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이샤(藝者)

byGoodmorning

일본 회사에 근무한 적이 있다. 그 회사는 연례행사로 사원여행을 가곤 했는데, 내가 입사한 첫해의 여행지는 마침 한국이었다. 4박 5일 여정의 마지막 밤, 성대한 연회장에 전 직원이 모여 북적이던 그때, 사장이 내 옆자리에서 살그머니 웃으며 불쑥 말을 던졌다.


"예전에 한국으로 사원여행을 올 때면 기생들을 불러서 연회를 하곤 했지."


"기생"이라는 단어는 확실하게 한국어로 내뱉으며. 살짝 거드름을 피우는 듯한 태도였다. 기분은 썩 유쾌하지 않았고, 머릿속은 복잡하게 얽혀 들어갔다.


아주 오래전 일인데도, 친구들과의 교토 여행을 준비하던 중 사장의 그 한마디가 느닷없이 떠올랐다. 친구들에게 기온 거리에서 게이샤의 출근길을 보여주고 싶어 정보를 찾던 참이었다. 당시의 나는 '게이샤'와 '기생'에 대해 잘 알지 못했는데, 이를 계기로 검색해 보며 둘의 차이와 맥락에 대해 자세히 들여다보게 되었다.


기생과 게이샤는 연회에서 예능을 선보인다는 공통점이 있다. 특히 일본의 게이샤는 오랜 시간 혹독한 수련 과정을 거쳐 비로소 그 호칭을 얻게 된다. 안타깝게도 한국의 기생 문화는 맥이 끊기다시피 했지만, 일본의 게이샤는 오늘날까지 전통 예능을 이어가는 문화 계승자로 인정받고 있다.

게이샤가 되기 위한 수련 기간은 보통 5년 정도 걸린다. 수련기간이 길고 시대변화에 따라 게이샤를 불러 연회를 하는 자리도 줄어 전성기 때 8만 명이던 인원이 현재는 1000명 정도를 유지하고 있다.


게이샤(藝者)가 수련을 마쳐 정식 자격을 얻은 예술인이라면, 마이코(舞子)는 그 과정을 거치고 있는 연수생이다. 연회장에서 두 사람의 역할은 명확히 구분되어 있다. 게이샤가 전통악기인 샤미센을 연주하며 노래를 부르면 마이코는 그 가락에 맞춰 춤을 추며 분위기를 돋운다.


그들의 거주지이자 일터인 기온은 에도시대(1603~1867)의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한 전통거리이다. 이렇게 게이샤와 마이코가 활동하는 거리는 일본 전역에 20곳여 곳이 남아 있다. 그중 다섯 곳이 교토에 모여 있는데, 기온은 그 대표적인 거리 중 하나이다.


게이샤들의 출근은 보통 오후부터 시작된다. 그날은 친구들에게 게이샤의 출근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기온거리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일본문화가 낯선 친구들은 아직도 기생문화가 있냐며 잔뜩 기대를 갖고 눈을 반짝였다. 다행히 오래 기다리지 않아 운 좋게 게이샤와 마이코를 모두 직접 볼 수 있었다.

<마이코; 수습생. 대문사진의 게이샤와 복장부터 다르다>


"저 사람들 돈은 얼마나 받아? 얼굴이 너무 하얗다."

친구는 시종일관 흥분한 모습으로 물었다.


게이샤는 집을 출발하는 순간부터 시급으로 계산한다고 한다. 시간당 ¥3만 5천~¥5만 정도이고 연봉은 ¥500 만~¥1000만 정도 라고 하니 우리 돈으로 하면 1억 가까이 되는 돈이다.


적지 않은 수입이지만 수련하는 동안 쌓인 빚도 갚고, 지금으로 말하면 소속사에도 좀 떼어주고 나면 손에 남는 돈이 그리 많지는 않다.


그럼에도 활동 범위는 넓어졌다. 예전에는 자국민들을 위한 전통 찻집이나 연회장이 대부분이었는데 요즘은 해외 관광객들을 위한 호텔 공연도 많다.


우리나라에서는 일찍이 사라진 기생문화가 일본에서는 여전히 명맥을 잇고 전통유무형 문화유산으로 자리 잡았다. 그리고 그 문화는 어느덧 30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유지되고 있다.


사장의 "기생"이라는 표현에 나는 막연한 거부감과 불쾌감이 들었었다. 그런데 게이샤에 대해 알아보고 기온거리에서 게이샤와 마이코를 대면하며, 그것이 일본인들에겐 하나의 일상적인 고급문화라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 결국 사장의 말은 한국 방문 때 회사가 사원들을 위해 '돈 좀 썼다'는 식의 거드름이었던 셈이다. 내가 느꼈던 꺼림칙한 감정과는 전혀 다른 뉘앙스였던 것이다.




​벚꽃이 피는 교토의 기온 거리는 여전히 아득한 과거를 품고 있다. 목조 건물인 마치야(町家)가 늘어선 풍경 속에는 300년의 세월을 이어온 게이샤와 마이코의 숨결이 살아있다. 그 출근길 돌바닥 길에 어둠이 내려앉으면, 마치야마다 내건 붉은 등불이 그들의 발길을 보듬어 준다. 그리고 격자창 너머로 흘러나오는 주황빛 조명은 그녀들의 지친 어깨를 살포시 안아주는 듯하다.


Photo by Goodmorning.

토요일 연재