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을 오르는 동안에는 정상만 바라본다. 가파른 오르막을 만나면 숨이 차고, 다리가 무거워진다. 그래도 조금씩 올라간다. 마침내 정상석이 보인다. 사진을 찍고 주변을 바라본다. 힘들게 올라온 만큼 그 자리를 오래 누리고 싶다. 하지만 산을 아는 사람은 안다. 정상은 머무는 곳이 아니라 지나가는 곳이라는 것을. 조금 쉬었으면 다시 배낭을 메어야 한다. 내려가야 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산행에서는 정상에 오르는 것보다 하산길에서 더 조심해야 할 때가 많다. 올라갈 때는 온 힘을 다해 발을 디디지만 내려올 때는 길이 쉬워 보인다는 생각에 긴장이 풀리기 때문이다.
인생의 자리도 그렇고 리더의 자리도 그렇다. 올라가는 법은 많이 배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잘 내려오는 법은 좀처럼 배우지 않는다.
『도덕경』 제9장은 가득 채우려는 인간의 욕망을 경계한다.
持而盈之, 不如其已. (지이영지 불여기이)
가득 채운 채 계속 붙들고 있으려 하기보다 그만두는 것이 낫다는 뜻으로 읽을 수 있다.
또 날카롭게 벼리고 또 벼리면 오래 보존하기 어렵고, 금과 옥이 방에 가득하면 그것을 끝까지 지키기 어렵다고 노자는 말한다. 그리고 마지막에 유명한 문장을 남긴다.
功遂身退, 天之道. (공수신퇴 천지도)
공을 이루었으면 몸을 물리는 것, 그것이 하늘의 도라는 뜻이다.
나는 이 문장을 읽을 때마다 ‘身退’에서 오래 머물게 된다. 물러난다는 것. 리더에게 이보다 어려운 공부가 얼마나 있을까.
이루는 것보다 놓는 것이 어려웠다
사업을 시작할 때는 가진 것이 많지 않다. 그래서 잃을 것도 많지 않다. 도전한다. 실패하면 다시 시작한다. 하지만 조직이 성장하면 달라진다. 내가 만든 회사, 내가 시작한 사업, 내가 세운 제도, 내가 키운 사람. 하나씩 ‘내 것’이라는 마음이 붙는다. 그러다 보면 처음에는 회사를 위해 일했던 사람이 어느 순간 자신의 방식과 자리를 지키기 위해 회사를 붙잡는 역전이 생길 수도 있다. 리더는 물어야 한다.
“나는 아직 조직에 필요해서 이 일을 하는가, 아니면 이 일을 놓기가 어려워서 하고 있는가?”
둘은 겉으로는 비슷해 보여도 전혀 다른 문제다. 리더의 자리는 소유물이 아니다 오랫동안 한 자리에 있으면 그 자리가 자신의 일부처럼 느껴진다. 사람들이 찾아오고, 보고하고, 결재를 기다리고, 중요한 순간마다 의견을 묻는다. 그 과정에서 직바카라과 자신을 구별하기 어려워질 수 있다. 그러나 직바카라은 사람에게 잠시 맡겨진 역할이다. 대표도, 사장도, 회장도, 팀장도 결국 역할의 이름이다. 오늘 내가 앉아 있는 의자에는 어제 다른 사람이 앉았을 수도 있고, 언젠가는 또 다른 사람이 앉게 된다.
그래서 리더는 재임 중에도 가끔 자신의 이름에서 직바카라을 떼어보아야 한다. 직바카라이 없는 나는 누구인가. 이 질문에 답할 수 있어야 언젠가 자리를 내려놓는 일이 존재의 상실이 되지 않는다. 가장 성공했을 때 떠나는 것이 가장 어렵다 실패해서 물러나는 것은 아프다. 그러나 어떤 의미에서는 이유가 분명하다. 더 어려운 것은 잘되고 있을 때다. 사람들이 나를 필요로 하고, 성과가 좋고, 내 판단이 여전히 영향력을 가질 때. 바로 그때 ‘身退’를 생각하기는 어렵다.
“아직 내가 할 일이 많다.”
그 말도 사실일 수 있다. 그러나 노자의 功遂身退(공수신퇴)는 성공을 부정하는 문장이 아니다. 오히려 성공했기 때문에 묻는다.
“이제 그 성공을 붙잡지 않고 다음 사람에게 넘길 수 있는가?”
공을 이루는 능력과 공에서 떠나는 능력은 서로 다른 능력이다. 내려온다고 산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정상에서 내려온다고 내가 올랐던 산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걸어온 길도 사라지지 않는다. 리더도 마찬가지다. 자리를 내려놓는다고 자신이 이룬 것이 모두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좋은 기술을 남겼다면 기술이 이어진다. 좋은 사람을 키웠다면 사람이 남는다. 좋은 문화를 만들었다면 문화가 이어진다. 신뢰를 쌓았다면 이름이 없어도 그 신뢰의 방식이 남는다.
오히려 리더가 떠난 뒤 무엇이 남는지를 보면 그 사람이 정말 무엇을 만들었는지 더 선명하게 드러난다. 잘 내려오는 것도 리더의 바카라임이다 산에서는 하산까지가 산행이다. 정상석에서 사진을 찍었다고 산행이 끝난 것이 아니다. 나는 이 말을 리더십에도 그대로 가져오고 싶다.
승계까지가 경영이다. 내가 잘하는 동안만 조직이 잘되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다음 사람이 들어올 수 있도록 자리를 준비하고, 권한을 넘기고, 관계를 연결해 주고, 자신에게 집중되어 있던 정보를 나누며, 실패할 기회까지 허락해야 한다. 그 과정까지 마쳤을 때 비로소 한 사람의 리더십이 완결된다.
몸은 내려왔지만 마음은 여전히 정상에 남아 있을 수 있다. 후임자가 결정을 내릴 때마다 전화하고, 자신이 하던 방식과 비교하며, 직원들이 여전히 자신에게 보고하기를 기대한다. 그러면 후임자는 이름만 리더일 뿐 자기 리더십을 만들기 어렵다.
진짜 身退에는 공간적 퇴장이 아니라 영향력을 스스로 줄이는 과정도 포함될 수 있다. 도움을 요청하면 경험을 나누되, 결정은 대신하지 않는다. 물어보면 조언하되, 내 방식대로 하라고 요구하지 않는다.
그리고 어느 순간에는 조언조차 줄인다. 후임자의 판단이 자랄 공간을 남겨주기 위해서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중요한 일 가운데 하나를 골라보자. 그리고 물어보자.
“이 일을 내가 하지 않으면 누가 할 수 있는가?”
아무도 떠오르지 않는다면 그것은 내 능력의 증거일 수도 있지만 동시에 조직의 위험 신호일 수도 있다. 그다음 질문이 더 중요하다.
“그 사람이 할 수 있도록 나는 무엇을 넘겨주어야 하는가?”
업무만 넘겨서는 부족하다. 정보와 권한, 실패할 기회, 그리고 무엇보다 신뢰를 넘겨주어야 한다.
나는 내가 없어도 되는 일을 여전히 붙잡고 있지는 않은가?
사람들이 나를 필요로 하는 것을 나의 리더십 성과라고 착각하고 있지는 않은가?
리더십의 품격은 얼마나 높은 자리까지 올라갔는가 보다, 때가 되었을 때 얼마나 잘 내려올 수 있는가에서 드러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