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급함은 족저근막염을 얻는다.
처음엔 먹는 것부터 줄였다. 별것 없었다. 덜 먹고, 덜 먹고, 또 덜 먹었다. 그렇게 몸에서 10킬로가 빠져나갔다. 저울 위에 올라설 때마다 숫자가 조금씩 작아졌고, 어느 날 80킬로 초반이라는 낯선 숫자와 마주쳤다. 오래 보지 못했던 숫자였다.
몸이 가벼워지면 마음도 따라 가벼워지는 모양이다. 계단을 오를 때 숨이 덜 찼고, 거울 앞에 서는 게 덜 불편해졌다. 할 수 있겠다 싶었다. 그 마음이 생기자마자, 나는 욕심을 냈다.
운동을 시작했다. 가속도를 더 내고 싶었던 것이다. 식단만으로는 하루에 0.1에서 0.3킬로그램, 저울 바늘이 간신히 움직이는 수준이었다. 그런데 운동을 얹으면 달랐다. 숫자가 눈에 띄게 줄었다. 그 맛을 알아버렸다.
알아버리면 멈추기가 어렵다.
마침 친구가 러닝을 하고 있었다. 나도 따라나섰다. 슬로우 러닝으로 시작했고, 중간중간 걷는 구간을 끼워 넣어 운동장 열 바퀴를 도는 것으로 첫날을 마쳤다. 땀이 많이 났다. 숫자도 잘 빠졌다. 그 기분이 좋았다.
그 기분이 화근이었다.
어느새 나는 더 뛰고 있었다. 머릿속에서 한 달 뒤의 내가 그려졌다. 목표가 손에 잡힐 것 같았다. 지금 생각하면 그건 숫자가 만들어낸 환상이었다. 몸이 아니라 저울을 보고 달리고 있었던 것이다.
조급함은 소리 없이 온다. 나는 그것에 절여지는 줄도 몰랐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에 발을 딛는 순간 뒤꿈치에서 날카로운 것이 올라왔다. 가시 같았다. 걸을 때마다 찔렸다. 족저근막염이었다.
그래도 나갔다. 두꺼운 양말을 덧신고, 절뚝이는 걸음으로 출근했다. 운동도 멈추지 않았다. 통증을 달래며 계속 걸었다. 버티다 보면 괜찮아질 거라 생각했다. 몸이 적응할 거라고, 조금만 더 참으면 된다고.
그런데 몸은 타협하지 않았다. 어느 순간 통증이 감당할 수 없는 선을 넘었다.
결국나는 정형외과 신세를 지고야 말았다.
안마를 받고 주사까지 맞았다.
일주일 동안 운동은 금지당했고 몸이 무거우면 족저근막염이 생기니 무리를 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그러고선 느꼈다. 아직 러닝은 시기상조구나.
사진 한 장이 있다. 처음 러닝을 시작하던 날이다.
입고 있는 건 2018년쯤 사둔 땀복이다. 그때도 맞지 않았고, 지금도 맞지 않는다. 나는 4XL을 입는 몸인데 그 옷은 M사이즈였다. 여기저기서 살이 비어져 나왔다. 꽉 꼈다. 불편했다.
그런데도 더 큰 걸 사지 않았다. 어차피 금방 빠질 테니까. 지금 몸은 임시라고 생각했다. 그러니 이 몸에 맞는 옷을 살 이유가 없었다.
걷는 동안 뱃살 위로 운동복이 자꾸 올라왔다. 슬금슬금, 또 슬금슬금. 내리고, 걷고, 또 내리고, 걷고. 그렇게 열 바퀴를 돌았다.
족저근막염 치료가 끝났을 때, 나는 한 가지만 다짐했다.
무리하지 말자. 조급하게 가지 말자. 그 대신, 하루 만 보. 매일은 못 해도 좋다. 어쨌든 출근을 했다면 이미 나선 거니까. 발이 땅을 밟고 있는 동안만큼은, 만 보를 채우자.
걷다 보니 이상한 일이 생겼다.
잡생각이 사라졌다. 소화가 됐다. 발이 아프지 않았다. 살도 빠졌다. 뛰지 않았는데, 무리하지 않았는데. 그냥 걸었을 뿐인데.
몸이 아직 무거웠다. 그래서 더 잘 맞았다. 만 보 걷기는 이 몸에게 과하지도, 모자라지도 않은 딱 그만큼의 운동이었다. 축복 같았다.
그렇게 1년이 지났다. 여전히 걷고 있다. 밥 먹듯, 습관처럼. 어느 날부터는 걷지 않으면 오히려 뭔가 빠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체력이 붙었고, 몸이 부지런해졌다. 아니, 정확히는 내가 부지런해졌다.
운동이 사람을 만드는 게 아니라, 걷기가 나를 만들었다.
변한 건 몸만이 아니었다.
분리수거가 밀리지 않았다. 쓰레기가 쌓이지 않았다. 집이 깨끗해졌다. 아이들 표정이 달라졌다. 움직이는 사람은 집도 움직이게 만드나 보다.
몸이 무겁다면, 일단 나가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뛰지 않아도 된다. 그냥 걸으면 된다. 만 보가 부담스러우면 그보다 적어도 괜찮다. 어쨌든 나선 거니까.
나의 산바카라은 그렇게 시작됐고,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