음보다 연차가 먼저 허락해야 한다. 다음 달 달력을 보니 하루만 연차를 붙이면 휴일과 주말을 이어 나흘을 만들 수 있었다.
나는 회사의 미팅과 프로젝트, 마감과 보고 일정을 확인했다. 다행히 크게 걸리는 일은 없었다. 4월 30일 목요일 하루를 쉬면 노동절과 주말까지, 목·금·토·일 나흘이 확보되는 상황이었다.
곧바로 연차를 올렸고 일주일이 지나지 않아 승인을 받았다. 마음 같아서는 5월 4일도 쉬고 싶었지만 그날은 업무가 있었다. 그래도 나흘이 어디인가. 온라인 게임인에게 연차 확정은 늘 짜릿하다.
목적지는 사이판과 오키나와 사이에서 고민했다. 시간과 통장에 여유가 있었다면 몰디브나 팔라우부터 꺼냈겠지만, 여행의 심사위원은 늘 통장이다. 너무 멀지 않고 나흘 안에 다녀올 수 있으며, 비용을 감당할 수 있어야 했다. 프리다이빙을 할 수 있고 바다가 예쁜 곳이면 좋았다.
이 당시 크게 이슈가 되었던 유류할증료마저 부담스럽던 때라 동생은 가까운 오키나와를 적극 밀었다.
“언니, 오키나와 진짜 좋아.”
경험자의 확신 어린 한마디는 검색 결과 백 개보다 강했다. 짧은 기간 안에 준비할 수 있고 비용도 그나마 덜 부담스러운 오키나와로 정했다. 동생에게는 다시 가는 바다였고 나에게는 처음 가는 바다였다.
우리 자매는 닮은 것 같으면서도 꽤 다르다. 나는 동생보다 겁이 없는 편이고 즉흥적인 결정도 곧잘 한다. 그런데 실행은 느리다. 동생은 나보다 걱정이 많으면서도 행동은 더 빠르다. 10년 다닌 온라인 게임을 먼저 그만둔 것도, 오키나와 바다에 먼저 들어간 것도 동생이었다. 성격도 속도도 달랐지만 이번에는 같은 곳을 바라보게 됐다.
연휴가 붙은 일정이라 괜찮은 항공편 좌석은 빠르게 사라졌다. 잠깐 5분쯤 검색하고 나면 봐두었던 자리가 없어지기도 했다. 여러 사이트에서 시간대와 가격을 비교하다가 지금 중요한 것은 가격보다 속도라는 생각에 결제했다.
좋아하는 것을 미룰 때 가장 편리한 단어는 ‘언젠가’다. 언젠가에는 바카라임이 없다. 날짜도 예약금도 필요 없고 회사에 연차를 올리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항공권을 끊는 순간, 그 언젠가가 날짜가 되었다.
항공권 다음은 숙소였다. 우리 자매는 정돈된 공식 사진보다 실제 투숙객이 찍은 날것의 사진을 열심히 본다. 조금 흔들리고 조명이 어둡고 생활감이 묻은 사진에서 오히려 숙소의 실체가 보이기 때문이다. 교통과 청결, 안전은 물론 편의점과의 거리도 봤다. 젖은 수영복과 슈트를 말릴 수 있어야 했고, 무엇보다 동선이 중요했다.
지도 위에 자마미섬행 배를 타는 선착장, 국제거리, 다이빙 숍, 버스 정류장을 하나씩 찍었다. 그 점들이 모인 구역을 중심으로 숙소를 찾았다. 이쯤 되면 여행 계획이라기보다 수사 드라마의 범인 추적 경로 같았다.
조건을 거의 다 만족하는 작은 복층 숙소를 에어비앤비에서 예약했다. 결제를 마치자 체크인 전에 여권 스캔본을 보내달라는 안내가 왔다. 처음에는 미심쩍었지만 투숙객의 여권 정보를 확인하는 절차라는 것을 알아보고 제출했다. 그렇게 내 여권은 나보다 먼저 오키나와로 출발했다.
입국 수속도 준비했다. ‘비짓 재팬 웹’에 입국심사와 세관신고에 필요한 정보를 입력하고 QR코드를 챙겼다. 예전 같으면 비행기 안에서 작은 서류를 무릎에 올려놓고 여권번호를 옮겨 적었을 것이다. 공항에서 할 일을 한국에서 미리 덜어두고 나니 여행이 조금 더 가까워졌다.
업무 중 개인 달력을 다시 열어봤다. 오키나와. 네 글자가 일정 한가운데 들어 있었다. 하지만 준비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필요한 장비부터 갖춰야 했다. 핀과 마스크, 스노클. 그리고 돈으로 살 수도 없는 가장 중요한 장비가 남아 있었다.
내 몸.
지난 1년 동안 일하고 먹고 누워 있는 데 누구보다 성실했던 몸이었다. 항공권을 끊고 나니 그 몸이 다시 보였다. 처음 프리다이빙을 배울 때도 인어공주보다는 미운 오리에 가까웠는데, 그사이 제철을 맞이한 듯 살이 오른 황제펭귄이 되어 있었다. 모처럼 맨몸으로 거울 앞에 서니 그동안 흐린 눈으로 지나치던 팔과 허리, 허벅지, 무엇보다 배불뚝이 통통배가 보였다.
황제펭귄의 날개처럼 양팔을 휘적이며 몸을 살피다가, 애써 피해 다니던 체중계를 바라봤다. 그래, 현실을 직시하자. 올라가자 지난 1년의 식사량과 음주량을 성실하게 검증해주듯 숫자가 떴다.
75킬로그램.
나에게도 날씬했던 시절은 있었다. 20대에는 160센티미터의 키에 46킬로그램에서 52킬로그램 사이를 오갔다. S 사이즈 옷을 마음 편하게 샀던 때였다. 30대 중반의 몸은 달랐다. 하루 종일 앉아 있는 시간이 길어졌고 야근은 불규칙했다. 운동은 시작했다가 일이 바빠지면 멈추기를 반복했다. 체중은 인생 최고치를 찍었다.
혹시 잘못 쟀나 싶어 한 번 더 올라갔다. 체중계는 융통성이라고는 모르는 물건이었다. ‘나를 못 믿어?’ 묻기라도 하듯 숫자는 그대로였다. 나는 살이 찐 몸이 아주 마음에 들지 않았다.
프리다이빙을 배우던 때, 탄탄한 몸에 긴 핀과 광택 나는 슈트를 갖추고 부드럽게 내려가던 여자 강사님들이 떠올랐다. 멋있었다. 나도 건강하고 탄탄한 몸을 갖고 싶었고 슈트를 멋지게 입고 싶었다. 그 마음까지 애써 없는 척하고 싶지는 않았다.
여행을 앞두고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정말 일어나기 싫은 아침에도 10분쯤 스트레칭을 했고 식사를 조절했다. 한동안 다니지 않던 헬스장에도 다시 나갔다. 예전에 PT를 받으며 배웠던 기억을 더듬어, 무게를 많이 들기보다 엉덩이와 하체, 등을 제대로 쓰는 데 집중했다. 확실한 목적지가 생기니 몸도 제법 따라왔다.
여행을 앞두고 체중은 66킬로그램 정도까지 내려갔다. 4주 동안 9킬로그램이 줄었다. 그렇다고 거울 속에 갑자기 20대의 내가 나타난 것은 아니었다. 욕심은 남았지만 일정이 코앞이었다. 조금 더 빼면, 조금 더 건강해지면, 조금 더 예뻐지면 좋겠지. 그러다가는 프리다이빙 여행보다 환갑잔치를 먼저 예약할 것 같았다.
이번에는 노력해본 지금의 몸으로 가기로 했다. 포켓몬이 진화하듯 인어공주에서 미운 오리를 거쳐 황제펭귄으로, 퇴화인지 진화인지 모를 변화를 거쳤어도 당당하게. 공주는 아니어도 마음만큼은 황제처럼.
바다에 데려갈 몸을 정하고 나니 그 몸에 입히고 씌울 장비가 필요했다. 슈트와 마스크, 스노클과 삭스, 핀. 취미의 힘은 때로 통장에서 나온다. 취미가 생기면 사람이 조금 뻔뻔해진다. 이건 소비가 아니라 ‘필요한 장비’라는 훌륭한 명분이 생기기 때문이다. 무소유의 행복을 논하기에는 아직 먼 사람이라, 이번에도 유소유로 조금 더 솔직하게 행복해보기로 했다.
장비발을 내세우는 편은 아니지만 내 주변에는 늘 ‘이왕 살 거면’ 요정이 맴돈다. 여러 번 쓸 수 있고 너무 싸서 금방 다시 사지 않아도 되는 것. 그렇다고 초보가 감당하지 못할 만큼 비싸지는 않은 것. 그 적당한 선을 찾는 데 꽤 진심이다.
가장 먼저 흰 슈트를 샀다. 너무 저렴해서 불안하지도, 너무 비싸서 부담스럽지도 않은 첫 슈트였다. 배송이 오자마자 입어봤더니 몸에 아주 딱 붙었다. 정말, 아주 딱. 쇼핑몰 모델은 길고 날렵했는데 나는 짧고 통통해서 흡사 마시멜로 같았다. 동생은 내가 슈트 입은 모습과 닮았다며 인형도 사줬다.
그래도 좋았다. 내 몸이 마음에 드는 문제와 좋아하는 옷을 입는 문제는 꼭 같은 것이 아니었다. 몸이 마음에 들지 않는 날에도 취향은 있을 수 있으니까.
발을 보호할 흰색 프리다이빙 삭스도 골랐다. 처음에는 양말이 다 거기서 거기 아닐까 싶었지만, 모래나 돌멩이 위를 걷고 핀도 신어야 했다. 집에 있던 아쿠아슈즈와는 쓰임이 달랐다.
핀은 일부러 한국에서 사지 않았다. 첫 핀만큼은 오키나와에서 직접 신어보고 고르기로 했다. 여행지에서 산 장비라면 나중에도 그 바다를 떠올리게 해줄 것 같았다. 색은 이미 오리발 같은 노랑으로 정해두었다.
오래 고민하던 마스크도 샀다. 처음 배울 때부터 마음에 담아두었던 민트색 프레임에 흰색 스커트가 달린 아폴로 바이오메탈 마스크였다. 가격은 거의 20만 원. 고민하지 않고 장바구니에 넣었다. 그리고 바로 뺐다. 그리고 다시 넣었다.
‘초보인 내가 이런 비싼 마스크를 사도 될까?’
프리다이빙을 배우던 처음에도 그 고민 끝에 사고 싶은 마스크는 사지 않았고 조금 저렴한 마스크를 골랐다. 하지만 이번에는 제대로 즐겨보고 싶었다. 쓰던 마스크는 얼굴에 딱 맞지 않는 느낌이었고, 프렌젤을 할 때 잡는 코 부분도 딱딱했다. 앞이 선명하지 않았고 색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무엇보다 민트색 프레임이 아니었다. 사야 할 이유라면 수백 개도 만들 수 있었다.
끝내 결제 버튼을 눌렀다.
내 얼굴에 맞을 것 같은 A타입을 골랐고 프레임에는 이니셜까지 새겼다. 교환과 반품 따위는 내 계산에 없었다.
다행히 출발 전에 도착했고 집에서 써보니 얼굴에 닿는 느낌부터 달랐다.
취미는 사람에게 ‘달라달라 병’을 준다. 처음에는 “어차피 다 비슷해” 하다가도 좋은 장비를 써보면 어느 순간 말이 바뀐다. “이건 확실히 다르네.”
그렇다고 완전히 이성을 놓지는 않았다. 정해둔 50만 원 예산 안에서 필요한 장비와 물품을 골랐다. 평소에는 포인트도 꼬박꼬박 모으고 무료 커피 쿠폰도 놓치지 않는 사람이다. 이번에는 그 계산 안에서 조금 느슨해지기로 했다. 행복에도 그 정도 오차 범위는 있어야 하니까.
1. 프리다이빙 가방
1) 티메라 스플레쉬 메시백팩 (11만 원대)
미들핀, 마스크, 스노쿨, 목욕가방까지 모두 한 번에 넣을 수 있는 메쉬 소재 3중 포켓 백팩.
가방을 멨을 때 옷이 젖지 않도록 뒷면에 방수 시트가 있어서 좋았다.
단, 롱핀은 넣기 어려우니 참고할 것.
2) 디프 다이빙 가방 (2~3만 원대)
한 번에 여러 장비를 넣을 수 있는 넉넉한 사이즈.
투박하지만 오히려 더 실용적이다.
장비를 대충 다 때려 넣고 가뿐하게 다니고 싶다면 이만한 게 없다.
2. 목욕 가방
1) 땡글이 매쉬 수영가방 (5천 원대)
작아 보여도 이것저것 많이 들어가고, 샤워실에서 쓰기에도 편하다.
목욕가방은 수납이 잘 되고, 물이 잘 빠지며, 오염에 강한 제품이 최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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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방수 메시 이중 파우치 (1만 원대)
젖은 용품과 마른 용품을 분리해서 보관하기에 좋다.
3. 소분 용기
실리콘 고리공병 (1만 원대)
샴푸·린스·클렌저 소분에 실용적이다. 샤워실에서 딱 걸어 놓고 쓰면 편하다.
4. 젖은 머리 전용빗
나의 오랜 사랑 탱글 티저 빗, 엉키고 젖은 머리도 잘 빗긴다.
지나가다가 올리브영에서도 구입 가능하다. (올리브영데이를 노려봐도 좋을 듯)
5. 습식타월 & 건식타월
1) 쌔미 라이트 습식 타월
건식 타월과 함께 습식 타월도 챙겨두면 든든하다.
개인적으로 브랜드는 '쌔미'와 '나이키 스윔' 브랜드가 만족스러웠다.
2) 아르페 타월
마음 먹고 이번에 장만한 건식 타월. 전세계 유일 초극세사 섬유원단이라고 하는데 확실히 부드럽다.
세트로 사면 할인이 되어서 동생과 내 것을 함께 구입했다. 비치타올로도 쓸 수 있다.
6. 마스크
1) 아폴로 바이오메탈 마스크(20만 원대)
앞서 이야기한 마음먹고 장만한 마스크. 용적률이 다양하고 튼튼해서 좋다.
2) 디플리 메탈프레임 솔리드 마스크 (10만 원대)
메탈 프레임으로 튼튼하고 적절한 내부용적으로 미묘하게 압력평형에 유리한 느낌이다.
이 마스크도 말랑말랑한 재질로 코 잡기 편하다.
7. 스노클
쿠팡 같은 곳에서 구입한 스노클을 막 써도 좋지만, 초반부터 제대로 장만하고 싶다면 개인적으로 브랑키아 제품이 나쁘지 않았다.
세계 최초 마우스피스 교체형, 양석부력 프리다이빙 스노클이라고 한다.
8. 옷걸이 행거
개인적으로 수영복, 수영모자, 마스크, 스노클, 타월 등을 말리기 용이해서 생각보다 많이 애용했다.
특히 고리가 회전이 가능해서 이곳 저곳 걸어두기 편리했다.
9. 안티포크액
안티포그액은 인터넷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제작 방법으로 직접 만들어서 써도 되고, 이렇게 안전성이 검증된 제품을 사서 사용해도 좋다.
10. 플라스틱 키링
의외겠지만 개인적으로 추천하는 것은 키링이다. 혹시라도 남이 실수로 수영가방을 가져가거나 나 역시 헷갈릴 수 있으므로 내 가방이라는 표시 겸으로 각자 자신이 좋아하는 키링을 달아 주면 좋다. 무엇보다 사실 그런 이유를 빼더라도 주렁주렁의 민족답게 키링을 달면 기분이 좋다.
하나씩 모아보니 민트, 노랑, 회색을 좋아하는 나의 취향이 고스란히 묻어났다. 이때의 나는 장비만 고른 것이 아니라 내가 나만의 모습과 취향으로 바다에 들어갈 모습도 함께 고르고 있었다.
이제 마지막으로 챙길 것은 몸의 컨디션이었다. 출국 직전에 감기에 걸리거나 귀 상태가 나빠져 바다에 들어가지 못하면 좋은 장비도 소용없었다. 오키나와까지 가서 프리다이빙의 ‘프’도 못 하고 돌아온다니, 생각만 해도 억울했다.
여행이 가까워질수록 끼니를 대충 넘기지 않으려고 했다. 스트레칭을 하고 폼롤러로 몸을 풀었으며, 집 한쪽에서 먼지만 쌓이던 아령도 꺼냈다. 스쿼트와 힙브리지, 가벼운 근력운동으로 틈틈이 몸을 굴렸다. 야근 때문에 아무것도 못 한 날도 있었다. 그럴 때는 침대 위에서 십 분이라도 움직였고, 정 안 되면 아예 마음 편히 푹 잤다. 바다에 가기도 전에 자기 관리로 지치고 싶지는 않았다.
목표도 달라졌다. 날씬하고 탄탄한 인어공주가 되는 것보다 지금 가진 몸을 잘 데리고 바다에 가는 것. 통통해도 자기 몸 하나는 제법 잘 챙기는 황제펭귄이면 충분했다.
사람에게는 저마다의 시절 모습이 있으니까. 빨간 수영복에 그을린 피부가 어울리는 성숙하고 멋진 여성은 못 되어도, 말랑한 피부에 물고기 핀을 꽂은 조금은 미친 것 같은 귀여운 30대 중반 여성은 되어보자 싶었다.
여행 준비는 생각보다 현실적이다. 여권을 확인하고 환율을 살피고, eSIM을 등록하고 필요한 물건을 사고 몸을 돌본다. 그 사이사이에 설렘이 숨어 있었다. 새 슈트를 입고 거울 앞에서 날갯짓하던 황제펭귄도, 환율이 몇 원 내려갔다고 내심 기뻐하던 순간도, 잠들기 전 코를 붙잡고 프렌젤을 연습하던 우스운 모습도 이미 여행의 일부였다.
내 취향으로 내가 고른 물건들. 그리고 통통하지만 자기 자신을 잘 챙기는 귀여운 황제펭귄 한 마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