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다움'으로 가는 길

by리인


눈 내린 날, 온 세상이 하얗게 물든 숲은

탄성을 자아내는 신비로움이 있다.

아이처럼 순수해지고,

가슴속 가장 맑은 부분을 퍼올리고 싶게 만든다.


그림 그리기 전의 도화지, 빈 페이지의 색이

어떤 다채로운 색도 빚지 못하는 감성과 정취를 자아낸다.


예전엔 화려하고 복잡한 것을 동경했다.

색깔이 화려하고 장식이 특이한 옷에 눈이 갔고,

색다른 레시피에 다양한 양념과 자극적인 향신료가 들어간 음식이 맛있었다.


시간의 나이테가 굵어지니

맛있는 음식은 복잡한 레시피로 만든 음식이 아니라

신선한 재료 본연의 맛을 살린 음식이라는 걸 알게 됐다.

갈고, 볶고, 튀긴, 소리가 요란한 음식대신

통과일, 통곡물, 찐 고기와 야채처럼 소리가 조용한 음식이 씹을수록 더 깊은 맛을 낸다는 걸 느꼈다.


내가 살던 작은 동네보다 건물이 빽빽한 서울에 살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사람이 우글대는 명동에 가고 싶었고,

고막이 가출할 듯 음악이 쿵쾅대는 나이트클럽에 가는 것도 재밌었다.

그러다 점점,

화려함과 복잡함 뒤에 붙어 있는 허무함과 공허함을 느끼기 시작했다.

건물과 사람사이에 있으면 내가 묻혔다.

나는 보이지 않고, 주변만 눈에 들어왔으며,

나는 작아지고, 주변만 크게 느껴졌다.


그래서 숲길로 갔다.

소음과 사람이 북적이는 곳보다

녹음과 사유가 스며드는 곳이 편안해졌다.


고요한 나무 사이에 서 있으면 나무가 가지를 뻗어 나를 바라봐주는 느낌이 들었다.

자꾸 나를 들여다보게 됐다.

고요한 단숨함이 내면을 간질였다.


시대를 관통해 사람들에게 기억되는 문장에도 단순함이 담긴다.

단순함은 폐부를 찌르는 듯 강렬한 힘을 준다.

너 자신을 알라. -소크라테스-

이 또한 지나가리라. -페르시아 격언-

지금 이 순간을 즐겨라(카르페 디엠) -호라티우스(고대 로마 시인)-

생각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 -폴 부르제-

누구도 반박하기 힘든 지혜는 단순함으로 더 빛난다.

누군가의 긴 연설, 혹은 변명은 듣기 힘들다.

그런 말을 듣고 있으면 속으로 생각한다.

"그래서 결론이 뭔데? 하고 싶은 말이 뭐냐고."


지치고 힘든 사람이 듣고 싶은 말은 긴 설교나 변명이 아니라 진심을 담은 한 마디이다.


나는 네가 참 고마워.

내가 너 좋아하는 거 알지?

더 좋은 방법이 있을 것 같은데 같이 찾아보자.

단순함은

아름답고 유익하다.

오래 기억되고, 깊이 울린다.

그래서 내면의 나를 바라보게 한다.


'Be simple'를 품고 살면 'Be yourself'가 된다.

하얀색이 마음을 무장해제 시키듯,

재료 본연의 맛이 더 깊은 맛을 내듯,

고요한 숲이 시끄러운 세상을 잠재우듯,

단순함은 내면의 나를 꺼낸다.

포장지와 허물을 벗고 알맹이가 드러나게 한다.


삶은 단순하게 태어나

복잡함을 추구하다

다시 단순함으로 가는 여정이다.


그 단순함의 길이 나다움으로 가는 길을 안내한다.


월, 목, 토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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