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멈추는 일을 잘하지 못했다. 일 하나가 끝나면 다음 일을 생각했고, 시험 하나를 치르면 또 다른 공부가 눈에 들어왔다. 해야 할 일이 없으면 오히려 마음이 어색했다. 쉬고 있으면서도 무엇인가 해야 할 것 같았다. 가만히 앉아 있으면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오랫동안 나는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에서 안심을 얻었던 사람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살아가다 보면 내 뜻과 상관없이 멈추어야 할 때가 온다. 일이 막힐 때도 있고, 기다려야 할 때도 있으며, 몸이 먼저 쉬어가자고 말할 때도 있다.
처음에는 그런 시간이 답답했다. 나중에야 알았다. 멈춘 시간에도 삶은 흐르고 있었다. 멈춤은 빈 시간이 아니었다 산길을 오르다 숨이 차면 바위에 앉는다. 처음에는 쉬는 시간이 아깝게 느껴질 때도 있었다. ‘조금만 더 가서 쉬자.’ 그러며 몸을 밀어붙였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쉬는 법도 산행의 일부라는 것을 배웠다. 배낭을 내려놓고 물을 한 모금 마신다. 거칠었던 숨이 조금씩 잦아든다.
그때 신기한 일이 생긴다. 걷고 있을 때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인다. 나무 사이로 흘러가는 구름. 바위에 붙은 작은 이끼. 어디선가 들려오는 새소리. 내가 올라온 능선. 아까는 발밑만 보고 걷느라 몰랐던 풍경이다. 풍경이 갑자기 생긴 것은 아니다. 내가 멈추었기 때문에 비로소 들어온 것이다.
삶에도 그런 것들이 있었다. 바쁠 때는 잘 보이지 않았던 사람. 늘 곁에 있어서 고마운 줄 몰랐던 사람. 내가 일하는 동안 자기 자리에서 묵묵히 기다려준 사람. 힘든 줄 알면서도 말하지 않았던 가족. 함께 일하며 내 부족한 곳을 채워준 동료. 앞만 보고 갈 때는 그들이 배경처럼 있었다. 멈추어 돌아보니 배경이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이 사실은 내 삶을 받치고 있던 풍경이었다.
고마움은 참 이상하다. 받는 순간보다 지나고 나서 더 크게 느껴질 때가 있다. 그때 한마디 할걸. 그때 밥 한 끼 살걸. 그때 조금 더 들어줄걸. 그래서 감사에는 너무 늦지 않은 시간이 필요하다.
빈틈이 있어야 숨을 쉰다
우리는 일정을 채우는 데 익숙하다. 하루를 촘촘하게 쓰면 잘 산 것 같고, 빈 시간이 생기면 무엇인가 놓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너무 꽉 찬 하루에는 생각이 들어올 자리가 없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내 생각으로 마음을 가득 채우면 다른 사람의 말이 들어오기 어렵다. 내가 옳다는 확신으로 꽉 차 있으면 새로운 생각이 앉을 의자가 없다.
노자는 『도덕경』 제11장에서 수레바퀴와 그릇과 방을 이야기한다. 그릇은 흙으로 만들지만 그 안의 빈 곳 때문에 쓸 수 있고, 방은 벽을 세우지만 그 가운데 비어 있는 공간 때문에 사람이 머물 수 있다고 했다.
有之以爲利 無之以爲用(유지이위리 무지이위용).
있는 것은 이로움을 주지만, 없는 것은 쓰임을 만든다.
젊은 날에는 ‘없음’보다 ‘있음’에 마음이 갔다. 무엇을 더 배우고, 무엇을 더 갖고, 무엇을 더 이루었는지가 중요했다. 이제는 빈자리의 쓸모를 조금 알 것 같다. 삶에는 채우지 않아야 사용할 수 있는 자리도 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오후
가끔 아무 일정도 없는 오후가 생긴다. 예전 같으면 무엇인가 할 일을 찾았을 것이다. 바카라을 펼치거나, 일을 정리하거나, 다음 계획을 세웠을 것이다. 요즘은 때때로 그냥 창밖을 바라본다. 햇빛이 조금씩 옮겨가는 것을 본다. 차를 한 잔 마신다. 별일 없는 시간이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런 날 마음 깊은 곳에서 오래된 생각 하나가 떠오르기도 한다. 미뤄두었던 문장이 생각나고, 오랫동안 연락하지 않은 사람이 떠오르기도 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마음속에서는 무언가 정리되고 있었다. 그때 알게 된다. 쉼은 삶에서 빠져나온 시간이 아니라 삶이 제자리로 돌아오는 시간일 수도 있다는 것을.
멈춤과 포기는 다르다 나는 여전히 움직이고 싶다. 배우고 싶고, 시험에도 도전하고 싶다. 새로운 일을 만나면 궁금하고, 글도 계속 쓰고 싶다. 그러니 멈춤을 삶의 의욕을 내려놓는 일로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오래 가기 위해 필요한 호흡이라고 생각한다. 쉼표가 있다고 문장이 끝나는 것은 아니다. 쉼표 뒤에서 문장은 다시 이어진다. 산에서도 잠시 쉬었다고 정상에 가지 않는 것이 아니다. 숨을 고른 뒤 다시 일어나면 된다. 그래서 이제는 멈추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으려 한다. 멈춤은 포기의 반대편에 있는 것이 아니라 지속의 한가운데에 있을 수 있다.
노자의 무위(無爲)도 이런 삶의 장면에서 조금씩 이해된다. 무위는 손을 놓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게으름이 아니다. 모든 것을 내 힘으로 밀어붙이지 않는 것. 때로는 기다리고, 흐름을 살피고, 내가 개입하지 않아야 할 순간을 알아보는 것이다. 농부가 씨앗을 심은 뒤 매일 땅을 파헤쳐 싹이 났는지 확인하지 않듯, 삶에도 기다려야 자라는 것이 있다. 사람도 그렇다. 일도 그렇다. 나 자신도 그렇다. 성장에는 노력만큼 기다림도 필요하다.
그 단순한 사실을 나는 오래 지나서야 배웠다. 멈추자 내 목소리가 들렸다 바쁘게 살아갈 때는 세상의 목소리가 크게 들린다. 더 해야 한다. 더 가져야 한다. 뒤처지면 안 된다. 지금보다 나아져야 한다. 그 목소리를 따라가느라 정작 내 마음이 무엇을 원하는지는 묻지 못할 때가 있다. 그러다 멈추면 작은 목소리가 들린다.
‘나는 정말 이것을 원하는가.’
‘왜 이렇게 서두르고 있지.’
‘이 일은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해 하는 것인가.’
‘나는 지금 행복한가.’
쉬운 질문 같지만 답하기 어렵다. 아마 너무 오래 묻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멈춤은 세상의 소리를 조금 낮추고 내 안의 작은 소리를 듣는 시간이었다. 산길에서 쉬었다 다시 일어난다. 배낭을 메고 몇 걸음 걸으면 아까보다 몸이 가볍다. 정상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다. 내가 잠시 멈추었다고 산이 사라진 것도 아니고, 길이 없어지지도 않았다. 그 사실이 묘하게 마음을 편안하게 한다. 세상도 내가 잠시 쉰다고 멈추지 않는다. 어쩌면 그것이 다행이다. 모든 것을 내가 붙잡고 있지 않아도 세상은 제 몫의 속도로 흘러간다.
이제는 가끔 멈추어도 괜찮다고 나 자신에게 말한다. 차 한 잔을 마시고, 창밖을 바라보고, 사람의 말을 조금 더 오래 듣고, 산길에서 숨이 차면 바위에 앉는다. 그렇게 멈추면 전에 없던 것이 생기는 것이 아니다. 늘 곁에 있었지만 바빠서 보지 못했던 것들이 제 모습을 드러낸다. 고마운 사람. 내가 가진 것. 지나온 길. 그리고 너무 오래 앞만 보고 걷느라 놓치고 있었던 나 자신.
살아보니, 멈춤은 뒤처지는 일이 아니었다. 삶이 나를 따라올 때까지 잠시 기다려주는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