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모퉁이

by이해의 등대

오랫동안 나에게 길모퉁이는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초등학교 시절, 비 오는 어느 날 그 당시 보이스카우트였던 나는 그날 있을 캠프장 야영하러 가는 일에 들떠 있었다. 학교에 가기 위해서는 집 앞 육교를 건너야 했는데, 육교를 앞에 두고 길모퉁이를 돌아서면서 육교를 막 올라가는 보이스카우트 선배를 발견하고는 기쁜 마음에 뒤쫓아 갔다. 선배 이름을 막 부르던 중에 갑자기 몸이 공중으로 붕 떠오르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잠시 기억을 잃었는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나는 길모퉁이 바닥에 누워 있었고 머리에서 뜨거운 땀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 그날은 비가 쏟아지고 있었고 중국 음식을 배달하는 동내 배달원이 길모퉁이를 급히 지나가다, 똑같이 급하게 모퉁이를 돌아가는 나를 발견하지 못하고 사고가 난 것이다.


당시 초등학생에 또래보다 왜소했던 나는 건장한 배달원 형과 부딪히면서 공중으로 떠올랐다가 바닥으로 추락한 것이다. 내리는 비가 다행이었을지, 얼굴을 연신 때리는 빗줄기에 금방 정신은 차렸지만, 방향 감각조차 찾지 못하는 혼란함 속에 누군지 모를 이의 손에 이끌려 근처 병원으로 갔다. 병원으로 가는 동안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알게 된 나는 혼미한 정신 속에서도 머리에 느껴지는 뜨거운 것이 땀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는 두려움에 빠졌다. 지금도 그날을 생각하면 머리 뒤편이 서늘해지는 것을 보면 아마도 그날의 시간은 내 마음속에 영원히 각인된 듯하다.


알고 보니 내 손을 잡고 급히 병원으로 데려간 이는 중국집 배달원 형이었고, 배달 중이던 음식을 길에 쏟아둔 채로 나를 안고 병원에 와주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분도 넘어져서 다리를 다쳤음에도 내 부모님이 병원에 도착한 뒤에 하던 일을 마치기 위해서 치료도 못 받고 돌아갔다고 했다. 다행히도 치료를 빨리 받을 수 있었기에 오래 지나지 않아서 퇴원했지만, 그 뒤로 나에게 길모퉁이는 마음속 두려움으로 자리 잡았다. 오랜 시간 동안 길모퉁이가 있으면 멀리 둘러서 걸어갔고, 지금도 길모퉁이에서는 손을 먼저 내밀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달려올지 모르는 무언가를 경계하는 일이 일상 속 작은 습관으로 남아 있다.


하나의 사건이 모든 일의 시작이라고 말하는 것은 지나치지만, 그 사고 이후로 많은 것이 달라졌다. 조심스러워 하는 마음은 습관으로 자라났고, 그런 성격이 슬롯생활과 사람 사이 관계에서도 그대로 드러나기도 했다. 내가 근무했던 한 온라인 게임에서 나의 별칭은 ‘극단’ 이었는데, 어떤 일을 해도 항상 극단적인 상황을 상정하고 위기관리를 하는 모습 때문이었다. 아마도 그런 모습이 누군가에게는 신뢰할 수 있는 꼼꼼함으로, 다른 어떤 이에게는 마음 답답한 지나침으로 보였을 것이다.


사고가 있던 날 치료는 머리를 몇 바늘 꿰맨 것이 전부였지만, 한땀 한땀이 마음을 꿰매고 묶어서 한 사람을 새롭게 만들었다. 그것이 좋은 일이었는지 아닌지 스스로 판단할 수 없지만,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이라, 좋아도 나빠도 어찌할 수가 없는 노릇이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이라면 매사에 조심스럽다 보니, 한 번쯤 가봤으면 하는 길 앞에서 주저했던 지난 시간이 마음속에 남아 있다는 것이다. 갈림길이 나올 때마다 누구나 선택할 법한 길만 걸었고, 이끌림이 깊이 느껴졌던 곳도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면 뒤돌아 도망가기에 바쁜 시간이었다.


사람과의 관계도 크게 다르지 않았던 것 같다. 일을 위해서 꼭 필요한 만남 이외의 관계 맺기는 하지 않았고, 남 앞에 나서는 일도 없었다. 발걸음 하나하나에도 그다음 걸음을 생각해보고, 매주 돌아오는 온라인 게임에서 정기회의에서도 일어날 리 없는 그것까지 고민하니, 늘 준비하는 시간이 부족했던 기억이다. 한 번의 사고가 시련이었을지, 선물이었을지 여전히 모르겠지만 지나고 보면 참 작은 점이 일으킨 파문은 길고도 넓다. 사고가 있던 그 날이 나에게 오랜 파문을 남긴 하나의 점이었다면, 혜윰뜰을 만나게 된 것도 또 다른 한점이 되었다.


사람 사귐도, 새로운 일에 도전하는 것도 조심스러운 나였기에 지금 사는 무악현대아파트라는 공동주택을 삶의 공간으로 선택한 것도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었지 싶다. 공동주택은 모두 너무 가까이 삶의 공간이 모여 있기에 어쩔 수 없는 조심스러움이 있고, 그 덕분에 이웃이라는 관계에 크게 신경 쓰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거주공간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많은 경우 공동주택의 모습이 이와 같은 것도 사실이다.


서로 거리 두고 살아갈 수 있는 공간으로써 선택한 삶의 형태였던 무악현대아파트에서 나는 아이러니하게도 공동체 활동을 시작했다. 시작한 이유는 한 문장으로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수십 년 전 삶에 던져졌던 한점의 파문에 새로운 한점이 더해진 것은 분명하다. 살아온 시간 동안 사람 사이 관계와 만남이 길모퉁이처럼 어렵고 조심스러운 것이었기에 혜윰뜰 공동체와 함께한다는 일이 쉽지 않았다. 한걸음 앞에 무엇이 놓여 있을지 알지 못하는 길을 간다는 것이 쉬운 이도 세상에 많겠지만, 적어도 나에게는 어려운 선택이었다. 그렇지만 살아오는 동안 가장 기억에 남을 멋진 선택이라는 것을 혜윰뜰에 함께 하는 이웃을 보면서 알게 된다.


그러고 보니 어느 사이인가 골목길 모퉁이가 여전히 조심스럽지만 더는 두렵지 않게 되었다. 보이지 않는 모퉁이 맞은편에는 생각하지 못한 무언가가 나를 넘어뜨릴 수도 있겠고, 그것이 상처로 남을 수도 있겠지만, 서로를 보듬고 응원해줄 이웃도 있음을 알게 되었다. 예전에는 아무 의미가 없던 아파트 다른 동도 이제는 그곳에 사는 이웃들이 먼저 떠오르는 남다른 의미가 있는 공간으로 눈에 들어온다. 아파트 후문을 나와 조금만 고갯길을 돌아가면 반가운 이웃이 있는 텃밭이 고맙고 가끔 게시판을 통해 들려오는 혜윰뜰 작은도서관의 소식이 감사하다. 삶을 걱정으로만 채울 필요 없음을 이곳에서 혜윰뜰을 만나고 알게 되었기에 감사하다.


생각해보면 그 옛날 한점의 파문이 되었던 사고에서도, 동네 골목길에서 사고치고는 큰일이었지만, 사고 뒤에 나를 안고 뛰어준 감사한 분이 있었다. 삶은 고난과 함께 회복을 위한 선의도 있음을 나에게 알려주었는데, 감사한 일은 잊고 아픈 상처만 기억 속에서 너무 오래 담아두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반성도 찾아온다. 이제 나는 길모퉁이를 기분 좋은 두근거림으로 기억할 것이다. 길모퉁이에 남아 있는 돌 하나까지도 삶의 일부임을 알고 사랑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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