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날에는 성공이 높은 곳에 있는 줄 알았다. 그곳까지 가려면 당연히 오르막을 걸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남들이 쉬는 시간에 조금 더 일하고, 모르는 것이 있으면 공부하고, 한번 시작한 일은 어떻게든 결과를 만들어야 했다. 힘든 것은 당연했다. 숨이 차야 오르고 있는 것 같았고, 버거워야 제대로 살고 있는 것 같았다. 지금 생각하면 나는 꽤 오랫동안 힘듦을 성실함의 증거처럼 여기며 살았던 것 같다.
오르막에서는 뒤를 잘 돌아보지 않는다
산에서 가파른 오르막을 만날 때가 있다. 고개를 들면 끝이 보이지 않는다. 그럴 때는 먼 곳을 보지 않는다. 발 앞의 돌 하나를 보고 오른다. 한 걸음. 다시 한 걸음. 숨이 차오르면 잠시 멈추었다가 다시 걷는다. 삶의 오르막도 비슷했다. 해야 할 일이 눈앞에 있으면 그것부터 해냈다. 일이 막히면 방법을 찾았고, 부족하면 공부했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건너왔다. 오르막에서는 뒤를 돌아볼 여유가 별로 없다. 지나온 길보다 남은 길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나 역시 그랬다.
‘여기까지 왔구나’보다 ‘이제 어디까지 가야 하지?’를 더 자주 생각했다. 하나를 이루면 기뻤지만, 그 기쁨은 오래 머물지 않았다. 다음 일이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성공은 도착지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하나를 이루고 나면 그곳은 또 다른 출발점이 되어 있었다.
“조금만 더”
성공을 향해 살아갈 때 가장 자주 사용하는 말이 있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공부하면 된다. 조금만 더 견디면 된다. 조금만 더 성장하면 여유가 생길 것이다. 그 말은 힘들 때 나를 일으켜 세웠다. 포기하고 싶을 때 다시 바카라상에 앉게 했고, 일이 어려울 때 한 번 더 방법을 찾게 했다. 그러니 ‘조금만 더’라는 마음을 탓하고 싶지는 않다. 문제는 그 말에 마침표가 없었다는 것이다. 조금 더 뒤에는 또 조금 더가 있었다. 산이라면 정상석이라도 있지만 삶의 성공에는 정상석이 없었다. 어디까지 가야 성공인지 아무도 정확히 알려주지 않았다.
결국 내가 멈추지 않으면 오르막은 계속되었다. 성공에는 박수보다 보이지 않는 손이 많았다 무엇인가 잘되었을 때 사람들은 결과를 본다. 합격증을 보고, 직함을 보고, 완성된 일을 보고, 성장한 회사를 본다. 하지만 결과 하나가 만들어지기까지 얼마나 많은 손이 그 아래에 놓여 있었는지는 잘 보이지 않는다.
나 역시 내 노력으로 여기까지 왔다고 생각했던 때가 있었다. 물론 내가 걸어야 할 길은 내가 걸었다. 밤늦게 바카라을 펼친 것도 나였고, 결정해야 할 순간에 선택한 것도 나였다. 그러나 오래 지나 돌아보니 내 발로만 걸어온 길은 아니었다.
가족이 기다려주었다. 함께 일한 사람들이 자기 자리에서 몫을 감당해주었다. 누군가는 내가 모르는 것을 알려주었고, 누군가는 실수할 때 말없이 뒤를 받쳐주었다. 어떤 사람은 떠났지만 그가 남긴 경험이 다음 일을 가능하게 했다. 성공의 정상석에는 한 사람의 이름이 새겨질 수 있지만, 정상까지 이어진 길에는 수많은 사람의 발자국이 포개져 있었다. 그 사실을 조금 늦게 알았다.
정상에서는 오래 살 수 없다
산 정상에 오르면 기분이 좋다. 멀리 능선이 펼쳐지고, 힘들게 올라온 길이 발아래 놓인다. 사진도 찍는다. 그런데 아무리 경치가 좋아도 정상에서 계속 살 수는 없다. 바람이 거세기도 하고, 해가 지기 전에 내려가야 한다. 정상은 머무는 곳이 아니라 잠시 바라보는 곳이다.
성공도 닮았다. 합격의 기쁨은 오래가지 않는다. 큰일 하나를 마쳤다고 인생이 완성되지 않는다. 직함도 영원하지 않다. 오늘 내가 앉아 있는 자리에는 언젠가 다른 사람이 앉는다. 젊은 날에는 정상에 오르는 법을 배우느라 바빴다. 나이가 들면서는 정상에 도착한 뒤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생각한다. 오래 차지할 것인가. 아니면 다음 길을 준비할 것인가.
노자는 『도덕경』에서 반복해서 공을 이루고도 그 공에 머물지 않는 태도를 말한다.
功成而弗居 (공성이불거).
공을 이루되 거기에 머물지 않는다.
젊은 날에는 이 말이 쉽게 이해되지 않았다. 애써 이루었는데 왜 머물지 말라는 것인가. 내가 한 일을 인정받고 싶은 것은 당연하지 않은가.
살아보니 조금 알 것 같다. 노자는 성취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었다. 성취를 자기 존재 전체로 만들지 말라는 뜻에 더 가까웠다. 성공한 일이 ‘나’의 일부일 수는 있어도 성공이 곧 ‘나’는 아니다. 직함이 사라졌다고 내가 사라지는 것도 아니고, 실패했다고 한 사람의 가치까지 실패하는 것도 아니다.
성공과 나 사이에 작은 틈 하나를 남겨두는 것. 그래야 성공을 내려놓을 때 나까지 무너지지 않는다.
오르막이 내게 준 것
그렇다고 성공을 향해 달려온 날들을 후회하지 않는다. 오르막은 나를 단련했다. 힘든 일을 견디는 법을 배웠고, 모르면 배우는 습관도 얻었다. 실패하면 다시 시작하는 힘도 생겼다. 무엇보다 내가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를 시험해볼 수 있었다. 그러므로 성공을 향한 욕망은 내 삶에서 없애야 할 흉터가 아니다. 그것 역시 나를 여기까지 데려온 힘이었다.
다만 이제는 성공을 조금 다르게 바라보고 싶다. 성공은 다른 사람보다 높은 곳에 서는 것만이 아니다. 어제의 나보다 조금 넓어지는 것. 모르던 것을 배우는 것. 내가 가진 기술과 경험을 다음 사람에게 건네는 것. 그리고 때가 되었을 때 내가 차지했던 자리를 기꺼이 비울 수 있는 것. 그것도 성공의 한 모습이지 않을까.
산에서 정상에 도착하면 나는 잠시 뒤를 돌아본다. 내가 지나온 길이 보인다. 힘들었던 오르막도 멀리서 보면 풍경의 일부가 되어 있다. 그때 생각한다. 저 길이 없었다면 이곳에도 없었을 것이다. 삶도 마찬가지다. 힘들었던 시간, 실패했던 시험, 뜻대로 되지 않았던 일, 돌아가야 했던 길. 그것들도 모두 내 삶의 오르막이었다.
그러니 성공한 순간만을 내 삶이라고 부르고 싶지 않다. 성공은 정상에 찍힌 한 장의 사진이 아니라 그곳까지 오르며 내가 어떤 사람이 되어갔는가에 더 가까운 것인지도 모른다.
이제 나는 성공이라는 이름의 오르막을 조금 천천히 바라본다. 높이보다 깊이를, 도착보다 과정을, 박수보다 함께 걸었던 사람을 생각하면서. 그리고 언젠가 또 새로운 오르막을 만난다면 여전히 걸어갈 것이다.
다만 예전처럼 정상만 바라보지는 않을 것이다. 오르는 동안에도 내 삶은 이미 지나가고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