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를 살아가는 모습은 다양하다. 혜윰뜰 대부분 회원은 작은 텃밭을 나누어 경작 활동을 하고 있지만, 배란다 상자 텃밭이나 소담스러운 정원을 가꾸는 이웃, 어린이놀이터 옆 작은 화단을 열심히 가꾸는 어르신 등 수없이 많은 모습의 도시농부가 있다. 그중 오늘 이야기는 정원을 가꾸고, 아름다움을 이웃과 나누는 모습을 전해보려 한다.
마을 활동에 참여하는 이유는 각양각색이다. 이웃과 어울림이 좋아서, 혼자 식사 해결을 못 하는 이웃을 돕고 싶어서, 마을길를 걷고 가꾸는 일이 행복해서. 그리고 때로는 슬롯적 통념을 바꿔보겠다는 장대한 목표로 참여하는 이웃도 있다.
“드라마에 나오는 ‘평창동 사모님’의 잘못된 이미지를 바꿔보고 싶어서요”
마을활동을 상의하는 자리에 참석했다가 옆자리에서 이야기 나누는 말씀 중에 유독 한 문장이 귀에 쏙 들어왔다.
‘평창동 사모님이라…’
생각해보니 그랬다. 나는 개인적으로 평창동 사는 분과 인연은 없는데, 그분의 말씀을 듣고 나니 생전 만나본 일 없는 평창동 사모님에 대한 이미지가 머릿속에 휙 하고 떠올랐다. 드라마에서 본 일간지 슬롯면에 나올 것 같은 그런 무서운 모습 말이다. 무언가 앞에서 말 한마디 잘못하면 포기김치로 귀싸대기가 날아올 것 같은 이미지가 언뜻 떠오른 것을 부정하지는 못하겠다. 일면식도 없고, 만나본 일도 없는 이에 대해 그런 이미지가 먼저 떠오른다니, 드라마 영향력이 적지는 않다는 생각에 마음이 잠시 움찔했다.
호기심 많은 나는, 참지 못하고 결국 그 대화에 참여했다. 대화 중 이야기 나온 평창동 사모님의 잘못된 이미지는 어떤 의미로 하신 말씀인지, 그리고 그런 모습을 어떻게 바꿔보려 하는지 궁금함이 대화가 이어질수록 솟아 나왔다. 마을활동을 하는 저마다의 이유는 각자 다르지만, 슬롯통념이나 선입견이라는 거대한 벽을 허물어 보겠다는 목표로 마을활동에 참여하는 이웃을 본 일은 거의 없다. 나 하나 온전히 지탱하기도 어려운 상황에서 슬롯적 인식 개선이라는 목표는 너무 큰 목표처럼 느껴진 것도 사실이다. 그렇지만, 정원이 아름다운 봄에 잘 가꾼 정원을 개방하여 찾아오는 분들과 바자회를 함께 할 계획이라는 말씀에, 기회가 되면 꼭 한번 찾아뵙겠다는 진심 담은 인사로 그날의 만남을 마쳤다.
눈앞에 주어진 일상을 해결하느라 그날의 만남이 흐릿한 기억으로 지나가던 어느 날 정원 바자회에 초대한다는 연락이 왔다.
‘시시때때로 비와 바람이 불어…. 좋은 시간을 찾아서 와주시면 좋겠어요’
조금은 색다른 초대문구에 살짝 미소가 감돌았다. 어딘가 조금은 시적인 느낌이란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초대문구를 받아 보고서 새삼 느꼈지만, 초대를 받은 그 주간에는 실제로 하루건너 비가 오는 날이 이어졌다. 날 좋은 때 오라는 의례적인 인사로 생각을 하고 가장 맑은 날, 비슷한 궁금증을 가진 이웃과 함께 평창동 정원을 찾아갔다. 평창동을 처음 찾아간 나는 큰 집 몇 채 안 되는 곳에서 주소까지 알고 있는 집을 찾기가 그리 어려울 줄 생각도 못 했다. 너른 집이 서로 마주 보고 있어서 출입구를 찾는 일이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아마도 공동주택이라는 공간에서 너무 오래 살아온 탓도 있으리라. 얼마를 골목을 돌아보다가 정원 바자회를 알리는 화환이 문 앞에 놓여 있는 집이 눈에 들어왔다.
‘앤틱과 빈티지를 사랑하는 여인들’
모임 명이 예사롭지 않다. 한편으로 든 생각은 ‘나는 앤틱도 빈티지도 알지 못하는데, 어려운 자리라서 서로 불편만 주고받다 나오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도 살짝 들었지만, 함께 온 일행의 관심 어린 눈빛에 서둘러 정원이 있는 그 집에 들어섰다.
대문을 들어서자 시선이 시원해진다. 탁 트인 공간, 하늘과 맞닿은 경계에 잘 가꾼 정원이 눈에 들어온다. 봄의 푸르름과 형형색색 꽃의 사소한 흔들림이 완성하는 풍경이 주는 평화로움이란! 정원 한 폭을 장식하고 있는 앤틱한 느낌의 그릇이 저마다의 화려함을 더하는 모습은 색다른 즐거움을 주었다.
수백 점의 도자기 그릇이 잘 가꿔진 정원 곳곳에 놓여 있는 모습은 참 인상적이다. 그런데 잠시 그릇 감상을 하다 보니 바람에 테이블이 꽤 흔들리는 모습이다. 테이블 위에 놓인 그릇이 위태롭다. 그런 때는 도자기 그릇들을 정원 잔디에 하나씩 내려놓아 두었다가 바람이 지나가면 다시 전시하기를 반복하였다. 나는 그제야 ‘시시때때로 비와 바람이 불어….’ 라는 말씀에 담긴 본 의미를 알 수 있었다.
바람이 불면 그릇을 풀밭에 살며시 내려놓고 바람이 지나면 다시 손님맞이를 준비하고, 비가 오면 집안에 들였다가 다시 전시했다고 한다. 찾아갔던 날은 행사 두 번째 주 마지막 날이었기 때문에 이런 일을 그동안 계속 반복해서 했다는 것에서 조금 놀랐다. 성격이 급한 나는 그렇게 날씨가 도와주지 않으면 두 번째 행사는 엄두도 내지 못했을 것이기에.
이윽고 바람이 잦아들고 정원에는 다시 평화로운 순간이 찾아왔다. 한 바퀴 둘러보고 돌아가면 되려나 하는 생각에 정원과 도자기 그릇을 둘러보는데, 앤틱과 빈티지에 대한 소개를 해주신다는 말씀과 함께 정원에서 이루어지는 앤틱 탐방이 시작되었다. 앤틱과 빈티지 용어에 관한 설명부터 시작된 정원 바자회 앤틱 탐방은 앤틱 가구의 역사 및 종류, 앤틱 도자기의 역사로 이어졌다. 평소 집에서 모셔만 두고 있던 도가지 그릇의 유래와 종류에 대해 새롭게 알게 된 사실들이 흥미로웠다. 도자기 그릇에 표기된 생산연도, 국가, 패턴 번호를 보는 방법부터, 독일 마이센, 덴마크 로열 코펜하겐, 헝가리 헤런드와 같은 세계 3대 도자기의 이야기는 역사 수업과 같은 매력이 있었다.
정원 바자회를 오픈한 분의 앤틱 도자기에 대한 해박함이나 애정도 놀라웠지만, 무엇보다 기억에 남는 것은 진심이 느껴지는 정성이었다. 앤틱에 대한 기본 지식이 없던 나였기에 몇 번을 되묻는 일이 있었는데, 그때마다 처음부터 차곡차곡 설명해주는 것에서 배려가 담긴 환대가 느껴졌다. 마치 오랫동안 알고 지낸 마을 이웃을 대하는 듯한 편안함이 대화 내내 흘렀다. 함께 간 이웃도 기대하지 않은 환대와 마음이 편해지는 풍광에 잠시 여유를 함께 누리고 있는 모습이어서 더 기뻤다.
때때로 바람이 불 때마다, 비가 비출 때마다 풀밭에 내려놓고 집안에 들여놓기를 반복하면서까지 환대와 배려로 손님맞이를 한 정원 주인의 마음이 무엇이었는지를 전부 알 수 없지만, 꽃과 앤틱 도자기 가득한 평화로운 정원에서 마음 따뜻해지는 환대를 볼 수 있었다. 작은 공간에서 꽃을 가꾸어 본 경험에 비춰본다면, 봄에 찾아갔던 평창동 정원의 아름다움은, 긴 시간 가꾸는 이의 노력이 담겨 있는 공간이었으리라 생각한다.
정성 다한 정원을 이름도 모르던 옆 마을 이웃과 함께 나눔 하는 시간을 준비한 마음에서 나는 그동안 방송 드라마가 심어 놓았던 내 마음속 ‘평창동 사모님’의 이미지를 씻어낼 수 있었다. 이제 나에게 평창동 사모님은 아름다운 정원을 가꾸고 이웃과 나눔 하는 봄의 아름다움으로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것 같다.
그날 함께 간 이웃과 짧지만 소중한 추억이 남은, 마음 한 조각 두고 온 따뜻한 그 시간을 다시 언젠가 한 번 마주할 수 있기를 바라본다. 아름다운 기억이 담긴 그 집에 가고 싶다. 사람을 아끼고 자연을 가꾸고, 그것을 다시 이웃과 나눔 하는 모습에서 여느 도시농부와 다르지 않은 따뜻한 상량함을 보았다. 마치 어느 봄날 햇살 같이 다가오는 기분 좋은 그 따스함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