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는 어느 날 일이다. 평소 온라인 게임 생활 중에 외근 갈 일이 좀처럼 없는데, 이날은 오랜만에 서울을 벗어나 외근가게 되었다. 약속 시각에 늦을까 걱정되어 차 시동을 걸고 서둘러 출발했다. 한 시간 삼십분 거리의 약속을 위해 두 시간 일찍 나섰으니 늦지는 않을 것이라 안도하며 출발했지만, 사소한 일조차 뜻한 대로 되도록 내버려 두지 않는다. 금요일 오후 시간이라 조금 각오는 했지만, 강북에서 남산 터널을 지나 강남을 건너 외곽으로 나가는 길은 만만치 않았다.
서대문을 지나 서울역까지 가는데 삼십분 넘는 시간이 지나고, 남산 터널 앞에서는 다시 사십 분 넘는 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이런 와중에 가을을 가로막는 여름의 세찬 비가 차창과 지붕을 두드린다. 남산 터널을 다 지나는 데는 다시 삼십분의 시간이 걸렸으니 외근 가겠다고 시동 걸고 100분이라는 시간이 훌쩍 지나버렸다. 결국, 25Km 정도 되는 목적지까지 절반을 가지 못하고서 약속한 시각이 지나버렸다. 두 시간 삼십분 행사 중 가장 중요한 처음 한 시간은 놓치게 될 것이 분명하여 순간 갈등이 찾아왔다. 이대로 돌아가서 마무리하지 못하고 온 일 하는 것이 개인적으로는 이득이라는 생각이었다.
한편으로는 벌써 두 시간을 허비한 것이 아까운 마음이다. 이대로 돌아가면 지난 시간은 그대로 허비한 것이 되어 버리고,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는 앙금이 마음에 남을 것이 분명했다. 물론 약속하고 지키지 못한 다른 경우가 없지는 않았지만, 최소한 선택할 수 있는 상황에서는 저버리고 싶지 않은 마음이었다. 다행히 서울을 벗어나고서부터는 도로가 한산해지면서 생각보다는 덜 늦게 약속 장소에 도착할 수 있었다. 약속 장소는 입구가 하나뿐이어서 늦게 도착한 것을 숨죽여 숨길 수도 없었다. 먼저 온 분에게 죄송한 인사를 하고 자리에 앉아 그날의 일정을 소화했다.
일정을 끝내고 기분 좋은 인사를 나누곤 돌아갈 목적지를 내비게이션에 입력해본다. 평소라면 한 시간 남짓 걸릴 거리인데 세 시간 삼십분이라는 시간이 표시되는 것을 보고는 허탈한 웃음이 나온다. 오늘은 도로에서 시간을 보내는 날이구나 싶었다. 가는 동안 평소 듣지 못했던 라디오에 시간을 맡겨봐야겠다 생각했다. 출발할 때는 예상대로 안 되었지만, 돌아가는 길은 내비게이션이 말한 대로 세 시간 삼십분 시간이 걸렸다. 일과가 절반은 예상대로 안 되었지만, 나머지 절반은 예상대로 되니, 어떤 면에서는 안도감도 느껴졌다. 도로가 꽉 막혀 라디오를 켜본다. Chicago의 명곡 <Hard to say I'm sorry>가 흘러나온다. 클라이맥스 한 소절을 가져오면 이런 곡이다.
And after all that's been said and done,
함께 이야기하고 지내왔던 날들이 흐른 지금
You're just the part of me I can't let go.
당신은 나의 일부분이예요 가게할 순 없어요
Couldn't stand to be kept away just for the day from your body.
당신 곁을 떠나서 하루라도 내가 견딜 수 있을까요
Wouldn't wanna be swept away, far away from the one that I love.
사랑하는 사람에게서 멀리 떨어져 나가기 싫어요
이 곡은 몇 해 전 소천하신 아버지를 통해서 알게 되었는데, 평소 당신의 애창곡이었다. 지금처럼 MP3 파일이 없던 시절 카세트테이프로 한 곡을 반복해서 듣고 싶어서 같은 노래를 녹음해서 들을 정도로 당신이 좋아하던 곡이다. 이 곡이 특별히 더 기억에 남는 이유는 한가지가 더 있다. 아버지는 나를 낳던 즈음에 성공해야겠다는 결심을 하고 서울로 올라와서 사업을 시작했다.
가진 것 없이 맨몸으로 시작했으니 말이 사업이라고는 하나, 그것이 얼마나 고된 일의 연속이었을지 나는 상상도 할 수 없다. 언젠가 한 번은 이틀 정도 연락이 끊어진 일이 있었다. 지방에 거래 계약을 하기 위해서 집을 나선 뒤 이틀 동안 아무런 연락도 안 되어 가족 모두가 걱정에 빠졌다. 결국, 행색이 무척 초라해져 돌아온 당신을 보고 가족 모두 안도의 눈물을 흘렸다.
나는 슬롯생활을 막 시작하던 즈음에서야 그때의 일을 제대로 알게 되었는데, 동업했던 지인이 사업자금을 횡령하고 잠적해서 그 일을 해결하기 위해서 멀리까지 찾아간 것이었다. 결국은 소득 없이 돌아와야 했는데, 가진 것 없던 때라 아무 준비 없이 내려간 일정에 돌아올 여비조차 마련하지 못하였다. 찾아간 곳 근처 사는 가까운 지인에게 여비라도 빌려보려 했지만, 거절당하고는 그때부터 걸어서 귀가한 것이었다.
오래전이라 대중교통이 이어지지 않은 곳도 많았고, 택시를 타도 집에 와서 갚을 길이 없었으니, 평소 내가 알던 고지식한 아버지 그 모습 그대로 걸어왔을 것이다. 힘들지 않으셨냐는 물음에, 처음엔 마음이 힘들었는데 걷다 보니 목적지가 가까워질수록 걸음이 가뿐해지셨다고 한다. 그렇게 좋아하는 팝송을 읊조리면서 오니 시간 가는 줄 몰랐다는 너털웃음 소리가 아직도 귓가에 맴돈다. 돌아가야 할 곳이 있기에 돌아온 것뿐이라는 말씀과 함께.
그에 비해보니 나의 퇴근길 세 시간 삼십분은 호사다. 차 안에 편히 앉아 시원한 바람 맞으며 차창 밖 쏟아지는 빗줄기를 감상하기도 하고, 라디오 음악 선율을 느끼는 참 호사스러운 시간이다. 바삐 지내기만 하는 동안 잊고 있었던 추억을 고스란히 되돌려준 이 날이 더욱 특별하게 다가온다. 그리고 예전에는 알지 못했던 아버지의 마음을 조금은 더 알게 된 것도 같다.
이날 온종일 빗속에서 일과를 마친 나는 다음날 텃밭으로 향하는 언덕을 올랐다. 아직 봄이 오려면 시간이 남았지만, 겨울을 지낸 텃밭이 궁금하기도 했고, 어제 하루 동안 빗속에 촉촉해진 땅을 한번 뒤집어 주어야겠다는 생각이었다. 전날 비가 와서인지 텃밭에는 크고 작은 새싹이 겨울 땅 사이로 올라와 있었다. 전날에는 마음 힘들게 하는 빗줄기였는데, 텃밭에서 보니 봄을 부르는 비였던가 보다. 어제는 그렇게 불편하고 미웠던 것에게 오늘은 감사한 마음이 느껴진다. 새봄을 선사하기 위해 찾아와 준, 비 오는 날을 감사하게 기억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