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바다

by이해의 등대

도시농부로서 한 해 농사를 마무리하는 조금은 여유 있는 시기에 잠시 과거를 회상해본다. 혜윰뜰 경작기간 중 봄에는 상추, 고추, 가지를 가을에는 김장을 해서 나눔을 하곤 한다. 때로는 함께 요리해서 도시락 나눔을 하기도 하는데, 아는 후배에게서 어느 날 급한 연락이 왔다. 일손이 부족해서, 준비한 반찬을 담고 필요한 분들에게 보내드릴 시간을 맞출 수 없다는 연락이었다. 요리라면 모를까, 담는 정도면 할 수 있겠지라는 생각에 흔쾌히 도와주겠다고 말했는데, 지나고 보니 쉽게 생각한 내 판단이 실수였는지 아니면 필연이었는지, 그도 아니면 무언가 이끌림이 있었던 것인지 모르겠다.


막상 찾아간 그곳은 ‘반찬을 담는 일만’ 하면 되는 상황은 아니었다. 어떤 재료는 손질도 덜 끝났고, 볶음은 이제 막 간을 맞추고 있던 참이다. 주방은 좁고 그릇은 부족하다 보니 쌓여 있는 설거지를 하면서 조리하고, 끝나면 담고 식어서 김이 빠지기를 기다렸다가 하나씩 포장을 해야 하는 일이 놓여 있었다. 그날, 파도치는 바닷가에서 망망대해 끝을 넘어 수평선 바라보는 기분이 들었던 것은 기억이 난다. 다행히 반찬 하나하나, 국 한 그릇마다 필요한 요리법이 기록으로 있어서 하나씩 손발을 맞춰 가면서 조리하기 시작했다.

냉방시설도 없는 조리실에서 땀이 맺혀서 행여나 반찬에 떨어질까 싶어, 마치 어느 요릿집 나오는 영화에서처럼 이마에 수건을 질끈 동여매고 화구 앞에서 진미채를 볶기를 반복했다. 처음 해보기도 했지만, 진미채처럼 잘 타는 양념이 들어가는 반찬은 실제로 해보니 한 번에 많은 양을 하면 나 같은 초보로서는 제대로 해낼 방법이 없었기에 조금씩 양을 덜어서 조리할 수밖에 없었다. 시간은 훌쩍 지나가고, 초보의 손 하나 더 보탠 것으로는 일이 줄어드는 것으로 보이지 않았다.


다행히 경험 없는 나와는 달리 다른 이들은 마치 초인처럼 일을 해치운 덕분에 적당한 시간에 조리를 마칠 수 있었다. 넉넉하지 않은 각자의 지갑을 열어서 준비하는 밥과 반찬이라 양이 넉넉할 리가 없다. 반찬 한 가닥이라도 흘려 못 쓰게 되면 누군가의 도시락에는 빈자리가 생길 것이기에 찬 하나하나 덜어 넣는 손길이 분주함 속에도 신중하고 진지해질 수밖에 없었다.


평소 주방에서 설거지하거나 라면 정도 끓여 내고 요리사인 양 의기양양 했던 정도가 요리 경험의 전부였던 나는 그날 그곳에서 주방일의 치열한 뜨거움을 맛볼 수 있었다. 볶음을 마치고 마지막 반찬 그릇을 닫은 뒤에야 정신이 돌아왔는데, 신고 있던 주방 장화 속에 물이 찰랑거릴 정도로 몸도 마음도 흠뻑 젖어 있었다. 불 앞에 칼 들고 서 있던 긴장감이 물러서자 피로감이 밀려왔다. 주방에 잠시 서 있었던 것뿐인데, 몸은 단축 마라톤 뛴 누군가의 다른 몸처럼 무거웠다.


쉴 틈은 없다. 이제 각각 점심시간에 맞춰 배달해드려야 하는 일이 남은 것이다. 긴 거리는 차로 한 번에 이동했지만, 골목 골목을 다니는 것은 두 다리에 의지해야 하는 일이다. 계단길이나 오르막을 등짐에 도시락을 담고 올라가야 하는데 한 사람은 나르고 한 사람은 메고 올라가야 하다 보니 한 사람에게 주어지는 짊어질 몫이 적지 않다. 정확한 무게를 알 수 없었지만, 한 시간 배달을 마치고 내리막을 내려올 때는 다리가 뜻대로 지탱하지 못해서 잠시 쉬어야 할 정도였다.


조리실에서 땀에 절여지던 순간순간, 오르막을 오르던 가쁜 호흡 중에 잠시 혼란스러웠음을 인정해야겠다. ‘평생을 이렇게 도와드릴 수도 없을 텐데, 한 끼 드리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는 건지’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확실히 생각나는 건 그런 생각이 부끄러워서 머릿속에서 재빨리 지웠다는 것이다.


일을 마치고 내려오는데 잠시 들를 곳이 있다는 것이다. 지칠 대로 지친 나는 먼저 가겠다고 했지만, 문득 언덕을 오르면서 했던 약속이 생각났다. ‘끝나면 꼭 들러’라고 누군가 하신 말씀에 정신이 쏙 빠져 있던 나는 마음에도 없는 말로 대답을 했는데, 그걸 후배가 들은 모양이다. 그것도 약속이라면 약속이기에 약속을 지키려 찾아갔다. 그렇게 만난 분이 ‘감나무 집 할머니’, 당신 스스로를 ‘김할매’라고 부르라던 분이다. 김 할머니도 아니고 김할매라니, 내 나이 두 배도 더 된 분을 그렇게 부르는 것이 내키지는 않았지만, 김할매라고 부를 때 기뻐하시는 모습을 보고는 마음속 거부감을 내려놓았다. 그래서 글에서도 생전의 부탁대로 김할매라고 부르려 한다.


김할매는 젊을 때 오랫동안 해녀로 활동을 했는데, 육지에서 만난 남편분에게 반해서 바다를 떠나 객지 생활해온 지 셀 수 없는 날이 지났다고 하셨다. 김할매가 그렇게 사랑하던 바다를 떠나게 만든 남편분은 정작 너무 일찍 자신의 곁을 떠났다고 했다. 나중에 들었지만, 김할매가 몸이 아플 때 병간호하면서 막일을 하다 사고가 있었다고 하는데, 가슴 아픈 이야기를 물을 수 없어서 소문으로 들은 정도로만 이해하고 있다.


김할매 방에는 오래된 사진 한 장이 걸려 있었는데, 잠수복을 입은 김할매의 오래전 사진이었다. 원래 흑백사진인지, 색이 바랜 것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제법 파도가 이는 바다를 배경으로 웃고 있는 김할매의 젊은 날 모습이 담겨 있었다. 그날 파도가 높아서 바다 들어갈 준비를 다 했다가, 사랑하는 이가 너무 걱정해서 들어가지 않고 대신에 사진으로 남겼던 날이었다고 한다. 그 이야기를 듣고 사진을 다시 보자, 사진 속에 보이지는 않지만, 김할매의 표정에서 사랑하는 이를 마주 보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김할매는 그 사진을 보면 그날 사진을 담아주던 남편의 모습이 고스란히 생각난다고 했다.


그날 이후로 후배가 부탁하지 않아도 몇 번을 더 도시락 준비하는 날 함께 했다. 조리실의 처음 기억은 텁텁한 공기, 더운 열기, 반찬 냄새가 뒤섞인 혼란스러움과 늘 쫓기는 부산스러움이었지만, 어느 순간 그런 것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마음이 고요해졌다. 반찬을 담은 순간마다 김할매 생각이 났다. 환하게 맞이하는 주름진 얼굴 속 눈동자에서 느껴지는 환대 덕분이었던 것 같다. 김할매 집에 걸려 있는 사진을 보면서, 수십 번 들어서 다 외우고 있는 이야기를 다시 할 때 일찍 떠난 남편을 행복하게 추억하는 김할매를 지켜보는 것이 좋았던 것 같다.


도시락 나눔 일은 다음 해 김할매가 소천할 때까지 했다. 건강이 안 좋아진 날 무언가 직감하였는지 김할매는 언젠가 시간이 되면 바닷가에 가보고 싶다 했다. 나는 꼭 그렇게 해드리겠다고 대답했지만, 결국 그 약속을 지키지는 못했다. 그렇지만 김할매도 알고 계셨으리라. 대답할 때 나의 진심을.


김할매는 결국 당신의 바다를 다시 찾아가셨을까? 그곳에서 사진 속 그 시간으로 돌아가서 그토록 오랫동안 그리워하던 남편분도 만나셨다면 좋겠다. 당신의 그 아름다운 바다에서 항상 행복하기를 조용히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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