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없어도 돌아가는 조직을 만들 수 있을까

by진경수

대표가 없는 날


어느 날 리더가 자리를 비웠다. 출장일 수도 있고 휴가일 수도 있다. 그날 예상하지 못했던 문제가 생긴다. 직원들이 말한다.


“대표님께 전화해야 하지 않을까요?”


누군가는 기다린다. 결정을 미룬다. 리더가 돌아올 때까지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이런 조직에서 리더는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다른 장면도 상상해 볼 수 있다. 문제가 생겼다. 담당자들이 모인다. 각자 가진 정보를 내놓는다. 바카라임자가 기준을 확인하고 결정한다. 필요한 조치를 한 뒤 결과를 기록한다. 리더가 돌아온 다음 보고한다.


“이런 일이 있었고, 이렇게 판단해서 처리했습니다.”


두 번째 조직에서 리더는 덜 중요해 보인다.


그러나 나는 묻고 싶다. 어느 쪽이 더 좋은 리더가 만든 조직일까.



노자가 그린 최고의 리더


『도덕경』 제17장은 리더십을 이야기할 때 빼놓기 어려운 장이다. 노자는 지도자의 모습을 여러 단계로 보여준다.


太上, 不知有之. (태상, 부지유지)

가장 좋은 지도자는 사람들이 그가 있다는 정도만 안다는 뜻으로 읽을 수 있다.


그다음은 사람들이 가까이하고 칭찬하는 지도자, 그다음은 두려워하는 지도자, 마지막은 업신여김을 받는 지도자다. 그리고 좋은 지도자의 모습은 마지막 장면에서 완성된다.


功成事遂, 百姓皆謂; (공성사수, 백성개위)

我自然. (아자연)


일이 이루어지고 모든 것이 잘 마무리되었을 때 사람들이 말한다.


“우리가 스스로 그렇게 했다.”


여기서 나는 我自然이라는 말에 오래 머물고 싶다. 리더가 말하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이 말한다.


“우리가 했다.”



리더의 가장 이상한 성공


보통 성공한 리더는 자신의 존재감이 커진다.


“그 사람이 와서 회사가 달라졌다.”

“그 대표가 있었기 때문에 성공했다.”


기분 좋은 평가다. 그러나 노자는 정반대의 그림을 보여준다. 가장 좋은 리더 아래에서는 사람들의 입에서 리더의 이름보다 ‘우리’라는 말이 나온다.


“우리가 해결했습니다.”

“우리가 만들었습니다.”

“우리 방식으로 해냈습니다.”


리더의 존재감은 줄었는데 조직의 주인의식은 커진다. 그래서 노자의 리더십에는 묘한 역설이 있다. 좋은 리더일수록 자신의 중요성을 줄여간다.


“대표님이 결정해 주십시오”


리더에게는 듣기 좋은 말일 수 있다. 결정권을 인정받는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말이 너무 자주 들린다면 한 번쯤 돌아봐야 한다. 왜 사람들은 스스로 결정하지 못하는가. 권한이 없는가. 기준을 모르는가. 실패했을 때 바카라임만 지게 될까 두려운가. 아니면 리더가 평소 모든 결정을 뒤집어왔기 때문에 스스로 판단하는 것을 포기한 것인가.


조직의 의존성은 직원들의 능력 부족에서만 생기지 않는다. 때로는 리더가 너무 잘해왔기 때문에 만들어지기도 한다. 리더가 늘 답을 주면 사람들은 답을 찾을 필요가 없어진다.



내가 없어도 돌아간다는 것의 의미


‘내가 없어도 돌아가는 조직’을 리더가 필요 없는 조직으로 이해할 필요는 없다. 좋은 조직에도 리더는 필요하다. 방향을 제시하고, 자원을 배분하고, 중대한 바카라임을 지며, 위기에서는 앞에 서야 한다.


그러나 모든 일에 리더가 필요할 필요는 없다. 일상의 판단은 현장에서 이루어지고, 문제는 가장 잘 아는 사람이 해결하며, 서로 다른 부서가 리더를 통하지 않고 협력하고, 사람들이 조직의 기준을 이해해 스스로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리더가 없는 것이 아니라 리더의 생각이 원칙과 문화 속으로 스며든 상태라고 할 수 있다.



답을 주는 대신 기준을 남겨라


사람에게 답을 알려주면 한 번의 문제를 해결한다. 판단의 기준을 알려주면 다음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수 있다. 그래서 리더는 점점 질문을 바꾸어야 한다.


“이렇게 하세요.”

에서,

“당신은 어떻게 생각합니까?”


그리고 다시,


“그 판단의 기준은 무엇입니까?”


마지막에는,


“좋습니다. 결정하고 결과를 알려주세요.”


처음에는 시간이 더 걸릴 수 있다. 리더가 직접 결정하면 10분이면 끝날 일을 한 시간 토론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한 시간 동안 조직에는 보이지 않는 자산이 쌓인다. 판단하는 사람이 만들어진다.



실패를 허락하지 않으면 자율도 없다


권한을 준다고 말하면서 결과가 마음에 들지 않을 때마다 리더가 개입한다면 사람들은 금방 알아차린다.


‘결국 대표님이 원하는 답이 따로 있구나.’


그러면 다시 묻게 된다.


“대표님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진짜 권한 위임에는 불편함이 따른다. 내가 했으면 다르게 했을 결정을 지켜봐야 한다. 조금 돌아가는 모습을 참아야 한다. 회복 가능한 작은 실패도 허용해야 한다. 자율은 성공할 자유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스스로 판단하고, 때로는 틀리고, 그 결과에서 배우는 자유까지 포함한다.



조직에서 리더의 이름을 조금씩 지워보라


보고서에서, 회의에서, 의사결정에서, 조금씩 리더의 이름을 빼보자.


“대표 지시사항”이 아니라 “우리의 운영원칙”으로,

“대표님 생각”이 아니라 “고객과 품질을 위한 기준”으로,

“대표가 결정했다”가 아니라 “담당자가 기준에 따라 판단했다”로 바꾸어보자.


리더 한 사람의 의지가 조직의 공동 기준으로 바뀌어야 한다. 그래야 사람이 바뀌어도 조직은 이어진다.



내가 없어야 보이는 것이 있다


리더가 정말 자신이 만든 조직을 알고 싶다면 가끔 자리를 비워보는 것도 한 방법이다.


내가 없는 회의는 어떻게 진행되는가. 문제가 생기면 누구를 찾는가. 서로 직접 이야기하는가. 결정을 미루는가. 문제가 해결된 뒤 바카라임을 서로 미루는가. 아니면 자연스럽게 누군가 앞으로 나서는가.


리더가 있을 때는 보이지 않던 조직의 실제 힘이 리더가 없을 때 드러난다. 자리를 비우는 것은 단순한 휴식이 아니다. 때로는 조직의 자립도를 확인하는 시험이 된다.



리더가 가장 듣고 싶은 말이 달라져야 한다


젊은 리더 시절에는 이런 말을 듣고 싶을 수 있다.


“대표님 덕분입니다.”


시간이 지나면 조금 다른 말을 듣고 싶어진다.


“우리 팀이 해냈습니다.”


그리고 언젠가는 가장 반가운 말이 이것이어야 하지 않을까.


“걱정하지 마십시오. 저희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처음에는 조금 섭섭할 수도 있다. 더 이상 나를 찾지 않는다. 내가 없어도 회의가 잘 돌아간다. 내가 모르는 결정도 생긴다. 하지만 그것이 바로 그동안 사람을 키워온 이유가 아니었을까.



26-01 - 대표가 없으면 멈추는 조직.png


26-02 - 대표가 없어도 움직이는 조직.png




내가 리더라면


앞으로 한 달 동안 내가 결정하지 않아도 되는 일 세 가지를 찾아보자. 사람을 정하고, 권한을 넘기고, 판단 기준을 설명한 뒤, 한 걸음 물러나보자.


그리고 결과보다 먼저 이것을 살펴보자. 그 사람이 스스로 판단했는가. 조금 부족해도 괜찮다. 다음에는 더 나아질 수 있다. 리더가 매번 정답을 만드는 것보다 조직 안에 정답을 찾아갈 사람을 많이 만드는 것이 오래 남는다.



리더에게 묻는다


내가 한 달 자리를 비워도 우리 조직은 중요한 판단을 할 수 있는가?

사람들은 문제가 생기면 나를 먼저 찾는가, 원칙을 먼저 찾는가?



한 문장으로 남기는 노자 리더십


좋은 리더가 남기는 가장 큰 성과는 자신의 이름이 아니라, 자신이 없어도 스스로 판단하고 움직일 수 있는 사람들이다.


두 장을 지나며 리더의 마지막 일은 자신의 자리를 줄여가는 것이다


31장과 32장은 서로 다른 장처럼 보이지만 사실 하나의 길 위에 있다. 제9장의 功成名遂身退은 말한다. 이루었으면 물러날 줄 알아야 한다. 제17장의 我自然은 그다음 장면을 보여준다. 리더가 한 걸음 물러난 자리에서 사람들이 말한다.


“우리가 스스로 해냈다.”


이 둘을 연결하면 승계의 의미가 선명해진다. 승계란 어느 날 대표이사의 이름을 바꾸는 행정절차가 아니다. 오래 준비해야 하는 리더의 자기 축소 과정이다. 처음에는 내가 결정한다. 그다음에는 함께 결정한다. 그다음에는 다른 사람이 결정하도록 돕는다. 마지막에는 그들의 결정을 믿고 바라본다. 그렇게 리더의 자리는 조금씩 작아지고, 사람들의 자리는 조금씩 커진다. 그래서 좋은 승계는 갑자기 일어나지 않는다. 리더가 떠나기 오래전부터 시작된다.


산행에서도 앞장서던 사람이 어느 순간 뒤로 물러날 때가 있다. 오랫동안 길을 안내했다면 뒤따르던 사람도 이제 산길을 읽을 줄 안다. 갈림길에서 지도를 보고, 날씨를 살피고, 동료의 걸음을 확인한다. 그런데도 앞서던 사람이 계속 외친다.


“그쪽이 아니야.”

“내가 갈 때는 이쪽으로 갔어.”


그러면 선두만 바뀌었을 뿐 리더는 바뀌지 않은 것이다. 어느 순간에는 말을 줄여야 한다. 조금 다른 길로 가더라도 지켜봐야 한다. 그리고 정말 위험하지 않다면 스스로 길을 찾아보도록 두어야 한다. 그것이 믿음이다. 오랫동안 조직을 이끌어온 리더에게 가장 어려운 질문은 어쩌면 이것일 것이다.


“내가 필요하지 않은 조직을 만드는 일을 나는 기꺼이 할 수 있는가?”


평생 필요한 사람이 되고 싶어 열심히 살아왔는데, 리더십의 마지막 공부는 오히려 필요하지 않은 사람이 되어가는 것이라니 역설적이다. 하지만 정확히 말하면 사라지는 것은 리더의 가치가 아니다. 형태가 바뀌는 것이다. 직접 결정하던 사람에서 기준을 남긴 사람으로, 앞에서 끌던 사람에서 뒤에서 믿어주는 사람으로, 성과를 만드는 사람에서 성과를 만들 사람을 남기는 사람으로 바뀐다. 그때 비로소 조직은 한 사람의 능력에서 벗어난다.


그래서 나는 리더십의 완성을 화려한 정상의 장면에서 찾고 싶지 않다. 조금 다른 풍경을 떠올리고 싶다. 어느 날 전임 리더가 회사를 찾아왔다. 사람들은 반갑게 인사한다. 하지만 곧 각자의 자리로 돌아간다. 회의실에서는 새로운 리더와 젊은 직원들이 무언가를 치열하게 논의하고 있다. 공장과 현장은 평소처럼 움직인다. 누구도 전임 리더에게 결재를 가져오지 않는다. 아무도 묻지 않는다.


“어떻게 할까요?”


처음에는 조금 허전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잠시 바라보다 미소 지을 수 있다면 좋겠다.


‘잘 돌아가고 있구나.’


그리고 조용히 돌아설 수 있다면 더욱 좋겠다. 그 뒷모습이야말로 어쩌면 功遂身退일 것이다. 리더가 떠났는데도 조직에는 방향이 남아 있고, 사람이 남아 있으며, 판단하는 힘이 남아 있다. 그리고 어느 누구도 그것을 한 사람의 작품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그저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했습니다.”


그 말을 들을 수 있다면 리더의 이름이 조금 작아져도 괜찮다. 오히려 그것이야말로 한 사람의 리더십이 조직의 힘으로 바뀌었다는 가장 아름다운 증거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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