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이 가지면 행복할 줄 알았다

by진경수

젊은 날의 행복에는 자꾸 숫자가 붙었다. 월급이 얼마인지, 집은 얼마나 넓은지, 사업은 얼마나 성장했는지, 통장에는 얼마가 있는지. 숫자가 커지면 삶도 함께 넉넉해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조금 더 가지려고 했다. 필요해서 가진 것도 있었고, 가족을 위해 마련한 것도 있었다. 더 나은 생활을 꿈꾸는 마음도 있었다. 그 마음은 자연스러웠다. 가난이나 부족함을 아름답게 말할 생각은 없다. 삶에는 돈이 필요하고, 안정된 생활은 사람에게 선택할 수 있는 여유를 준다.


다만 살아보니 한 가지가 이상했다. 가진 것이 늘어났는데 걱정까지 함께 줄어드는 것은 아니었다.



하나를 가지면 하나가 더 보였다


처음에는 이것만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것을 얻는다. 며칠은 기쁘다. 그러다 익숙해진다. 그러면 조금 더 좋은 것이 보인다. 사람의 욕망에는 참 놀라운 적응력이 있다. 어제의 소원이 오늘의 일상이 되고, 오늘의 만족은 내일의 기준이 된다. 그래서 소유에는 끝이 잘 보이지 않는다.


집이 생기면 더 좋은 집이 보이고, 차를 바꾸면 더 좋은 차가 눈에 들어온다. 사업이 성장하면 성장한 만큼 새로운 걱정도 따라온다. 더 가지게 되면 마음도 그만큼 넉넉해질 줄 알았는데, 오히려 지켜야 할 것이 많아지기도 했다. 소유는 때로 든든한 울타리가 되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내가 지켜야 하는 또 하나의 짐이 되기도 한다.


노자는 『도덕경』 제9장에서 묻는다.

持而盈之 不如其已(지이영지 불여기이).

가득 채운 채 계속 붙들고 있으려는 것보다 적당한 때 멈추는 편이 낫다는 뜻으로 읽힌다.


젊은 날에는 ‘멈춘다’는 말이 마음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멈추면 뒤처질 것 같았다. 할 수 있는데 왜 멈추는가. 더 성장할 수 있는데 왜 만족하는가. 하지만 이제는 ‘멈춤’이 포기와 같은 말이 아니라는 것을 조금 알 것 같다. 멈춤은 내가 가진 것의 크기를 비로소 바라보는 시간일 수 있다. 계속 다음 것만 바라보면 이미 내 손에 들어온 것은 풍경에서 사라진다. 행복은 자꾸 미래형이었다 생각해보면 나는 행복을 자주 뒤로 미뤘다.


‘이 일만 끝나면.’

‘조금만 더 자리 잡으면.’

‘이것만 이루고 나면.’


그러나 ‘이것’ 뒤에는 늘 또 다른 ‘이것’이 기다리고 있었다. 행복은 계속 다음 정거장으로 밀려났다. 그동안 지금은 준비 기간이 되었다. 오늘은 내일을 위해 견디는 날이 되고, 이번 달은 다음 달을 위해 버티는 시간이 되었다.


그렇게 살다 문득 돌아보니 인생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차지하는 것은 특별한 성공의 순간이 아니었다. 평범한 날들이었다. 아침에 눈을 뜨는 것. 누군가와 밥을 먹는 것.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것. 바카라 한 권을 펼치는 것. 산길에서 바람을 만나는 것. 사랑하는 사람의 목소리를 듣는 것. 그런 날들이 삶의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나는 삶의 대부분을 ‘아직’이라고 부르며 지나온 것은 아니었을까.



가진 것보다 누리는 것이 어려웠다


많이 가진 사람과 잘 누리는 사람은 같지 않았다. 좋은 집에 살면서도 마음 편히 쉬지 못할 수 있고, 좋은 음식을 앞에 두고도 걱정 때문에 맛을 느끼지 못할 수 있다. 반대로 소박한 식탁에서도 마음 편한 사람과 함께라면 오래 기억되는 저녁이 된다. 결국 삶의 풍요는 소유한 물건의 개수만으로는 셀 수 없었다. 가진 것은 손에 있지만, 누리는 것은 마음에서 일어났다. 이 차이를 아는 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노자는 제12장에서 지나친 감각의 욕망을 경계하고, 제33장에서는 아주 짧고도 묵직한 말을 남긴다.

知足者富(지족자부).

족함을 아는 사람이 부유하다.


예전에는 이 말을 ‘적당히 만족하며 살라’는 정도로 읽었다. 이제는 조금 다르게 읽는다. 지족은 더 가지지 말라는 명령이 아니라 이미 내게 와 있는 것을 알아보는 능력에 가깝지 않을까. 가족이 곁에 있는데도 더 큰 성공만 바라본다면 나는 이미 가진 행복을 보지 못하는 것이다. 건강하게 걸을 수 있는데도 더 높은 자리만 생각한다면 내 두 다리가 주는 자유를 잊고 있는 것이다.


배울 수 있고,

일할 수 있고,

글을 쓸 수 있고,

좋아하는 산을 걸을 수 있다는 것. 평범해서 잘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사실은 꽤 귀한 재산이었다.



오래된 물건이 가르쳐준 것


나이가 들면서 새것보다 오래된 물건에 마음이 갈 때가 있다.


손때 묻은 바카라.

오랫동안 사용한 펜.

가죽이 헤져서 허름한 낡은 브리프케이스.

몇 해의 산길을 함께 걸어 밑창이 닳은 등산화.


새것처럼 반짝이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 안에는 시간이 들어 있다. 돈으로 처음 살 때는 물건이었지만 함께 오래 지내고 나면 이야기가 된다. 그래서 삶의 풍요는 새것을 계속 들여놓는 데서만 생기지 않는다. 오래 곁에 있는 것의 값을 알아보는 데서도 생긴다.


사람은 더 그렇다. 오래된 친구. 오랫동안 함께 살아온 가족. 나의 젊은 날을 기억하는 사람. 그들은 돈으로 살 수 없는 내 삶의 오래된 풍경이다. 그런데 가까이 있다는 이유로 그 귀함을 잊을 때가 많았다.



이제 나는 욕심 없이 살겠다고 말하지 않는다. 여전히 해보고 싶은 일이 있다. 공부하고 싶고, 새로운 시험에도 도전하고 싶으며, 일에서도 좋은 결과를 만들고 싶다. 가보고 싶은 곳도 있고, 갖고 싶은 것도 생긴다. 욕망이 완전히 사라진 삶을 바라지도 않는다. 다만 욕망에게 내 삶의 운전대를 전부 맡기고 싶지는 않다. 더 가지고 싶은 마음과 이미 가진 것을 고마워하는 마음이 함께 있었으면 좋겠다.


앞으로 갈 줄도 알지만 멈추어 둘러볼 줄도 아는 것. 그 정도의 균형이면 좋겠다. 가끔 산에서 배낭을 내려놓는다. 어깨를 짓누르던 무게가 사라지면 몸이 갑자기 가벼워진다. 그 순간 이상하게 웃음이 난다. 배낭 속 물건은 그대로인데 내가 잠시 내려놓았을 뿐이다. 삶도 그럴 때가 있다. 꼭 버려야만 가벼워지는 것은 아니다. 잠시 내려놓는 것만으로도 비로소 알게 되는 무게가 있다. 무엇을 더 넣을 것인가만 생각했던 삶에서 이제는 묻고 싶다. 이것은 정말 필요한가. 나는 이것을 가진 것인가, 아니면 이것이 나를 붙들고 있는가.


그리고 무엇보다, 지금 내게 있는 것들을 나는 제대로 바라보고 있는가. 젊은 날에는 많이 가지면 행복할 줄 알았다. 살아보니 행복에는 다른 셈법도 있었다. 더하는 것만으로 커지는 것이 아니었다. 때로는 덜어내야 넓어졌고, 멈추어야 보였으며, 평범한 것의 귀함을 알아차릴 때 비로소 마음이 넉넉해졌다.


그래서 이제 ‘부자’라는 말을 조금 다르게 읽는다. 많이 가진 사람보다, 자신에게 이미 와 있는 것을 알아보는 사람. 그 사람이 어쩌면 가장 넉넉한 사람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나는 이제야 조금씩, 내가 가진 것들의 이름을 천천히 불러보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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