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가는 가을이 아쉬운 시간이다. 가을 농사를 마무리하는 시절이라 한 해 농사를 마무리한다는 안도감과 그래도 못다 한 것에 대한 아쉬운 마음이 교차한다. 이번 해에 혜윰뜰 텃밭에는 유독 곤충이 많아졌는데, 그 덕분에 도심에서는 듣기 어려운 다양한 새소리의 하모니를 즐길 수 있는 것은 감사한 일이었지만, 새를 부르는 곤충의 주식이 되는 가을 작물을 키우는 도시농부에게 유쾌하지만은 않은 경험이었다. 아무래도 지난 3년 동안 친환경 자연농법을 지켜보겠다고 안간힘을 쓰며 독한 약은 사용하지 않는다는 소문이 곤충 세상까지 알려진 모양이다.
올가을 초반에 벼룩잎벌레 피해가 컸다. 벼룩잎벌레는 십자화과 작물 어린 모종을 탐하는 곤충인데, 워낙 작고 재빨리 톡톡 튀어서 사라지기 때문에 사람의 능력으로는 잡기 어려운 곤충이다. 이 녀석들은 성충으로 월동을 한 뒤에 다음 해 봄이 오면 산란을 하는데 한 달 동안 한 마리의 벼룩잎벌레가 낳는 알이 200여 개나 된다. 가을 농사 시작 전에 특별한 방제를 하지 않은 탓에 가을 농사 시작과 함께 벼룩잎벌레에 앞에 속수무바카라으로 당하고 말았다.
처음 벼룩잎벌레가 보이기 시작할 때는 이를 가벼이 여겼다. 왜냐하면, 벼룩잎벌레는 성충도 2mm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제깟 녀석이 아무리 먹어봐야 얼마나 먹겠는가 하는 생각으로 방심한 것이다. 한 마리가 200여 개의 알을 낳는다는 것을 알았다면 사람 없는 시간에 대가족이 모여서 맛있는 무, 배추의 어린잎을 탐할 것에 대비했을 텐데, 시간이 지나도 초보 농부의 티를 벗어나지 못했다. 벼룩잎벌레는 도심에서는 특별한 천적도 없고, 모종의 연하고 어린잎을 가해하기 때문에 모종이 성장할 기회를 앗아가 버린다. 작다고 가벼이 볼 수 없는 녀석들이다. 표피도 딱딱해서 친환경 방제만으로는 해결이 잘 안 된다.
올해는 종로구 텃밭 관리사에게 긴급한 자문을 구한 끝에 전문 방제 작업을 했다. 그래도 사람과 자연에 해가 적은 저독성 방제를 했지만, 본격적인 방제 처리를 한 것은 처음이라 걱정되는 마음도 있었다. 혹여나 함께 이용하는 어린 이웃에게 작은 피해라도 갈까 싶은 마음이었다. 다행히 큰 문제 없이 방제 작업은 마무리되었고, 벼룩잎벌레를 텃밭에서 쫓아내는 것도 성공적으로 보였다.
벼룩잎벌레를 쫓아내고 2주 정도 지난 뒤 생각하지 못한 일들이 나타났다. 지난해에는 볼 수 없었던 다양한 곤충이 새롭게 등장한 것이다. 그뿐 아니라, 도시농부나 베란다 원예 활동을 하는 이에게 반갑지 않은 손님, 진딧물도 대거 나타났다. 대거라는 표현은 풀어서 쓴다면 어린 새순을 뒤덮을 만큼을 의미한다. 가을 농사에서는 절대 반갑지 않지만, 눈에 보이면 하염없이 바라보게 만드는 배추흰나비도 구름처럼 몰려들었다. 아마도 몰려들었다기보다는 혜윰뜰 텃밭에서 태어나서 먹고 자란 것이리라.
왜 이렇게 배추흰나비와 못 보던 곤충이 늘었을까? 그 질문의 답은 금방 얻었다. 방제를 했기 때문이다. 혜윰뜰 텃밭을 방제하면서 말썽 피우던 벼룩잎벌레를 쫓아내서 어린 모종의 위기를 해결하는 일은 성공했지만, 그와 함께 농사에 유익한 익충까지도 함께 쫓아버린 것이다. 그렇게 몇 주가 지나고 익충과 해충이 다 함께 손잡고 돌아오면 좋으련만 세상일은 그렇게 뜻한 대로 되지 않는다. 익충은 보이지 않고 해충이라 부르는 개미, 진딧물, 배추흰나비가 천적이 사라진 곳에서 주인행세를 시작했다. 이런 상황이 되고 보면 어떤 선택이 최선인지 다시금 생각해보게 된다. 자연은 언제나 살아남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는 것을 잠시 잊은 도시농부의 오만이 가져온 결과를 곱씹어 보는 것이다. 도시농부의 농사를 위한 노력과 그에 따라 살아남으려는 온갖 것들의 반작용에서 삶의 이치를 느낀다.
조금 다른 이야기인데, 이러한 작용과 반작용을 베란다 정원에서도 경험한 일이 있다. 아끼는 지인이 지난해 선물해준 알로카시아 나무가 있는데, 처음 받았을 때부터 키가 나보다 더 큰 나무였다. 실내에 두기는 장소가 마땅치 않아서 베란다에 내다 놓았더니 여름이 되자 새로 나는 잎이 점점 작아지기 시작했다. 시간이 조금 더 지나자 작아진 잎이 심지어는 점점 더 옅어지기까지 했다. 알로카시아는 잎이 크고 넓어서 마치 코끼리 귀를 닮았다고 할 정도로 잎이 특징적인 형태를 가지고 있는데, 여름 태양 아래 내놓으니 작고 볼품없는 잎만 내밀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게 반년이라는 시간을 의문을 가지고 지켜보다가 물주기를 잘 못 해서 뿌리가 썩어 나무가 쓰러지는 일이 생겼다. 지인에게 미안한 마음에 버리지도 못하고 지켜보다가 어떻게든 살려보자는 생각에 썩은 부분을 잘라내고 새 흙을 챙겨서 무작정 다시 심어 보았다. 그리고, 너무 햇빛이 강하지 않은 반양지 실내로 들여놓고 몇 달 정성을 다해보았다. 하나 남은 잎이 맥없이 쓰러지는 것은 아닐까 걱정하며 지켜보았는데, 다행스럽게도 잎에 물을 맺히기 시작하더니 새로운 잎을 내고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새롭게 나온 알로카시아 잎은 원래의 그것만큼은 아니지만, 작고 옅은 부모 잎보다는 훨씬 더 짙푸른 녹색과 큰 잎으로 자라고 있다. 학문적인 이유는 모르지만, 아마도 알로카시아에는 ‘적당한’ 정도의 햇빛만 있으면 충분한 모양이다. 햇빛이 넘치는 곳에서는 옅고 작은 잎으로 적당히 광합성을 하기 위해서 작은 잎을 냈던 것이 아닌가 싶다.
이런 일을 경험하고 보니 자연을 상대하는 많은 일이 점점 더 조심스러워진다. 햇빛 충만하면 더 좋을 것 같았던 알로카시아를 향한 나의 무지한 사랑은 식물에 힘든 고통을 주는 일이 되었고, 벼룩잎벌레를 쫓아내는 도전은 익충까지 몰아내면서 더 많은 해충을 불러오는 반작용을 낳았기 때문이다. 깊이 고민하지 않으면 그만인 일이겠지만, 많은 도시농부 이웃과 함께 하는 나로서는 무엇하나 가볍게 내려놓을 수가 없다.
이런저런 생각과 고민을 하면서, 가을 농사가 잘 안되면 속상할 이웃 도시농부에게 해충과 싸움을 너무 소홀히 하여 미안한 마음을 전했더니 의외의 말이 되돌아왔다. 안될 것으로 보이는 상황에서도 그 순간에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면 그 결과의 크기에 관계없이 충분히 행복한 일이라 하신다. 그 한마디 말에 포근한 위안이 찾아왔다. 할 만큼하고 얻은 만큼 만족한다는 마음에서, 자연을 벗 삼아 살아온 지난 3년 시간의 내공이 느껴졌다. 혜윰뜰이 여전히 도시농부로서 서툴고 갈 길이 멀다고만 생각했는데, 자연의 사계절을 충분히 담을 만큼 마음 품이 넉넉해진 것이 느껴진다. 그리고 그게 참 좋다.
※ 서울 종로구 무악동, 행촌동에 있는 한양도성 성곽길에 오시면 이미지와 똑같은 풍경의 길을 걸어보실 수 있습니다. 실제는 이미지보다 훨씬 아름다워요. 다음 계절에라도 꼭 와보셔요. 요즘에 해외에서 유명한 편의점과 산, 도시가 같이 보이는 풍경도 바로 근처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